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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매매 산업의 규모는 8조7000억원 혹은 13조원, 때로는 3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레이디 크레딧
김주희 지음/현실문화/432쪽/2만2000원
‘왜 한국에서는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비슷한 시기에 기업형 성매매라고 불리는 대형 성매매 업소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가?’ <레이디 크레딧>이 제기하는 한국 성매매 산업의 역설이다.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선 오늘날 성매매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며 한국 사회 자체가 사실상 성매매를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밝힌다. 한국의 성매매 산업이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를 거쳐 공적 경제에 포섭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매매 경험이 있는 20대부터 70대까지의 여성 15명을 심층면접해 생애 경험, 이들을 둘러싼 돈의 흐름을 살펴본다. 또한 성매매 여성들과 다양하게 얽혀 있는 사채업자, 부동산업자, 강남 룸살롱에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멤버팀장’, 반성매매 활동가, 성 구매자 남성 등 10명을 추가 인터뷰해 전 사회가 가담하고 있는 한국 성산업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들춘다.
8조7000억원 혹은 13조, 때로는 30조 규모로 추산된 한국 성매매 산업은 그간 성판매자 여성, 알선자, 성구매자 남성 간 피해-가해의 문제로 다루어져왔다. 여성주의 입장 안에서도 한쪽은 성매매를 ‘노동’으로 정의하며 자발적 의지를 강조했고, 다른 쪽에선 성매매를 ‘폭력’이라는 강제적 구조로 정의했다. 그 결과는 성매매 ‘인정’과 ‘근절’이라는 다른 정치적 해법으로 나타났으며, 그에 따라 성매매에 참여하는 경제적 요인도 ‘소득’을 위해서 혹은 ‘부채’ 때문이라는 전혀 다른 설명이 나왔다. 책에선 300만원으로 시작한 선불금(소위 ‘마이킹’)이 2억원까지 늘어나 성매매에 속박되는 사례 등 당사자들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부채 관계’를 중심으로 한 성산업의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하지만 책에서 더 나아가는 지점은 ‘여성들이 경제적 주체로서 성매매에 나서는’ 변화된 성산업의 현실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기점은 IMF 경제위기 이후 대출시장의 폭발적 성장이다. ‘카드 대란’을 촉발한 신용카드사와 은행의 가계대출 확산이 성산업의 대형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책에서 주목하는 사례는 2011년 J저축은행 비리 사건에서 드러난 ‘유흥업소 특화 대출’ 상품이다. 당시 유명 폭력조직 두목인 조모씨와 그의 부하 K는 자본금 없이 성매매 업소를 차리고 300억원 넘는 돈을 벌었다. 이 대출 상품은 강남 유흥업소 업주들을 상대로 유흥업소 종사자에게 지급되는 선불금 서류를 ‘담보’ 성격으로 제출하면 돈을 빌려줬다. 여성의 몸이 ‘신용’ 담보가 되고, 시중 은행이 성매매 업소 경영과 결합하는 변화된 성산업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금융화 과정에선 이른바 ‘풀링’이라는 기법도 사용됐다. 금융시장에서 ‘리스크 헷지’와 다를 게 없다. 금융회사가 여성들의 차용증을 비슷한 액수끼리 묶어 담보로 받거나 대출 채권으로 거래하기 시작하고, 성매매 업주들은 대출을 받기 위해서라도 빚을 가진 다수의 여성들을 한 업소에 집결시킨 것이다. 규모가 커지자 그 안에선 ‘텐프로’부터 ‘하드코어·풀방’까지 위계화가 이어지고, 구매자 남성은 분화된 가격과 서비스에 따라 “합리적 소비 실천”으로서 성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
금융화는 성매매 여성들의 경제관과 내면까지 바꿔놓았다. “최근 강남 룸살롱에는 대학의 기말시험 기간만 되면 출근하는 아가씨들이 줄어들어 영업이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책에선 학자금 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남 룸살롱에 진입한 여성들 이야기를 전한다. 경제 논리가 ‘도덕률’이 된 오늘날 자산이 없는 젊은 여성들은 몸을 담보로 한 ‘자발적’ 성매매로 부채 갚기에 나선다. 실상은 ‘빈곤을 타개하고 부채를 상환하는 경제 주체가 윤리적’이란 신자유주의적 도덕률이 ‘강제한’ 참여다. “이미 ‘빚이 있는 젊은 여성’인 이들이 업소의 타깃 집단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동시에 이 여성들, 자신의 대학 공부를 위한 비용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의 ‘몸 가치’가 가장 높은 시기에 강남 유흥업소에 진입해 스스로 ‘기회’를 만든 이들을 누구보다 ‘합리적인 계산’을 하는 이 시대 ‘젊은 여성 채무자’의 형상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워보인다.” ‘강희’라는 여성의 “나중에 저도 언니처럼 박사과정 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그저 도덕적 타락이 아닌 복잡한 시선으로 읽게 되는 이유다.
“이제 채권자는 더 이상 여성들을 일상적으로 구박하고 때로는 폭력을 일삼던 ‘악덕 포주’가 아니라 번듯한 금융회사다”.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에게 돈의 흐름을 보장하는,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여겨지는 ‘신용’을 지키려고 성매매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과거 탈주불가능했던 여성들은 이제 파산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기존 성매매 논의에서 ‘사악한 포주’와 ‘비도덕적인 성구매자’라는 인식은 성매매를 범죄화하는 성과를 낳았지만, 성매매의 원인을 경제가 아닌 도덕에서만 찾으려는 결과로 이어졌다. 책에선 부채를 해결해 성매매 여성을 ‘탈성매매’ 여성으로 바꾸는 시도나 여성들을 성노동자로 인식하는 탈규제 해법 모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여성의 몸을 담보로 확대재생산하는 ‘부채 경제’의 동인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성매매를 정치경제적 구조의 문제로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매매 문제 해결과 동시에 여성의 몸을 자원 삼아 작동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읽힌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311345001&code=960205#csidx26ba33a846f51328ee604cd6aeed3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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