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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열전③] 다산콜센터 노동자 심명숙 “칸막이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일했어요”

임시로 일하겠단 생각으로 입사한 다산콜센터에서 3선 지부장 되다

권종술 기자 
발행2021-05-19 16:29:32 수정2021-05-19 16:54:06
 
심명숙 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지부장이 14일 서울 동대문구 다산콜센터 노조 사무실에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5.14ⓒ김철수 기자

“다산콜센터 심명숙입니다.”

전화번호 120을 누른 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반갑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때론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조차 알기 힘든 막막한 순간을 만나곤 한다. 서울시민들은 궁금하고,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면 120으로 전화를 걸어 다산콜센터에 질문하면 상담사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불법주차 단속을 비롯한 교통문제, 코로나19를 비롯한 보건 방역, 쓰레기 무단투기 등 청소, 하수도 시설 관련 문제, 소방안전은 물론, 신혼여행을 앞두고 여권 만료일이 다가와 연장을 요구하는 민원, 상속세 납부 관련 문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다. 다방면에 재능을 가지고 활약했던 조선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호에서 딴 이름답게 다산콜을 통해 받을 수 있는 도움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폭이 넓다.

많은 서울시민은 365일 24시간 120 다산콜을 찾았다. 전화는 물론 문자, SNS, 수어, 외국어 상담도 가능해 상담 건수가 연간 150만 건에 육박한다. 다산콜센터에서 발간한 ‘2019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앱을 통한 스마트 불편 신고가 66만9천954건, 전화 상담이 48만9천981건, 문자 상담이 31만8천822건, 챗봇 상담이 2만252건으로 나타났다. 수많은 이들의 궁금증과 하소연, 때론 억울함에 이르기까지 사연들이 다양한 만큼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쉽지 않다. 욕설과 성희롱에 이르기까지 언어폭력에 내몰리는 상황도 흔하다. 다산콜센터에서 전화상담 노동자로 십 년 넘게 일하고 있는 심명숙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2019년 다산콜센터에서 상담을 하고 있는 심명숙. 최근엔 코로나19 때문에 콜센터 내부 촬영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다산콜센터지부

“상담에 익숙해지려면
1~2년으론 안 되고,
3년은 지나야 해요.”

“3년은 돼야 제대로 상담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돼요. 1년 열두 달동안 시기별로 주요 민원이 달라요. 겨울철이면 한파로 인한 수도 동파 신고가 많아요. 여름철이면 하수구 정비를 요구하는 신고, 비가 많이 오면 빗물 역류, 침수 신고가 들어와요. 빗물이 역류하면 양수기 대여 문의도 들어오고요. 비가 많이 온다고 예보라도 나오면 침수 방지를 위해서 빗물받이 청소 요구 등도 들어와요. 겨울철 제설 작업도 큰 도로, 간선도로 순으로 진행되고, 제설 책임이 어디 있는지 다양하기에 관련한 안내도 숙지해야 해요. 염화칼슘 위치도 알아야 하고요. 은행나무 열매가 냄새난다고 떨어달라는 요구도 있고, 봄철엔 가로수 이파리가 무성해 영업에 방해된다고 가지치기 요구도 들어와요. 여기에 교통, 수도요금, 서울시가 공급하는 주택 관련 사업, 25개 자치구 및 보건소 관련 문의에 이르기까지 상담에 익숙해지려면 1~2년으론 안 되고, 3년은 지나야 해요.”

다산콜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선 얼마 정도의 시간의 필요하냐는 질문에 심명숙은 “3년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의 상담을 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 때문에 일에 적응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한다. 상담업무는 한 건이어도 그 일과 관련된 기관은 여러 곳이다. 예를 들어서 가족이 사망한 뒤 상속을 비롯해 필요한 후속조치 문의가 들어오면 사망신고 등 주민등록과 관련한 정리는 자치단체(시, 구, 읍, 면, 동)에서 하도록 하고, 금융감독위를 통해 사망자 금융 거래를 조회할 수 있으며, 각 자치구나 지자체를 통해 사망자 토지 소유도 조회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재산상속, 한정승인 및 포기 청구는 피상속인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서 하고, 상속세 신고 납부는 관할세무서에서 하게 된다. 자신에게 일이 닥쳤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한 이들에게 순서에 맞게 필요한 업무와 그 업무를 어디서 봐야 하는지 알려주고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게 다산콜의 임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숙달되려면 3년은 필요하다는 게 심명숙의 설명이다.

