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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이재용 돈 없다고 걱정해주는 한심한 언론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21-03-14 09:20:48
수정 2021-03-14 09: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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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쓸 데 없는 걱정이 재벌 걱정, 연예인 걱정, 건물주 걱정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요즘 이 쓸 데 없는 걱정을 언론이 유난히 열심히 한다. 특히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조금이라도 손해 볼까봐 노심초사, 전전긍긍 하는 언론이 한 둘이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자기 밥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니 그들의 전전긍긍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껏이다. 예를 들어 3월 8일자 『머니투데이』의 ‘[단독]현금 없는 이재용…수천억 신용대출 받아 상속세 낸다’ 기사는 심해도 너무 심했다. 이재용 씨가 신용대출을 받으니 걱정돼 죽겠나보다. 이 사람들은 이재용 심기가 상할까봐 밤에 잠이 안 오고 막 그러나?

기사 내용을 요악하자면 이재용 일가가 총 11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속세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상속세가 11조 원인 사람을 보면 ‘어이쿠, 누구 자식인지 부모 잘 만나 호강하네’라며 부러워하는 게 정상이지, ‘어이쿠, 상속세가 11조 원이나 되다니 불쌍해 죽겠네’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인가?

아무튼 이 오지랖 넓은 기사는 내용조차 허접해서 별로 소개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대목,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이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불쌍한(!) 이재용 씨가 집에 보관해둔 유명 미술작품을 팔아서라도 돈을 마련하려고 하는데 그게 여의치 않다며 걱정하는 대목이다.

기부 압박은 누가 한 건가?

 

이 부분에 대한 『머니투데이』 기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① 상속세 마련을 위해 이재용 일가가 미술 작품 1만 2,000~1만 3,000점을 팔 수도 있는데, 이들 작품의 감정가는 3조 원 정도다.
② 미술계에서는 “삼성가문이 이 작품을 기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국가에 헌납했다가 훗날 예상치 못한 오해와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어 기증은 어려울 것이다.
③ 그래서 이재용이 미술품은 못 팔고 보유 주식은 팔아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기사는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재계 관계자의 이야기를 슬쩍 끼워 넣는다. “현금이 없어 빚을 내고 여차하면 지분까지 매각해야할지도 모르는데 ‘기부하라’는 일부 여론의 압박 때문에 미술품을 팔지 못한다면 황당한 경우”라는 게 그 코멘트다.

진짜 웃기는 짬뽕들 아닌가? ‘기부하라’는 여론의 압박? 도대체 누가 이재용 보고 소장 미술품을 기부하라고 압박했나? 삼성가에 대해 책까지 쓴 나도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 그러면 기부하라고 압박한 자는 기사를 쓴 기자 너님이냐? 아니라고? 그러면 나도, 너님도 아닌데 도대체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거냐?

행여 미술계에서 그런 압박을 한다는 헛소리를 할까봐 못 박는다. 삼성 일가는 미술계에서 유명한 큰손이었다. 워낙 미술품을 고가에 잘 사줘서 미술계는 그야말로 삼성 일가에 껌뻑 죽었다. 그런 미술계가 감히 이재용에게 “미술품을 기부하라”고 ‘압박’을 한다고? 웃기는 소리는 작작들 하자.

‘삼성가가 미술품을 기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올해 초다. 그것도 몇몇 언론이 [단독]마크 붙여가며 떠든 이야기들이다. 다른 언론은 오히려 상속세 물납제, 즉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하면 어떤가?’라는 이야기를 흘리고 다녔다.

기부설을 흘리면서 동시에 ‘그런데 돈 대신 이걸로 세금을 내면 안 될까요?’라고 간을 본 것이다. 자기들이 그렇게 떠들어놓고 그걸 여론의 압박이란다. 아, 니들이 여론 그 자체여서 그런 거냐?

