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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북한, 외부에 적 만들어야 할 정도로 상황 어려운 듯"

전단 살포는 표면적인 이유...극렬한 적대감 표출로 내부 결속 의도

 

10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본인의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진 정 수석부의장은 "(올해 들어) 지난 5개월 동안 북한이 남한의 대북 협력 제안에 대해 아무런 응답이 없다가 전단을 구실로 남북관계를 단절하겠다고 나왔다"며 "이는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중심으로 북한 내부가 똘똘 뭉쳐서 현재의 어려움을 돌파해야 할 정도로 현 상황이 어렵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북한은 지난 5개월 동안 남한의 제안에 대꾸할만한 정신적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며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해 공장이나 농장의 생산성이 떨어졌을 것이고, 이 때문에 북한이 남한에 대한 반응을 하고 싶어도 할만한 상황이 안됐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제7기 제13차 정치국회의를 주재하면서 화학공업을 강조한 것에 대해 "김 위원장이 당시 회의에서 강조한 화학공업은 비료가 핵심이고, 실제 회의에서도 비료 생산 향상이 우선적 문제로 지목됐다"며 "결국 북한의 현재 비료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10일 서울 창비서교빌딩에서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프레시안(최형락)

정 수석부의장은 "올해 10월 10일 노동당 당 창건 75주년이다. 그런데 75주년 성과를 빛낼 수 없게 된 상황"이라며 "그나마 최고 존엄(김정은)을 중심으로 체제를 끌고 가고 있었는데 거기다 대고 (김정은에 대해) 위선자니 뭐니 이런 이야기를 담은 전단이 남한으로부터 날아오니까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으로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은 인민들의 단결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며 북한이 전단 문제를 고리로 탈북자를 규탄하는 군중 집회를 여는 등 내부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배경에 주목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남한 정부가 전단을 막지 않는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화를 내고 적대감을 보일 일이 아닌데도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4.27 판문점 선언이나 9.19 평양 공동선언 등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측면도 있지만, 북한 내부의 자신감 결여가 극렬한 적대감의 표출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여정 제1부부장이 전단 문제를 가지고 화를 내니까 남한에서 법률 만들겠다며 벌벌 기고 있다고 하는데, 북한은 사실 남한에 대한 굉장한 열등 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격차가 크다 보니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가 있고, 그게 터무니 없이 자존심을 내세우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그러면서 "형제 간에도 살림 형편의 격차가 커지면 왕래도 잘 안하고 그러지 않나. 남북한도 마찬가지라서 현 시점에서 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이 빨리 개방과 개혁의 길로 나와서 중국처럼 경제가 좋아져서 남북 간 경제 격차가 최소한 2대1 정도가 되면 가능할 수 있으나 현 상태로는 안된다"며 "결국 유럽연합과 같은 체제를 사실상의 통일로 규정, 이 정도가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통일이라는 개념을 가져야 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프레시안(최형락)

끝없이 아득한 통일의 미로에서


 

정 수석부의장은 학계와 관계를 넘나들며 약 40년 동안 북한 문제를 다룬, 사실상 한국에서는 유일무이한 경력을 가진 북한 및 남북관계의 최고 전문가다. 그럼에도 정 수석부의장은 통일 문제에 대해 "끝도 시작도 없는 아득한 '통일의 미로'를 걸어왔고 지금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판문점의 협상가- 정세현 회고록, 박인규 대담> ⓒ창비

정 수석부의장은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을 진행해 엮은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에 만주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풍찬노숙을 하며 어렵게 지냈던 이야기부터 1990년대 김영삼 정부 때 통일비서관 재직 경험,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연속으로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던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때의 경험과 당시 감회를 담아냈다.

 

그런데 회고록임에도 불구하고 정 수석부의장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맨 마지막 주제인 '평화와 통일의 길'에 있다고 강조했다. 회고록이라고 해서 과거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지나간 일들을 통해 앞으로 남한 사회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어떠한 길을 걸어갈 것인가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당부였다.


 

정 수석부의장은 "통일문제에 처음부터 학문적으로 접근한 사람은 통일을 쉽게 생각할 수 있고, 또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미국만 한반도에서 나가면 된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남북관계 현장에서 직접 부대끼면서 접근하고 이론화한 제가 보기에는 통일이 구심력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은 북한 민심이 남한으로 넘어와야 진정 가능한 것이지, 합의 방식의 결합으로는 안된다"며 "이전에 1960~1980년대 북한이 주장했던 연방제가 바로 정치 협상에 의한 통일이었다"면서 제도적인 통일보다는 남북 연합 방식의 사실상의 통일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이 책이 처음 쓰여지기 시작한 2018년, 당시는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등이 열리며 한반도의 평화가 곧 도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2020년 6월 현재 남북은 마지막 끈인 연락 채널을 폐쇄하면서 2018년 이전으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 수석부의장이 언급했듯 한반도 정세는 언제 그 흐름이 바뀔지 모르는 "끝도 시작도 없는 아득한 '미로'"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 정세의 파도 속에 제대로 길을 잡고 항해를 한 날이 얼마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발견하고 싶다면, <판문점의 협상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6101846483776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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