“나이 어린 관리자들이 많았는데,
독촉하고, 때론 반말로 하대하며
일을 시켰어요.”

심명숙은 10년 넘게 다산콜센터에서 일해온 베테랑 상담사다. 지금은 능숙한 업무 능력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사실 이 일을 시작할 때엔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2010년 8월부터 일했어요, 친구가 다산콜센터에서 먼저 일하고 있었는데 괜찮다고 소개를 해줘서 일을 시작했어요. 공무원 시험을 함께 준비했던 친구예요. 저도 5년 정도 7급, 9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지만, 안됐어요. 시험을 준비하면서 돈을 많이 썼어요. 어떻게든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 합격자 발표가 나자마자 다산콜센터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일을 다니며 다른 걸 준비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종의 임시직이었어요.”

다산콜센터 내 전광판. 응대율 등을 나타내고 있다. 2013년 자료사진.ⓒ뉴시스

길어야 1~2년 정도 일하겠다면서 시작했던 일이 어느덧 10년 9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공무원을 꿈꿨던 그에겐 시민들의 전화를 받고 도움을 주면서 공공적인 일을 한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런 뿌듯함 때문에 하루에 150~160콜을 받으며 쉴새 없이 일했지만, 힘든지 모르고 일했다. 일 중독처럼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몸이 아픈 줄도 몰랐다.

“다산콜센터 근무 환경은 열악했어요. 다산콜센터는 아이를 키우는 30대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예전엔 휴일 근무를 강제로 시켰어요. 한부모 가정 등 아이를 맡기기 힘든 이들은 정말 힘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데려갈 수도 있는데 연차를 당일에 신청하면 사용하지 못하게 했어요. 화장실 가는 것도 관리자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가거나 순서를 정해서 갔어요. 상담하면 질문과 답변을 타자로 쳐서 기록으로 남기는데, 이와 관련한 후처리 작업이 필요해요. 그런데 관리자들은 빨리하라며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았어요. 나이 어린 관리자들이 많았는데, 독촉하고, 때론 반말로 하대하며 일을 시켰어요.”

“칸막이 옆에서 누가 일하는지도 모르고
다음 날 안 나와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일이 어렵고 힘드니까
그냥 그만뒀나 보다 하고 생각한 거죠.”

이렇게 상담사들이 화장실 갈 새도 없이 일에 쫓긴 건 외주업체의 경쟁 때문이었다. 효성ITX 등 3개 외주업체가 다산콜에서 일했는데 상담 품질이 아닌 콜수로 경쟁을 했고, 콜수가 적으면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다산콜은 이들 콜센터 외주업체에겐 다른 콜센터 업무를 따내기 위한 중요한 고객사이었기에 과잉경쟁이 벌어졌다. “한 달에 한 번 업무 테스트도 했고, 이를 위해서 1주일 동안 나머지 공부를 시키기도 했어요. 평균이 낮으면 안 되니깐 틀린 문제를 숙지하게 하는 등 경쟁이 대단했어요.”

심명숙 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지부장이 14일 서울 동대문구 다산콜센터 노조 사무실에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5.14ⓒ김철수 기자

아울러 상담사 개인 간의 경쟁도 치열했다.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의 평균임금은 높지 않았으며 근속에 따른 숙련도도 반영되지 않았다. 경력 1년차 상담사와 3년차 이상 상담사의 임금 차이는 몇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반면에 최고 S등급부터 최저 D등급으로 각각 평가돼 지급되는 성과급의 경우 매달 최대 20만 원까지 차이가 있었다. 상담사들은 성과급에 목을 매며 콜수를 늘리기 위해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노동강도는 강화됐다. 최대한 많은 콜을 받기 위해 통화는 짧아져야 했고, 민원인들이 받는 안내의 질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일터에선 자신의 고민을 나눌 동료가 없었고, 하나둘 사라져가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칸막이 옆에서 누가 일하는지도 모르고 다음 날 안 나와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일이 어렵고 힘드니까 그냥 그만뒀나 보다 하고 생각한 거죠.”

