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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세입자 권리금 빼앗은 건물주에 '철퇴' 내렸다

재판부 "건물주는 세입자의 권리 회수 기회 보장해야" 판결

이때 세입자들 사이에서 거래되던 권리금이 사라진다. 일부 건물주들은 이를 악용한다. 리모델링한다고 기존 세입자와 계약 해지를 한 뒤 새 세입자와 계약하면서 자신이 권리금을 받거나, '무권리 점포'로 임대료를 높게 책정해 계약한다.

 

'리모델링'하겠다고 나가라던 건물주...권리금 회수 기회도 빼앗아

 

서울시의 한 대학가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던 황상민(가명) 씨도 그런 경우였다.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나고 당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보장하던 5년의 계약갱신요구권도 사라졌을 때, 건물주는 리모델링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권리회수기회'를 보장한다. 즉, 세입자가 다음 세입자를 구해 권리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황 씨도 리모델링 이후 들어오겠다는 세입자를 구했다. 새 세입자가 건물주와 계약을 하면 새 세입자로부터 권리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건물주는 이를 거절했다.


 

이후 황 씨의 일상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명도소송에서 승소한 건물주는 3차례의 강제집행을 시도했고 지난해 12월, 불법 강제집행으로 황 씨는 가게 밖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지난 8일, 2심은 원심을 엎고 황 씨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 제33민사부(재판장 정재오)는 "황 씨가 새 세입자를 주선했음에도 건물주가 이를 거절해 황 씨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했다"며 건물주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심 선고가 나기 불과 며칠 전, 대법원에서는 "계약갱신요구권 소멸 여부와 관계없이 건물주는 세입자의 권리회수기회를 보장 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심은 이를 반영하지 않고 "리모델링으로 인한 계약해지는 정당하다"며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었다. 그러나 2심은 앞선 대법원의 판결을 따랐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건물에 붙어 있는 점포 임대 안내문 모습. 기사와 상관없다. ⓒ연합뉴스

재판부, "리모델링해야 할 이유 없다"


 

2심 재판부는 건물주가 계약 해지의 이유로 든 리모델링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우선 "건물주가 대수선 또는 리모델링해야 할 정도로 상가건물이 노후·훼손 또는 일부 멸실되는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해당 건물은 지난 2016년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다. 건물주도 리모델링의 이유로 이 화재 사고를 들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화재 사고가 상가건물의 전기시설 노후화로 말미암아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전기시설을 소홀하게 다루어서 발생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상가건물의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을 해야 비로소 예방할 수 있는 정도의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건물주의 뜻에 따라 리모델링한다고 하더라도 "건물을 대수선 또는 리모델링한다는 사정이 곧바로 '건물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즉, 리모델링한다 하더라도 기존 세입자와의 계약을 해지해야만 한 건 아니라는 판단이다.


 

엉터리 견적서에 실체 없는 회사...'가짜 리모델링'


 

재판부는 나아가 건물주가 주장한 리모델링이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리모델링을 이유로 세입자를 내쫓은 뒤 실제로 리모델링을 하지 않는 경우는 허다하다.


 

재판부는 "건물주가 황 씨에게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서 공사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기간 등을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더욱이 공사 명세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특히 리모델링 공사를 맡은 회사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견적서를 작성한 회사와 실제 존재하는 회사의 이름이 다르다"며 "실제 회사는 상업등기부로 확인할 수도 없을뿐더러 인테리어 회사로 보일 뿐, 상가건물을 철거하고 대수선 공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회사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이유로 기존 세입자들과 계약을 해지하는 중에 새로운 세입자를 받았다는 점도 들었다. 재판부는 "건물주는 황 씨에게 가게 인도를 요구하면서 해당 건물 지하에 스포츠 마사지 점포를 임대하고 건물 1층에 친누나의 약국 개업을 허용했다"며 "상가건물이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원고의 실질적 경영자의 친누나에게 임대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짚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건물주에게 "황 씨에게 임대차 종료 당시의 권리금 감정가 1억9822만9000원과 이 돈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세입자 "묵묵히 일을 열심히 했을 뿐"


 

황 씨는 판결에 대해 "법원이 제 권리를 모두 인정해줘서 다행"이라면서도 "2015년 건물주가 바뀌고 2017년에 소송, 2019년에 강제집행까지 마음고생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했다. 10년 동안 그 자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쌓은 게 모두 날아갔다"고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저 같은 세입자들은 그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했다는 것밖에 없다"며 "이 판결로 법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세입자들의 손을 잡아준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쌔미 민생문제활동가(황상민 씨 대리인)는 "거짓 재건축, 거짓 리모델링을 이유로 세입자와 계약을 해지하고 권리회수기회를 빼앗은 건물주들이 많다"며 "이번 판결이 그런 사례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1120090160030#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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