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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될 것 같은 ‘밑반찬 노동’이 세상을 청소할 거야

등록 :2021-01-31 09:05수정 :2021-01-31 09:09

 

[토요판] 비평
여성과 청소노동

엘지트윈타워 농성 중 청소노동자
보이지 않아야 할 존재 점거농성

2019년 승소한 톨게이트 수납원들
정직원 복귀 뒤 청소하는 자리 배치

모멸적 표현 듣는 ‘아줌마’ 노동자
노동자 지위 얻는 싸움을 먼저 해야

‘노동시장 밑반찬’ 같은 억울한 노동 세상 온갖 더러움 청소하게 될 것
지난해 11월16일부터 농성을 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엘지트윈타워 건물 로비에서 12월24일 한 노동자가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해 11월16일부터 농성을 하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엘지트윈타워 건물 로비에서 12월24일 한 노동자가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영하 16도의 아침, 산책을 다녀와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 청소노동자가 보였다. 막 닦아놓은 깔끔한 엘리베이터 바닥 위로 방금 전까지 얼어붙은 눈을 밟고 다니던 나의 두 발이 어색하게 올라선다. 물기가 있는 바닥 위로 나의 발자국이 찍혀 난감했다. 16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그는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계속 바닥을 닦으며 말했다. “바깥에는 닦으면 바로 얼어버려요. 얼마나 지저분한지, 말도 못 해. 근데 닦으면 바로 얼어버려서 지금은 닦을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그저 날씨에 대한 대화로 이해했으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뒤늦게 알아차렸다. 눈 온 뒤에 지저분한 아파트 입구를 재빨리 깔끔하게 회복시키지 못하는 노동자의 사정을 설명했다는 사실을.

1. 여성, 청소하다

청소노동자의 대걸레를 통해 사라진 나의 발자국처럼, 청소는 흔적을 지우는 게 중요한 목적이다. ‘집사람’인 여성들은 집을 청소하고 집 밖으로 나가 건물을 청소한다. 방바닥을 닦던 여성들은 빌딩을 닦고, 버스를 닦고, 기차를 닦고, 비행기를 닦는다. 청소노동자의 80% 이상은 여성이다. 집 안의 부불노동은 집 밖에서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으로 자리한다. 청소노동은 노동 이전의 노동이며, 노동 이후의 노동이다. 새벽 지하철역, 세상이 고요한 시간, 누군가가 쏟아놓은 오물과 아무 곳에나 내던져진 각종 쓰레기가 사라지고 ‘원상복귀’ 된다.

여성은 청결을 담당하는 존재다. 부지런한 할머니들은 여자가 더러운 것을 많이 만질수록 집이 깨끗해진다며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인다. 청소노동자는 젠더와 공간, 청결 권력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여성 청소노동자는 공간을 청소하지만 공간을 갖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세균까지 닦아내면서 최종적으로는 그들도 사라져야 한다. 청소노동자의 점거 농성은 그런 면에서 다른 어떤 노동자의 점거보다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청소되어야 할 존재,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보이면 안 되는 존재가 장소를 점거했기 때문이다.

 

2018년 세상을 떠난 노회찬의 연설에서 언급된 서울 6411번 버스의 새벽 첫 승객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여성이며 청소노동자이다. 이들은 본격적 노동의 시간이 밝아오기 전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첫 버스에 오른다. 신희주 교수는 2020년 ‘6411 버스 첫 승객 분석을 통한 청소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청소노동자의 평균 나이는 61.1살이다. 이들은 주로 구로구와 영등포구에서 출발해 서초구나 강남구에 도착한다.

2017년 3월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연 ‘5회 청소노동자 행진 선포 기자회견-청소노동자의 봄’ 행사 참석자들이 거리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7년 3월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연 ‘5회 청소노동자 행진 선포 기자회견-청소노동자의 봄’ 행사 참석자들이 거리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 여성, 청소되다

2019년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투쟁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수납원은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발언을 했다. 실제로 ‘없어지는’ 중이다. 직업은 꾸준히 없어지고 새로 생긴다. 직업이 없어져도 사람은 있다. 그런데 없어지는 노동에서 남성 노동자는 최소한 ‘가장’으로 바라본다면 여성 노동자는 원래 부수적 존재였기에 그들의 ‘사라짐’을 더욱 함부로 대한다. 2019년 대법원의 판결로 승소한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정직원으로 복귀했지만 수납원이 아니라 고속도로 주변과 졸음쉼터 화장실 등을 청소하는 자리에 배치되었다. 여성은 청소되고, 또 다른 곳에서 청소한다.