열악한 근무환경과 과도한 경쟁, 그렇다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1년을 못 채우고 그만두는 이들이 많았다. 앞서 이야기했듯 1년을 일해야 어느 정도 업무 파악이 되고. 3년은 지나야 익숙해지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퇴사율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퇴사율이 어마어마하게 높았어요. 그래서 퇴사도 순서를 정해서 했어요. 퇴사율이 너무 높으면 안 된다고 한달만 더 다녀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많았어요.”

2012년 9월 다산콜센터 노조 설립
“그전까진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힘들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공감대가 커진 거죠.”

이런 현실이 조금씩 변화된 건 다산콜센터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이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한 건 지난 2011년 11월경부터다. 당시 희망연대노조에선 KT 자회사 콜상담업체인 KTIS, KTCS 상담사 조직사업 및 노조결성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콜센터 상담사 조직화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보궐선거를 통해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요 공약 중 하나가 노동인권 보장이었기 때문에 다산콜센터 노동조합 결성에 기대가 컸다.

2013년 다산콜센터 조합원 직고용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심명숙ⓒ뉴시스

하지만, 노조를 결성하는 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위탁업체에서 사전에 알기라도 하면 탄압이 커질 게 불을 보듯 뻔했고, 3개 위탁업체로 나눠진 상황에서 어느 한 곳에서만 노조가 만들어지면 제대로 싸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산콜노조를 준비했던 사람들은 ‘△3개 위탁업체 주체들이 함께 참여한다, △ 노조 설립 때까지 비밀을 유지한다, △ 노조 설립 후 3개월 내에 조합원 과반수를 조직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10개월여 준비를 거쳐 2012년 9월 12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조의 다산콜센터지부로 노조설립신고를 했다.

심명숙은 노동조합 설립 초기에 가입했다. 심명숙은 대학 시절 학생회 활동을 했지만, 직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더구나 길어야 1~2년 일하자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일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열심히 일해 콜수도 항상 상위권이었던 그를 사측에 가까울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고, 노조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다고 한다. “회사에 불만이 없는 것 같고, 관리자 말도 잘 듣고, 실적도 잘 나왔어요, 그러다 보니 ‘사측’이라고 여겼던 거죠.”

노동조합을 만든 사람들은 상담사 과반수 이상 노조 가입을 목표로 걸었지만, 사실 10%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직률이 높아서 직장에 크게 애정을 가지기 힘들었고, 경쟁도 심해서 동료의식도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칸막이에 갇혀 있던 개인들이 공감대를 넓혀가며 서로 하나가 되어 갔다. “그전까진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공감대가 커진 거죠. 더구나 한곳에서 일하지만, 위탁업체가 다른 경우엔 말도 잘 안 했어요. 수시로 평가가 있어 관련한 정보가 유출될까 우려했어요. 또 업체 간에 생일축하금 등 대우에 차이가 있었는데 상담사들의 불만이 생길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교류를 막았고, 서로를 이간질했어요. 하지만, 노조가 생기면서 서로의 고충을 알게 되면서 이해가 켜졌죠. 그리고, 관리자들의 거짓말에 우리가 너무 쉽게 속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함께하는 재미도 있었구요.”

“부당한 일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니
바뀌는 거예요. 그동안은 누가 신입으로 들어와도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서로를 알고, 걱정해주는 분위기가 됐어요.
그러면서 장기 근속하는 상담사들이
확 늘어났어요.”

그렇게 개인들이 모여 우리가 되면서 노동조합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과도했던 업무테스트, 추가 수당 없이 진행됐던 관행적인 연장 근로가 사라지는 등 노동조합 활동이 실질적인 성과로 나타나면서 12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한 노동조합은 불과 1년 만에 상담사의 50% 이상이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조합원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노동환경 개선에 힘이 실리면서 다산콜센터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2015년 겨울 다산콜센터 공무직 전환 직접 요구 집회 사진ⓒ다산콜센터지부

“등수를 매기려고 문제를 꼬아서 내던 업무테스트가 문제은행 방식으로 바뀌었고, 횟수도 한 달에 한 번에서 석 달에 한 번으로 줄었어요. 근무 시작은 9시부터인데 업무 준비라면서 8시 40분까지 출근하라고 강요하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평가에 반영하던 것도 개선됐어요. 화장실도 못 간 채 일을 강요받던 관행도 줄었어요. 악성 민원이 들어와 상담사 말투가 불친절하다고 신고라도 하면 이유는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사과 전화를 하라고 했어요. 그게 싫어서 그만두는 이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부당한 일들이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니 바뀌는 거예요. 그동안은 누가 신입으로 들어와도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서로를 알고, 걱정해주는 분위기가 됐어요. 그러면서 장기 근속하는 상담사들이 확 늘어났어요.”

