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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이재용 ‘불법승계’, 정보 독점으로 사익 추구…시장 신뢰 훼손이 본질”

합병 우호 여론 조성 위해 악재 숨기고 근거 없는 낙관 전망…합병 과정 반칙, 중대한 시장 교란 행위

조한무 기자 
발행2021-04-22 19:30:47 수정2021-04-22 19:30:47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01.18ⓒ김철수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승계’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자본 시장 신뢰를 무너트린 중대한 위법 행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박사랑·권성수)는 22일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 등의 첫 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경영진이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허위 공시로 주주와 투자자를 속여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삼성그룹을 지배하려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 확보가 필수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지분 23.3%를 보유한 제일모직과 보유 지분이 없는 삼성물산 간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약 4%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게 됐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가치는 낮추고 제일모직 가치를 높여야 유리했던 셈이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이 삼성물산 대비 3배에 달하는 가치를 가진 것으로 책정됐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피고인)이 위법 행위를 통해 기업 가치를 왜곡했다는 게 검찰 기조다

 

검찰은 공소제기 취지를 설명하면서, 자본 시장에서 정보 공개가 갖는 중요성을 역설했다. 정보 공개는 투자자를 불공정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데, 경영진은 이 부회장 개인을 위해 거짓 정보를 뿌렸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대주주 일가 지배받는다”며 “이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삼성물산 정보도 지배하면서, 합병에 대해 총수일가와 주주 간 정보 비대칭이 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합병 과정에서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정보는 은폐하고 유리한 내용은 부풀려 허위 정보를 제공했다”며 “정보 독점으로 사익을 추구해 자본 시장 공정성과 신뢰를 훼손한 게 이 사건 본질이자, 중대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보 비대칭에 기반한 부정거래 행위는 주주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입힐 뿐 아니라 자본 시장 신뢰를 무너트려 기업의 원활한 자금 조달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망가트린다”고 덧붙였다.

자본시장법은 중요 사항을 누락하거나 거짓 정보를 알려 이익을 얻으려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또한 시세 변동 목적으로 풍문을 유포하거나 거짓으로 꾸민 계획을 유포해도 처벌 대상이 된다.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제일모직과의 합병 관련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입장을 위해 본인확인을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악재 숨겨가며 합병 우호 여론 조성…‘에피스 단독 지배’는 허위 공시

검찰은 경영진이 합병 성사를 위한 이사회 결의 단계에서 인위적으로 주가를 조정했다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이 제일모직 주가에 불리한 악재를 합병 결의 이사회가 개최된 뒤에 발표하는 등의 주가 부양 계획을 수립·시행했다는 것이다.

또한, 경영진이 이사회 이후 주주총회를 앞두고 양사 경영상 필요에 따라 합병을 추진한다고 밝혔으나, 사실은 승계를 위한 목적이었기에 허위 정보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주총에서 삼성물산 주주의 찬성표를 얻기 위해 행해진 허위 정보 제공도 지적됐다. 경영진이 제일모직 가치가 높아 보이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로직스) 주가 상승을 꾸몄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로직스는 미국의 바이오젠과 세운 합작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경영진은 합병 직전인 2015년 5월부터 에피스 상장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물산 주주에게 제일모직 매력을 호소하려면, 에피스에 대한 로직스의 지배력이 강하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었다.

에피스 상장을 사전에 계획한 경영진은 2015년 3월 로직스 재무제표에 에피스를 단독 지배하고 있다는 내용을 기재했다. 로직스가 보유한 에피스 지분이 80%를 웃돌았기에 외관상으로는 단독 지배로 비쳤다.

검찰은 당시 로직스가 에피스를 단독 지배한다는 건 허위라고 보고 있다. 바이오젠은 언제든 에피스 지분 50%-1주를 매입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에피스의 주총의결 요건은 50%가 아닌 52%였다. 바이오젠이 에피스에 대한 로직스의 지배력을 견제하기 위해 요구한 내용이었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해 절반 가까운 지분을 확보하게 되면 로직스가 지분 52%를 보유하는 게 불가능해져 에피스 지배력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경영진은 로직스 공시에서 콜옵션 관련 내용만 밝히고 주총의결 요건을 은폐했다. 에피스에 대한 로직스 지배권에 제약이 있다는 점을 숨겨 주주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에피스 상장과 관련해 바이오젠과의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상장 계획을 발표한 점도 제일모직 주가를 올리기 위한 위법 행위라고 검찰은 지적했다.

검찰에 따르면, 합병 의결 주총을 한 달 앞둔 2015년 6월 경영진은 합병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데 집중했다. 회사 측이 해외투자자·의결권 자문사와 접촉해 이번 합병에 있어 이 부회장 승계는 고려하지 않았으며 삼성물산 쪽에서 먼저 합병을 제안했다는 허위 내용을 유포했다는 것이다. 증권사를 압박해 합병에 불리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나오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내용도 언급됐다.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뉴시스

합병 과정 반칙, 중대한 시장 교란 행위…근거 없는 낙관, 달성 여부 떠나 위법

검찰은 합병 목적을 승계로 보는 시각이 잘못됐다는 변호인 측 주장에 대해서도 “쟁점을 호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해당 사건 쟁점은 합병 목적이 아닌, 합병 과정에서 벌어진 허위 정보 제공 행위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공소사실은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해 합병 과정에서 나타난 반칙이 중대한 자본 시장 질서 교란 행위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합병 목적이 승계였다는 입장도 견지했다. 검찰은 “국정농단 사건 재판부는 합병 목적이 승계라고 명시했다”며 “애초에 승계가 목적임에도 사업상 필요에 따른 합병이라고 속였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경영진이 내세운 합병 시너지 효과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경영진은 합병 추진 과정에서 6조원 이상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며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검찰은 “시너지 효과 예측 수치에는 합리적 근거가 없다”며 “자본시장법에는 예측 정보도 합리적인 근거와 가정에 기초해 성실하게 행해져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변호인은 정성적으로 검토했다고 하는데, 정량적 검토가 없었다는 걸 자인한 것”이라며 “정성적 검토만 해놓고 구체적 수치를 강조한 건 자본시장법상 근거 없는 낙관적 정보 제공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시너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허위 정보 제공에 해당하는 건 아니라는 변호인 측 주장에 대해서는 “공소사실은 목표 달성 여부와 무관하다”며 “당시 제시한 예측이 사후적으로 빗나가서 문제라는 게 아니라, 예측에 대한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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