여성의 노동은 ‘사라지는 것’이 본분처럼 여겨진다. 노동의 생산물도 사라져야 하며 생산의 주체로서 노동자인 여성도 사라져야 한다. 만들어놓은 음식은 먹어치우고, 깨끗해진 공간은 다시 더러워지고, 모든 돌봄은 물리적으로 그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돌봄 대상자에게 노동의 결과가 흡수될 뿐이다. 이렇게 사라지는 노동은 여성에게 맡겨진 채 여성은 노동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들은 노동하지 않는 존재이므로 그들에게 일자리의 사라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여성의 실직은 ‘가장’의 실직이 아니며, 여성은 그저 원래 있어야 할 곳인 가정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집사람’이 집사람이 될 뿐이다.

비행기를 청소하던 노동자들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보이지 않는 노동자였기에 감염병 대유행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사라짐은 보이지 않는다. 하루 20대까지 청소하던 비행기 청소노동자는 지난해 3월부터 일자리를 잃었다.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며 물리적 공간을 청소하던 학교의 청소노동자들도 해고되기 시작했다.

지난 한해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더욱 고용이 줄고 실직이 늘었다. 여성 비경제활동 인구도 늘었는데, ‘비경제활동’이란 실업도 취업도 아닌 상태다. 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비경제활동’ 인구일까. 대부분 가사노동 부담으로 집 밖에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코로나19로 집 안에서 해야 할 돌봄과 가사노동이 증가했다. 이들은 노동을 하지만 ‘비경제활동’ 인구이다.

직격탄을 맞는 직종이 있다면 특수를 누리는 직종도 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비대면 교육의 확산으로 텔레비전, 컴퓨터와 카메라 장비 등의 소비가 늘었다. 엘지(LG)디스플레이도 모니터 시장 점유율이 상승하면서 코로나 특수를 누려 거의 2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입주한 엘지트윈타워 건물을 청소하던 청소노동자 80명은 집단 해고되었다.

젊지 않은, 남성이 아닌 노동일수록 일자리의 사라짐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 나이 많은,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는’ 게 어딘데, 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그들이 임금 노동을 할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줄 안다. 실제로 이 ‘아줌마’ 노동자들은 “천원짜리 노동”, “하루살이 인생”, “일회용” 등 각종 모멸적 표현을 듣는다.

가사도우미의 노동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11조에서 “가사 사용인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며 가사노동자를 노동관계법의 보호에서 제외했다. 1953년 제정된 조항이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식모-파출부-도우미로 이름이 바뀌어왔을 뿐 그들은 여전히 ‘노동자’가 아니다. 용역업체가 만들어져 노동 ‘시장’은 형성되었어도 노동자는 여전히 투명인간이다. 가사노동의 큰 축은 청소와 요리, 육아인데 이 모든 노동은 집 안에서 여성이 마땅히 해야 할 자연현상으로 여긴다. 이 자연현상을 돈을 주고 외부 여성에게 맡겼기에 마치 공기와 바람에 돈을 쓰는 것처럼 아까운 지출이라 생각한다.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영등포구 엘지트윈타워 건물 로비에서 토의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영등포구 엘지트윈타워 건물 로비에서 토의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3. 여성이 청소할 것이다

‘레닌 동지가 세상의 더러움을 청소한다’. 러시아 혁명 임시 정부의 한 포스터 제목이다. 정장을 입은 레닌이 빗자루를 들고 구체제의 상징인 차르와 관료들을 쓸어버린다. 재치 있는 이 그림을 좋아하지만 다른 한편 소외감을 느낀다. 빗자루를 들고 세상을 청소하는 사람도 쓸려 나가는 사람도 모두 남성이다. 부패한 남성에서 혁명적인 남성에게로 권력이 움직이는 동안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게 바닥을 쓸고 닦는다. 여성은 노동자인가.

