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얼마 뒤, <조선일보>의 [조선일보를 읽고](2019.01.04.)라는 코너를 보고 나니 어렴풋이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한 독자는 <文 대통령 "장병도 평일 외출·외식" 신병들 "와~">(2018.12.29.) 제하의 기사를 읽고 아래와 같은 의견을 남겼다.
"(전략) 요즘 젊은이들은 나약한 데다 고생스러운 일은 외면하고, 쉽게 좌절하고 패기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군대에 가서 엄격한 규율을 몸에 익혀 강인한 젊은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많다. 군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병사를 위한 길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부모의 보살핌 속에 자유로이 지내던 어린 시절을 청산하고 엄격한 통제 속에 군기 잡힌 생활을 하면서 진정한 사나이로 거듭나야 하는데,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휴대전화를 쓰고 외출을 나가면 '인간 갱생'이 가능하겠냐는 반문이었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진짜 사람'이 되려면 조직의 통제에 따라 하고 싶은 일과 말을 참아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30,40대 예비역들의 속마음이 병사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표출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짜사나이>가 대중의 폭넓은 공감을 얻은 것 역시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한국인의 자기 극복 서사를 완벽히 내면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군대가 빚어내고, <가짜사나이>가 그려내는 '진짜 사람'은 어떤 모습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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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사나이 |
ⓒ 피지컬갤러리 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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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사나이>의 훈련방식, 현실에선 범죄
<가짜사나이>의 소재가 UDT/SEAL 훈련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콘텐츠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매우 폭력적이다. 시즌1 에피소드5에는 시작부터 훈련 참가자들이 얼차려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한 명의 참가자가 저지른 과오로 참가자 전원이 얼차려를 받게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교관은 정작 과오를 저지른 참가자는 가만히 세워두고, 나머지 참가자들에게만 '물속에 머리박기' 등의 가혹한 얼차려를 부과한다. 말이 좋아 '물속에 머리박기'지,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 자행되던 물고문과 메커니즘 상 별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동료들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것을 지켜보던 열외자에게 교관은 폭언과 인격모독을 서슴지 않았다. "다시 태어나려고 온 것 아니냐?"고 다그치는 교관의 고함 앞에 참가자는 눈물을 흘렸다.
잘못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모습을 보여주며 심리적 압박감을 극한까지 몰고가는 방식은 전형적으로 폭력적인 교육 방식이다. 잘못한 사람의 반성기제가 자아성찰이 아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공포에 있기 때문이다. 숱한 군대 내 사건 사고 사례로 미루어 볼 때 이런 식의 교육은 끈끈한 전우애나 과오 경정이 아니라 집단 따돌림이나 2차적 폭력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가짜사나이>가 표상하는 소위 '군기 잡는 모습'이란 한국 군대의 고질적인 악·폐습 그 자체다.
2019년 육군사관학교는 한 생도의 과오를 이유로 전 생도에게 1주일간의 야간 구보를 지시했다가 군인권센터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연좌제란 지적을 받고 시정한 바 있다. 육군 모 군단에서는 환자들에게 구보를 강요하며 열외 시 이름과 병명이 적힌 환자 명패를 걸고 걸어다니게 하다 여론의 공분을 샀다.
2020년에는 육군 모 부대 대대장이 얼차려를 준다고 새벽에 병사 300명을 불러내 체력 단련을 시키고, 이튿날에는 한 병사에게 앰뷸런스와 제세동기가 있으니 쓰러질 때까지 달리라는 엽기적인 지시를 내렸다가 보직해임을 당했다. <가짜사나이>로 연상되는 군대 악·폐습이란 실상 현실에 닿으면 범죄가 된다.
2014년 육군 제28사단에서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와 가혹행위로 고 윤 일병이 유명을 달리한 '윤 일병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처음부터 윤 일병을 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타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들도 맞아봤고, 폭력이 당연시되는 가운데 별 죄의식 없이 윤 일병을 때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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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8월 6일 국방부 앞에서 개최된 윤 일병 사망사고 관련 군 유족 항의집회 |
ⓒ 고상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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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는 한 대 맞아서 아픈 것에 있지 않다. 폭력은 학습된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 때리고 괴롭히는 일이 죄의식의 영역에서 해방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온 사회가 폭력적인 군대 문화에 노출되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군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 사건이 언론에 보도 될 때마다 군인권센터로 걸려오는 전화들이 있다. 10년 전에, 20년 전에, 심지어는 1960년대에 군대에서 누구에게 맞았거나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대부분 법적으로 구제 받을 방법이 없어서 차근차근 설명을 전하면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 전화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이들이 <가짜사나이>를 본다면 무엇을 느낄까. 수백만이 열광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보며 누군가가 끄집어 낼 두려움의 깊이, 이것이 군대가 만들어 낸 '진짜 사람'의 씁쓸한 현 주소다. 폭력의 경험은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군대를 가야 완성되는 '진짜 사람'이란 모두 허상에 불과하다. 왜곡된 군대 문화가 빚어내는 사람은 <가짜사나이>가 묘사하듯 인간 갱생을 경험한 번듯한 사회인이 아니다. 그저 망가지고 다친 사람일 뿐이다. 군대에서 맞아 죽은 사람이 현충원에 묻힌 것이 20년 전도, 10년 전도 아닌, 불과 6년 전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내가, 가족이, 친구가 경험한 지나간 시간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지금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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