나는 이재용과 그 일가가 저지른 파렴치한 범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죗값은 미술품으로 치렀으면 좋겠어요’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기부하라는 여론의 압박이라는 건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기부 압박을 받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엄살을 떠시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술품을 기부하지 못하는 황당한 이유

둘째, ‘미술품을 국가에 헌납했다가 훗날 예상치 못한 오해와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어 기증은 어려울 것이다’라는 대목에서는 진심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만약 이재용이 미술품을 국가에 헌납한다면 그건 칭찬받을 일이다. 나도 칭찬하겠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그 미술품이 정당한 돈으로 구입한, 즉 순수한 이재용 일가의 재산이어야 한다는 전제다.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정당하게 구입한 미술품을 국가에 헌납하는데 누가 그걸 비판하나? 당연히 칭찬하지.

심지어 기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기부는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깨끗한 돈으로 구입했다면 주저 말고 구입 자금 출처를 밝힌 뒤 미술품을 팔아 상속세 재원으로 사용하라.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하라고 해도 이재용 일가는 절대 자금 출처를 밝히지 못할 것이라는 데 내 한 달치 최저임금을 걸겠다. 왜냐고? 정당한 경로로 구입한 게 아닐 테니까! 내 추정이지만 3조 원에 이른다는 그 미술품 중 상당수는 비자금으로 구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김철수 기자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의해 시작된 삼성 비자금 사건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관장이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를 통해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00만 달러에 달하는 프랭크 스텔라의 ‘베들레헴 병원’과 716만 달러인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등을 구입했다. 모두 삼성 비자금으로 구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증거로 미술품 리스트와 대금을 어떻게 외화로 지급을 했는지를 정리한 문서를 공개했다. 또 그는 “2002년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이재용이 직접 봤다는 확인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검은 수사 끝에 “대부분의 미술품을 이건희 일가가 개인 자산으로 구입한 것”이라고 결론지어 버렸다.

문제는 특검 수사가 절대로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에버랜드를 ‘애벌랜드’로 잘못 발음한 특별검사 조준웅은 이건희에게 면죄부만 왕창 주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 덕에 이건희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초대형 비리를 저지르고도 집행유예 5년으로 감옥행을 피했다. 당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지적했듯 그 수사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이건희 봐주기 수사였다.

미술품에 관한 수사도 그랬다. 특검은 삼성그룹 임원 9명 명의의 차명계좌에서 국제갤러리와 서미갤러리 등으로 140억 원 가량이 흘러들어간 사실을 밝혀냈지만, 그 돈의 출처가 어디였는지는 정작 캐지 않았다. 심지어 이건희 일가에게 미술품을 판 브로커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는 각종 재벌들이 미술품으로 비자금을 세탁할 때마다 이름을 올린 인물이었다. 의혹은 널려있는데 특검이 이를 덮은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 미술품들, 기부를 하건 상속세로 대신 내건 이재용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 이참에 무슨 돈으로 그것들을 구입했는지 다 까보자. 당당하게 구입했다면 못 까볼 이유가 도대체 뭐냔 말이다.

결국 이 기사의 요지는 이렇게 해석된다. 이재용이 미술품을 팔아 상속세를 마련하고 싶은데 아무리 봐도 미술품 구입 자금 출처가 구린 것 같다. 그러니 불쌍한 이재용을 생각해서라도 구입자금 출처를 묻지 않는 것이 도리(!)다, 뭐 이런 이야기 아닌가?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자. 누군가가 훔친 장물을 사회에 기부했다. 그러면 그걸 칭찬해줘야 하나, 절도죄를 물어야 하나? 답은 당연히 후자다. 이게 이해가 안 되면 법치국가의 시민으로 살 권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도 언론이 이 이야기를 굳이 꺼내면서 “우리 이재용 님은 정~말 불쌍합니다. 상속세가 3조 원인데 돈이 없어요” 이러고 자빠졌다. 나는 이 몰상식이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삼성과 이재용이 이 사회의 상식을 얼마나 많이 허물고 있는지 또 한 번 절감한다. 이들의 범죄를 더 단호히 처벌하고, 무너진 상식을 다시 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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