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사 : 수심 20m 포항 앞바다에 둥둥, 여기서 죽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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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바다-1 울릉도 바다는 풀장처럼 투명하고 깨끗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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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좋아한 사내가 있었다. 잔잔하지만 때론 거칠고, 평온하지만 가끔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바다를 닮고 싶었다. 사내는 고인 물처럼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태양을 뱉어냈다 삼키기를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게 여기는 바다의 역동성이 부러웠다. 바다를 동경하고, 그리워하던 사내는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렸다. 바다는 미동 없이 견뎌내는 세월을 인간은 피해갈 수 없던 것이다.
사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 중 극히 일부는 바다가 제공하는 만찬 때문이었다. 전복과 해삼만 던져주면 인간이 될 때까지 동굴 속에서 수개월을 살 수 있었다. 활어회라면 잠결에도 눈을 감고 먹을 수 있었다. 문어, 낙지, 개불, 성게 등등 바다에서 나는 안줏거리라면 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망설임 없이 울릉도 프리다이빙에 따라나선 이유였다. 잿밥은 염불을 포용하는 위력을 지닌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울릉도라는 점도 한 몫 거들었다.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제주도에 비해 배를 타고 세 시간 넘게 가야 하는 울릉도의 심리적 거리는 몇 배 이상이다. 언젠가 배가 결항해 포기했던 기억까지 합친다면 울릉도는 머나먼 이국의 느낌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훗날을 도모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울릉도와의 조우가 시작되었다.
더, 깊은 곳으로
포항 여객 터미널에서 배를 타는 순간까지 내 머릿속은 프리다이빙이 아닌 해산물 천국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5m 깊이만 내려가도 참돔이 떼를 지어 다닌다는 강사님의 경험담을 들으며 멀미는커녕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떼를 지어 다니다 보면 분명 활동성이 떨어지는 녀석이 있게 마련이다. 맨손으로 참돔을 때려잡아 저녁 안주 삼으리라. 망상이 현실처럼 들러붙는 날이 종종 존재한다.
울릉도에 도착해서 처음 맛본 진미는 따개비칼국수다. 전복의 이종사촌 동생처럼 생긴 작은 갑각류인데,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보양식이라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포항과 대구에도 분점이 있었다. 이럴 때 우리는 약간 허탈한 기분이 든다. 유통과 물류의 발달로 인해 현지 음식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달래고 남을 정도로 깔끔하면서 담백한 국물 맛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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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 다이버의 훈련 과정 수심 5m를 통과하기 위해 힘겨운 훈련을 한다. 울릉도에 가서 마침내 5m 수심을 통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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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첫날 입수 일정이 진행되었다. 바닷물을 처음 접하는 교육생들을 위해 얕은 물(5~10m)에서 스노클링과 덕 다이빙을 하며 바다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힘겹게 수트를 입고 있자니 그제야 내가 울릉도에 와 있는 이유가 떠올랐다. 관광이 아닌 훈련이었다. 긴장감이 조금씩 밀려왔다.
첫 훈련지는 자연이 만들어낸 수영장이었다. 암석과 방조제에 둘러싸여 파도의 존재를 거의 느낄 수 없는 호수 같은 바다였다.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므로 마음이 놓였다. 풀장에서 연습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바다 훈련이 처음인 교육생들이 보란 듯이 의기양양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확실히 울릉도의 바다는 달랐다.
투명하리만치 맑고 깨끗했다. 물고기가 떼를 지어 다닌다는 것이 과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헤엄치는 물고기의 지느러미 움직임까지 보일 정도였다. 다이버의 의중과 무관하게 아래로 향하게 만드는 거대한 마력을 지닌 바다였다. 다양한 해초들의 몸 사위는 더 깊은 곳으로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마침내 현혹되고 말았다. 눈먼 참돔을 잡기 위해 무리해서 다이빙을 진행하던 육신의 욕망에 제동이 걸렸다.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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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의 바다-2 물고기가 떼지어 다니는 울릉도 앞 바다. 눈먼 고기는 실재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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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이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몸 상태에 대한 파악이다.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욕심이 생겨서 능력의 범위를 이탈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약간의 무리가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사고는 자신도 위험하고 동료들에게도 민폐를 끼친다. 훈련이 중단되고 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마련이다. 서둘러 뭍으로 올라왔다. 활동성이 떨어지는 물고기 한 마리는 결국 내 자신이었다.
첫날 컨디션을 조절했기에 이튿날 훈련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배를 타고 진짜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경험은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감소시킨다. 저 배는 무자비하게 나를 바다에 버리고 돌아올 것임을 이미 알고 있기에 걱정이 없다. 깊은 바다가 처음인 동료에게 농담하고 어깨를 토닥일 만큼 여유도 부린다. 잠시 후, 우리는 수심 30m의 바다에 여지없이 던져졌다.
울릉도 명소인 코끼리 바위가 코앞에 아른거리는 지점이었다. 구름 한 조각 없는 하늘만큼 맑은 바다가 핀 아래에서 출렁거리고 있다. 이퀄라이징(수압 적응)을 반복하며 최대 수심 기록을 깨기 위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몇 차례 반복하고 나니 점차 바다가 편해졌다. 부이(훈련용 튜브)에 매달려 어깨가 탈골되기 직전까지 안간힘을 쓰던 포항 앞바다의 내가 떠올랐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막상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것을.
그대로 남겨두고 싶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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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그리고 인간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다보면 한 순간 바다와 내가 하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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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으로 가빠진 호흡을 달래기 위해 물속에 머리를 넣고 조류에 몸을 맡겨보았다. 바다 저 밑바닥에서 빛줄기가 현란하게 올라온다. 일정한 규칙성이 없는 자연스러운 빛의 축제다.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4D로 레이저 쇼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것은 햇살이 바다를 통과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바다 저 밑바닥에서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쏘아 올리는 빛처럼 느껴진다. 물고기 떼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황홀경이었다. 아, 좋다, 아름답다. 그저 표현력의 한계가 아쉬울 따름이다.
울릉도 프리다이빙의 매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후덥지근한 동남아의 기후와 달리, 쾌청한 날씨를 배경으로 맑고 투명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천혜의 지형과 풍부한 먹거리는 덤이다. 공항 건설로 인해 섬 전체가 개발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자연 그대로 남겨두고 싶은 섬이다.
그날 저녁, 펜션 사장님께 부탁해 기다리던 잿밥을 마주할 수 있었다. 보는 사람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80cm짜리 참돔이었다. 성인 열 명이 먹어도 남는 크기의 활어를 비교적 싼 가격에 구매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울릉도가 선사하는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프리다이빙과 식도락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울릉도. 그 섬에 가면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마당 쓸고 돈 줍는 기회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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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가 준 선물, 대형 참돔 펜션 사장님에게 부탁하면 현지 주민들이 당일 잡아온 싱싱한 활어회를 착한 가격에 맛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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