다산콜센터에서 임시로 일할 생각을 가졌던 심명숙이 10년 넘게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노조에 가입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조가 없었다면 일 중독에 가깝게 보람을 느끼며 일하던 심명숙도 다른 상담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서서히 지치고, 아프면서 누구에게 하소연조차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직장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노조 결성 이후 콜수는 줄고,
통화시간은 늘어났어요.
장기근속으로 인해 업무숙련도가 높아지면서
민원인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리려고 노력하면서
1콜당 평균 통화시간이 늘어난 거예요.”

아울러 노동조합 결성은 다산콜센터 서비스 질의 향상으로도 이어졌다. “노조 결성 전엔 1인당 하루 평균 콜수 100콜에 총 통화시간은 3시간 20분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1인당 하루 평균 콜수 80콜에 총 통화시간은 3시간 30~40분 정도예요. 오히려 콜수는 줄고, 통화시간은 늘어났어요. 장기근속으로 인해 업무숙련도가 높아지면서 민원인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리려고 노력하면서 1콜당 평균 통화시간이 늘어난 거예요. 민간위탁일 때는 상담의 질보다는 단순 콜 실적 압박만 하다 보니, 충분한 설명이 어려웠거든요.”

이런 변화는 심명숙에게도 커다란 보람으로 다가왔다. “민원인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는 순간에 도움이 되면 보람이 커요. 문제에 따라 방문해야 하는 기관을 찾아주고, 어떤 절차로 업무 처리를 해야 하는지 알려드리면 고맙다고 인사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심명숙 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지부장이 14일 서울 동대문구 다산콜센터 노조 사무실에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5.14ⓒ김철수 기자

업무와 조합 활동에 보람을 느끼면서 심명숙은 노조 간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12년 노조 가입 직후 대외협력부장을 시작으로 2013년 부지부장, 2015년 사무국장을 거쳐 2017년엔 지부장을 맡게 됐고, 지금 3선을 하며 다산콜센터 노동조합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2012년 12월 서울시에 직접 고용을 촉구하는 투쟁을 시작하기로 계획을 세웠어요. 이후 2015년 4월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매일 8시부터 9시까지 1인시위를 했어요. 집회도 꾸준히 이어가는 등 정말 오랫동안 싸웠어요.”

2년 넘는 투쟁 끝에 이뤄낸 재단 직고용
하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저임금

2년 넘게 싸워 다산콜재단이 2017년 5월 세워졌고, 400여 명의 콜센터 노동자들이 재단 직고용 형태로 정규직 전환을 이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지쳤고, 심명숙의 표현을 빌리자면 “할 사람이 없어서” 지부장을 맡게 됐고, 지부장을 맡은 이후엔 책임감으로 3번 연속으로 지부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부장을 맡았지만, 여전히 다른 조합원들과 똑같이 일하고, 남는 시간을 쪼개 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 임석환 부지부장은 “지부장은 강단이 필요한 자리예요. 때론 고집도 필요하고요. 밀고 나갈 부분에선 밀고 나가지만, 그렇다고 독단적이지 않아요. 자기 주장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잘 듣는 사람”이라고 심명숙을 칭찬했다. 김배아 사무국장도 “본인보다는 남을 위해서, 조합원을 위해서 활동하는 분이에요. 본인 연차나 대휴도 거의 노조 활동을 위해서 쓰니깐 개인 시간이 없다시피 해요”라며 칭찬에 힘을 보탰다.

2017년 겨울 재단 안정화 요구 집회. 사진 오른쪽이 심명숙 다산콜센터지부장ⓒ다산콜센터지부

직고용을 이뤘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고용 형태는 직고용으로 바뀌었지만, 저임금 노동은 여전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인 콜센터 노동은 여전히 반찬값이나 벌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업무로 취급됐다. “다산콜재단 상담사 평균임금은 서울시 18개 출자·출연기관 정규직 평균 연봉과 비교했을 때 꼴찌예요. 다른 산하기관은 정규직 사무직으로 보지만, 우리는 그냥 ‘콜센터’예요. 고용 안정만 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며 임금 인상엔 부담스러워해요. 대부분 공공기관도 콜센터 관련 업무의 임금을 최저임금에 식비 정도 더해주는 수준에서 책정해요. 지금은 정부의 임금 인상 가이드라인 적용을 받는데, 콜센터 노동자들은 다른 정부 기관과 비교해 임금 자체가 적어서 똑같은 인상률을 적용받아도 금액은 적을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되니 임금 격차는 해가 갈수록 더욱 벌어져요.”

