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35분부터 밤 12시25분까지
짜장면 점심 20분이 휴식의 전부

두 팔에 상자 6개…계단 두 칸씩
발목 삐끗했지만 병원 엄두도 못내
벨 누르고 다음집까지 10초 안 걸려
“1분 지체되면 퇴근 몇 시간 늦어져”

한 건 700원…비용 빼면 600원 남짓
“한 달 300만원 벌기도 쉽지 않아”
아프다고 쉬면 기사·소장 벌점 부과
“빨간 날 빼곤 힘들어도 쉴 수 없어”

자정 즈음 “언제 오냐” 노모의 전화
“걱정 안 끼쳐드리려 힘든 티 안내요”
[편집자주]지난 8일 배송 업무를 하던 씨제이(CJ)대한통운 택배기사 김원종(48)씨가 거리에서 숨졌다. 코로나19 확산 뒤 택배노동자들이 걸머진 짐의 무게는 가혹할 만치 무거워지고 있다. 올해만 8명의 택배노동자가 거리에서 스러졌다. 그 가운데 5명은 씨제이대한통운 소속이었다. 죽음을 부르는 택배노동의 무게를 확인하려 <한겨레>는 택배노동자와 동행하고 한 택배회사의 물류센터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현장을 취재했다. 그 내용을 2회에 걸쳐 싣는다.
13일 동행한 씨제이대한통운 소속 택배노동자 김도균(48)씨의 노모는 새벽에 일하러 나간 아들의 귀가가 늦어지자 “언제 오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숨진 김원종씨와 같은 나이에 같은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이 걱정됐던 탓이다. 14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김원종씨의 아버지와 서울 중구 씨제이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응당한 보상,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일터에서 죽지 않고 퇴근할 수 있게 해달라는 택배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절박한 호소에 이제 기업과 사회가 응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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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을 두 칸씩 성큼성큼 뛰어올랐다. 두 팔엔 택배상자 6개가 탑처럼 아슬아슬하게 쌓였다. “한 곳에서 1분만 늦어도 연쇄작용 때문에 퇴근이 몇 시간씩 늦어져요.” 13일 낮 3시 서울 노원구의 한 빌라 계단에서 씨제이대한통운의 택배노동자 김도균씨가 이마 사이로 흐르는 땀을 닦지도 못한 채 말했다. 김씨는 승강기가 없는 빌라였지만 5층까지 한달음에 도착한 뒤 능숙하게 501호 문 앞에 택배상자를 내려놨다. 벨을 누르자마자 도망치듯 다시 두 칸씩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감사합니다!” 고객의 인사에 화답할 겨를도 없었다.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자꾸 배송이 늦어지네요.” 이른 아침부터 맡았던 택배 분류업무가 고됐다는 김씨는 피곤한 기색을 보이더니, 결국 발목을 삐끗했다. “어쩔 수 없어요. 지금 병원에 갈 수도 없고….” 그는 발목을 들여다보다 다시 택배상자를 어깨에 짊어진 채 절룩거리며 길을 나섰다.김씨의 하루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고 늦게 끝난다. 이날 새벽 5시30분에 잠에서 깨어난 김씨는 아침밥은커녕,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노모(78)가 챙겨준 물병만 간신히 들고 새벽 5시55분 서울 강북구 수유동 집을 나섰다. 
 
트럭을 몰고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씨제이대한통운 노원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6시35분이다.
 

김씨는 도착하자마자 택배상자가 쏟아지는 컨베이어벨트 앞에 선다. 전날 ‘까대기’(간선 차량이 내려놓는 택배를 지역별로 분류하고 트럭에 실어 정리하는 업무) 아르바이트 직원 한 명이 그만두는 바람에 이날 분류 업무는 더 힘들었다. 분류작업은 배송을 맡는 택배기사들의 일이 아니다. 가욋일로 업체가 떠맡긴 것이다. 김씨는 줄줄이 내려오는 상자를 받아 쌓고 자신의 담당구역인 노원구 ‘하계1동’ 택배를 따로 분류해 동선에 따라 트럭 위에 착착 실었다. 점심을 거르고 화장실 한번 가지 않고 일했지만 까대기가 끝난 시각은 오후 1시47분이다. “택배 일 중에 가장 힘든 게 까대기예요.” 김씨가 말했다.지난달 노동시민단체 ‘일과건강’이 택배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벌인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업무 중에서 까대기 업무에 해당되는 ‘분류작업’과 ‘집화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2.8%, 11.1%에 이르렀다. 전체 업무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한 푼도 없다.

 

까대기를 마친 뒤 택배상자를 1톤 트럭 가득 실은 김씨는 오후 1시53분 하계동의 한 중국집에 도착했다. 하루 첫 끼를 먹기 위해서다. “곱빼기, 양 많이.” 그의 주문에 족히 3인분은 돼 보이는 짜장면이 나왔지만 8분 만에 김씨는 한 그릇을 마시듯 해치웠다. 김씨가 밥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며 한숨을 돌린 시간은 20여분에 지나지 않았다.