노동과 여성성은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드센, 억척스러운, 악바리는 주로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경제활동을 해나가는 여성에게 향하는 수사다. <회사가 사라졌다>는 폐업과 해고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을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인데 이름이 그 자체로 메신저이며 메시지다. ‘조용함’을 거부한 채 싸우는 여성 노동자로서의 목소리를 또박또박 기록하고 또 기록한다. 레이테크코리아에서 해고당한 한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여자가 해고를 당하면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요. 남자가 해고당하면 ‘어쩌나, 그 집 어떡하지’ 그러거든요. 내가 주위 사람들한테 ‘나 해고당했어’ 얘기를 하면 쉬라고, 봉사활동이나 하라고 해요. 이렇게 노동가치를 뜨겁게 생각해주지 않는 거예요.”

여성의 노동가치를 ‘뜨겁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 그는 분통을 터뜨린다. 기록팀의 희정은 여성의 노동을 “밑반찬처럼 없어도 되는 일”로 여긴다고 지적한다. 냉장고에 처박아두고 까맣게 잊어버리는 밑반찬, 다른 반찬 없을 때 꺼내 먹다가 어느 날 냉장고 청소를 하면서 버리기도 하는 밑반찬, 때로 누가 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으며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돌고 도는 밑반찬, 늘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반찬이지만 있어야 할 게 있다고 해서 결코 알아주지 않는 그런 밑반찬, 똑같은 반찬이 계속 나오면 게을러 보이는 하찮은 밑반찬. 여성의 노동은 바로 노동 시장에서도 밑반찬 같은 노동이다. 부업, 아르바이트, 임시로 하는 노동이다. 그렇게 “반찬 같은 노동이기에, 세상이 함께 억울해하지 않는 노동”이다.

여성은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우선 노동자의 지위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한다. 노동자 정체성을 인정받는 ‘노동자 되기’부터 이루어야 할 과업이다. 청소노동자나 식당노동자 등에게 ‘어머님’ 혹은 ‘이모님’이라 한다. 저임금 직종의 여성 노동자는 가족관계어, 특히 어머니로 부른다. 존중의 언어로 둔갑하고 있지만 실은 여성이 노동자의 지위를 가질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여성의 사회적 신분은 어머니이고, 어머니로서 싸울 때 가장 주목받는다. 그렇기에 여성의 투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 흔히 “그들도 누군가의 어머니입니다”라고 말한다. 해고된 한 노동자는 “일터란 ‘나’라는 존재를 오랜만에 자각한 공간”이라며, 노동조합원으로 “그 관계의 끝을 최선을 다해 지키고 싶다. 그래서 싸운다”라고 한다.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2019년 노조를 만들었다. ‘어머니’들은 노동자로서 싸운다.

여성과 이주민의 노동은 노동의 ‘바닥’을 보여준다. 값싸고, 해고하기 쉽지만,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내기 어려운 노동자들이다. 여성은 해고되면 집으로, 이주민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면 그뿐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바닥을 닦는 사람이 조용히 사라지지 않으면 세상이 시끄러워진다.

세상의 더러움을 누가 청소하는가. 한 청소노동자가 “나는 평생 청소해서 세상을 구할 팔자인가 봐!”라고 말했을 때, 또록팀의 기록자 림보는 이 말을 어떻게 옮겨 적어야 할지 고민한다. 이 말은 제 노동에 대한 긍정인가, 청소노동의 여성화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이 목소리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나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세상의 더러움을 청소하는 사람은 정장 입은 남성이 아니다. 조용함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청소할 것이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 새해 첫날 계약해지된 엘지(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늘 청소하던 건물 로비에서 벌써 한달도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여성이 대다수인 청소노동자들의 해고와 복직투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소노동은 주로 ‘여성의 일’이다. 회사는 폐업과 정리를 거듭하며,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쉽게 치워지고, 지워진다. 이와 관련해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의 비평을 싣는다. ‘비평’은 4주에 한번 연재.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1099.html?_fr=mt1#csidx9f2984c8d3f1a98af53561e2cef9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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