“욕은 안 하지만. ‘불 질러도 되겠네’,
‘누구 하나 죽어야 해결되겠다’,
‘내가 죽으면 되겠네’ 등
협박성 발언들이 많아요.”

성희롱, 욕설 등 감정노동에 내몰리는 상황도 빈도는 줄었지만, 은근한 협박성 발언과 위협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집 앞 주차장은 도로교통법 적용을 받지 않아서 불법 주정차 단속 대상이 아니라고 안내하면 ‘그럼 이 차 내가 부셔도 되냐?’고 막무가내로 말하는 이들도 있어요. 또 어떤 분은 공사 소음이 시끄럽다고 신고를 하면서 ‘내가 칼을 잘 쓴다’고 상관없는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해요. 그런 은근한 위협성 발언들이 많아요. 욕은 안 하지만. ‘불 질러도 되겠네’, ‘누구 하나 죽어야 해결되겠다’, ‘내가 죽으면 되겠네’ 등 협박성 발언들이 많아요.”

이런 일들이 많다 보니 스트레스를 푸는 심명숙만의 노하우도 생겼다. “저는 걸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산책하면서 몸을 힘들게 하고, 한 시간 정도 출퇴근 시간에 걸으면서 생각을 지워요. 아무리 힘든 상황도 퇴근하면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요. 기억하면 상처가 되잖아요, 일이랑, 나를 되도록 분리해요. 내게 한 말이 아니라, 아무리 험한 말이라도 그건 서울시를 향해 한 말이니깐요.”

심명숙 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지부장이 14일 서울 동대문구 다산콜센터 노조 사무실에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5.14ⓒ김철수 기자

그렇게 스트레스를 이기며 10년 넘게 상담사로 일해온 심명숙에게도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 상황은 이전엔 겪어보지 못한 혼란 그 자체였다. 정부와 방역 당국에 의해 코로나19와 관련한 구체적인 방역지침이 세워지기도 전에 다산콜센터엔 이와 관련한 다양한 문의가 쏟아졌다. 2020년 4월 다산콜재단이 서울시의회 보고한 ‘2020 주요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1월 23일부터 4월 13일까지 코로나19와 관련한 총 상담은 19만 5천365건으로 전체 상담 가운데 14,4%를 차지했다. 특히 4월의 경우 코로나 관련 상담 비중이 30%에 육박해 하루 평균 6천~7천 건의 상담이 이어졌다.

코로나19 문의 전화 하루 수천 건
“제대로 지침을 전달받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사실상 항의받고,
아우성 듣는 게 일이었어요.”

“대구에서 신천지 집단감염이 있던 때에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있어 대구에 갔다 왔는데, 집에 그냥 들어가도 되냐는 문의가 많았어요. 당시엔 해외 입국자만 관련 지침이 있었을 뿐 국내 발생과 관련해선 지침이 없어 혼란스러웠어요. 또 마스크 대란 당시엔 어디서 마스크 살 수 있냐, 서울에선 우체국에서 왜 마스크를 안 파냐, 당시엔 의사 소견서가 있어야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와 관련한 문의도 쏟아졌어요, 말이 문의지 우리도 제대로 지침을 전달받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사실상 항의받고, 아우성 듣는 게 일이었어요.”

서울시에서 긴급 생활비 지원이 시작되면서 혼란은 더욱 커졌다. 자료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상황에서 안내를 해야 했다. 상담과 관련해 궁금한 부분은 정부나 서울시 부서 등에서 확인해야 하는데 전화가 폭주하면서 담당자와 통화조차 힘들었다. “지난해 7월 민주노총 산하 콜센터 노동조합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고용노동부, 국민연금, 보건복지부 등 거의 모든 공공 콜센터가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안내하려면 자세한 정보를 미리 알아야 하는데 기자들이 우리보다 먼저 아는 경우가 많았어요.”