 

13일 택배노동자 김도균(48)씨의 트럭 안에 탄산음료, 쓰레기, 반송 배송장 등 갖가지 서류가 뒤엉켜 있다. 배송할 택배 짐은 수시로 정리해도 운전석을 정리할 시간은 없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13일 택배노동자 김도균(48)씨의 트럭 안에 탄산음료, 쓰레기, 반송 배송장 등 갖가지 서류가 뒤엉켜 있다. 배송할 택배 짐은 수시로 정리해도 운전석을 정리할 시간은 없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허리를 굽혀 상자를 쌓고 정리하는 일은 까대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첫 행선지인 노원구 ㅋ아파트 주차장에 트럭을 세운 뒤 김씨는 화물칸에 올라타 좁은 상자 사이에서 10여분을 씨름하며 다시 상자를 정리했다. 동선에 맞게 초벌 정리를 해뒀지만 배송지에서 다시 동과 층, 호수에 따라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큰 아파트 단지일 경우에 여기 소요되는 시간만 어림잡아 한번에 40~50분이다.택배노동자들은 큰 아파트 단지를 선호한다.

 

김씨가 맡은 하계1동엔 3~5층 정도의 소규모 아파트나 빌라, 연립주택, 원룸텔이 많다. 대부분 승강기가 없어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팔 위에 택배상자 탑을 쌓고서도 김씨는 5~6층까지 잽싸게 뛰어 올라가고 내려왔다. 주소를 확인해 뛰어올라가 상자를 문 앞에 내려놓고 바코드를 찍은 뒤 벨을 누르고 다시 다음 집으로 향하는 데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뒤따르는 기자는 맨몸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날 김씨를 따라다니며 스마트워치로 측정한 걸음수는 1만7000보다. 이날 오전 까대기 업무를 하면서 김씨가 측정한 1만보를 더하면 그가 업무 중 걸은 걸음은 모두 2만7000보다. 1만보의 거리를 10㎞라고 추정하면 그는 상자를 들고 계단 위에서 하루 평균 20~30㎞를 뛰어다니는 셈이다. 그가 오르내린 층수는 건물 81층 왕복 높이에 이른다고 스마트워치는 기록했다.저녁 8시43분이 돼서야 도착한 마지막 행선지인 ㅅ아파트는 6동 규모의 396가구 아파트다. 

 

김씨의 담당 구역에서 가장 큰 규모다. 6개 동을 모두 돌고 나니 이날 할당된 택배 430개의 배송이 끝났다. 시계는 자정을 지나 14일 0시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씨는 이날 18시간가량 일했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택배노동자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이다. 특히 업무가 많은 화~금요일엔 하루 평균 12.7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택배노동자들은 특수고용에 해당돼 주 5일, 주 52시간 근무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13일 아침 근무를 시작한 택배노동자 김도균(48)씨가 자정을 넘긴 밤 12시30분께 퇴근을 앞두고 방전된 차량 배터리 점검을 받고 있다. 다행히 15분만에 차량 보험사 직원이 현장에 출동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13일 아침 근무를 시작한 택배노동자 김도균(48)씨가 자정을 넘긴 밤 12시30분께 퇴근을 앞두고 방전된 차량 배터리 점검을 받고 있다. 다행히 15분만에 차량 보험사 직원이 현장에 출동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어떤 이들은 택배노동자들을 향해 “일한 만큼 많이 버니 그 일을 하는 게 아니냐”고도 한다. 사정을 모르는 말이다. 택배노동자들은 기본급 없이 택배 한 건당 700원가량의 수수료를 받는데, 여기서 10%의 대리점 수수료, 세금, 택배 트럭 자동차 보험료, 한달에 30만원에 이르는 기름값 등을 떼고 나면 건당 남는 수익은 580~600원이다. “소문만큼 그렇게 많이 버는 일이면 다들 택배기사 하겠지요.

 

한달에 500만~600만원씩 버는 분들은 아주 소수고, 이것저것 떼고 나면 월 300만원 정도 받는 것도 쉽지 않아요.” 김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게다가 일요일과 공휴일 등 ‘빨간 날’에만 쉴 수 있고, 하루 배송량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 아프다고 쉬면 자신이 맡은 구역의 배송이 늦어져 택배회사에서 담당 기사와 대리점 소장에게 ‘벌점’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동료들에게도 민폐다. 이 때문에 동료 기사들이 배송을 도와주면 그만큼 돈으로 물어내는 관행도 있다.

 

배송이 끝나가던 자정 즈음 김씨의 노모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 “언제 오냐, 시간이 많이 늦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오늘 다 못 하면 내일 해야 돼요. 다 끝나가요.”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어 김씨가 답했다. 김씨는 “어머니가 김원종씨 사고 소식을 뉴스에서 보신 모양이다. 걱정은 많이 하시지만, 걱정을 안 끼쳐드리려고 힘든 티를 안 낸다”고 말했다.자정을 넘긴 시각 김씨는 다시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의 배터리는 김씨처럼 방전돼 있었다. 방전된 배터리는 금세 출동한 본사 직원이 갈아주었지만 김씨를 대신할 이는 없다. 그는 내일도 모레도 새벽 5시30분이면 일어나 트럭을 몰고 나올 것이다.

 

글·사진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