서울 구로구 코리아빌딩 내 콜센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93명이 나온 가운데 2020년 3월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회의실에서 열린 코로나19 확산 위험 지대 콜센터 노동자 증언 및 기자회견에서 심명숙(왼쪽 세 번째) 민주노총 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지부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3.11ⓒ김철수 기자

여기에 더해 뭐라 대답하기 어려운 황당하면서도 곤란한 질문도 쏟아졌다. “‘마스크 쓰면 답답하냐’고 묻는 분이 있었어요. 중증 호흡기 질환이 있는 분들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됐거든요. 그래서 ‘답답하다’, ‘하지 않다’ 말하기 곤란해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또 ‘오늘 강남구 확진자가 몇 명이냐, 전날과 비교해서 몇명 늘어난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자기가 오늘 강남 유흥주점에 가야 하는데 확진자가 많이 나왔으면 안 가고, 적게 나왔으면 가려고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콜센터 코로나19 집단감염
“저희는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닭장 같은 작업장에서
책상도 120cm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일했어요.”

지난해 3월엔 서울 구로 콜센터 노동자들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되면서 콜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저희는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닭장 같은 작업장에서 책상도 120cm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일했어요. 내 옆은 물론 바로 앞에도 일하는 사람이 있고, 창은 전혀 없는 폐쇄된 공간이거든요. 창이나 문을 열면 소음이 들어가기 때문에 통풍은 꿈조차 꾸기 힘든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는 상황이었거든요. 다른 콜센터들도 다들 비슷해요. 민간은 더욱 심해서 다산콜센터보다 좁은 사업장도 많아요.”

이런 열악한 작업 환경에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는 콜센터 노동 현실은 집단 감염을 일으키기 좋은 여건이었다. “아파도 쉬기 힘들어요. 아프면 집에서 쉬는 게 아니라 휴게실에서 잠깐 쉬다가 다시 일해야만 해요. 콜센터에선 아파도 병가를 안 내줘요. 다산콜센터 같은 공공기관은 그나마 개선됐지만, 아직도 많은 민간콜센터들은 아프면 그만두라고 해요. 실적 때문에 병가를 주거나 휴가를 주는 것보다 퇴사시키고, 새로 뽑거나 몸이 나은 다음에 다시 뽑는 게 이득이거든요.”

심명숙 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지부장이 14일 서울 동대문구 다산콜센터 노조 사무실에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5.14ⓒ김철수 기자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해 다산콜센터에선 재택근무를 도입해 25% 정도의 상담사가 재택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다산콜센터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겐 새로운 위기로 다가왔다.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지금의 재단 직고용이 아닌 개인사업자 또는 프리랜서 형태의 외주 노동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혼자 일하면서 스트레스가 더욱 커졌다는 데 있다. “상담사끼리 정보를 교류 또는 공유하는 게 중요한데 혼자서 하면 그게 힘들어요. 일하는 공간과 생활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업무가 이어지면서 스트레스가 커진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스트레스도 풀어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고요. 또한, 노조 활동에도 어려움이 많아요. 대면으로 교육을 할 수 없고, 대화를 직접 못하니깐 오해도 생기는 것 같아요. 만나면 고충도 들어주는데 재택인 분들은 자신들이 소외된다고 여기기 쉽거든요.”

“서울시 꼴찌 수준인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의
임금을 개편하려고 해요.
우리 노동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는
부분을 바꾸고 싶어요.

심명숙과 다산콜센터지부는 그동안 노동환경을 바꾸고, 직고용을 이뤄내는 성과를 거뒀다. 아울러 그들의 지난 도전은 일터를 바꿔냈고, 그들이 매일 목소리를 듣는 민원인에게도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적 같은 일을 이뤄냈다. 그렇게 서로 힘을 모아 현실을 바꿔온 이들에겐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서울시 꼴찌 수준인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의 임금을 개편하려고 해요. 우리 노동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는 부분을 바꾸고 싶어요. 또 작업 환경도 개선하려고 해요. 지금 재택근무를 통해 밀집도를 분산시켰지만, 근본적 해결은 아니에요. 코로나19뿐 아니라 다른 감염병에 대비하려면 일하는 공간 확대도 필요하거든요. 또 예전 540명이던 근무 인원이 지금은 340명으로 줄었는데. 질 좋은 서비스를 위해선 충원도 필요해요. 감정노동을 완화하기 위한, 구조적 지원도 필요해요. 법적 처벌만으로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거든요.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부 활동에 계속 힘을 쏟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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