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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줄 알았지만…300㎏ 파지가 그에게 쏟아졌다

등록 :2021-05-28 20:08수정 :2021-05-29 02:37
 
 
300㎏ 파지 쏟아져 화물기사 참변

쌍용C&B에 파지 운송 하던 50대 기사
하역편의 위해 경사로서 컨테이너 문 개방
위험 알아도 화물받는 고객사 눈치봐야
쌍용쪽 하역업무 외주화로 안전은 방치

쌍용쪽 “경사로 위험 전달 못 받아”
화물연대 “화물 받는 쪽이 안전인력 둬야”
 
지난 26일 화물차 기사인 장아무개(52)씨가 컨테이너 내부에서 쏟아진 파지 뭉치에 깔려서 응급차로 후송된 뒤 사고 현장 모습. 사진 화물연대 제공
지난 26일 화물차 기사인 장아무개(52)씨가 컨테이너 내부에서 쏟아진 파지 뭉치에 깔려서 응급차로 후송된 뒤 사고 현장 모습. 사진 화물연대 제공
 

30년을 화물차 기사로 일한 남편의 하루는 늘 해 뜨기 전에 시작됐다. 아내는 남편이 먹을 밥과 반찬, 떡과 주전부리를 싸서 손에 들려 보냈다. 지난 26일도 남편은 새벽 4시30분께 집을 나섰다. 세 딸을 애지중지하는 남편이 그날 되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아내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28일 화장지 생산업체인 쌍용씨앤비(C&B)와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의 설명을 종합하면, 화물차 기사 장아무개(52)씨는 지난 26일 오전 9시15분께 화물 운송지인 세종시 조치원읍의 쌍용씨앤비 공장 안 도크(깊게 판 구조물)에 차를 세운 뒤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가 300㎏ 무게의 파지 두 뭉치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그 밑에 깔렸다. 장씨는 곧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인 27일 끝내 숨을 거뒀다.

 

화물운송사업법에 따른 화물차 기사(운송사업자)의 업무는 ‘화물차를 이용하여 화물을 유상으로 운송하는 일’로, 운송을 마친 뒤에 컨테이너를 여닫는 건 고유한 업무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화물을 받는 업체(수화인) 쪽은 화물차 기사에게 컨테이너 문을 열거나 안에 있는 화물을 꺼내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잦다는 증언이 나온다. 강동헌 화물연대 전략조직국장은 “운송 과정에서 컨테이너 문 쪽으로 화물이 쏠려 있는 경우 문을 살짝만 열어도 확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있다”며 “화물 상·하차나 컨테이너 개폐 작업은 위험 요소가 많아 수화인 쪽에서 별도 인력을 두고 안전조처를 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쌍용씨앤비에 화물을 실어나르던 기사들도 공장 안 도크에 진입하기 전에 하역 관련 직원들의 요구에 따라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컨테이너 안의 화물을 내리는 쪽은 일하기가 편하지만, 화물차 기사 처지에선 화물이 쏟아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쌍용씨앤비의 공장 안 도크는 아래로 30도가량 경사져 있었다. 화물차가 경사면에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다 보면 컨테이너 내부 화물이 문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상당하다. 화물차 기사들이 쌍용씨앤비 쪽에 여러 차례 ‘평지에 차를 대게 해 달라’거나 ‘문을 여는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요청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공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화물차 기사 ㄱ씨는 “이전에도 파지가 여러 차례 굴러떨어진 적이 있어 항상 조심해야 했다”며 “경사진 도로에 차를 대면 화물이 쏟아지기 쉬워서 평지에 대게 해 달라고 여러 번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요구 사항은 쌍용씨앤비에 직접 가 닿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쌍용씨앤비 쪽은 “경사로 주차를 피하게 해달라는 요구는 전달받은 사실이 없다”면서 “다만, 더 적극적으로 안전 관련 지시를 하지 못한 것은 잘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컨테이너 내부에서 쏟아진 파지 뭉치에 깔리는 사고로 숨진 화물차 기사 장아무개(52)씨가 사고 당일인 지난 26일 새벽에 들고 나갔으나 사고로 고스란히 남겨진 도시락통 모습. 사진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제공
컨테이너 내부에서 쏟아진 파지 뭉치에 깔리는 사고로 숨진 화물차 기사 장아무개(52)씨가 사고 당일인 지난 26일 새벽에 들고 나갔으나 사고로 고스란히 남겨진 도시락통 모습. 사진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제공
 
화물 보낸 이도, 받는 이도 안전 외면…주인잃은 도시락 그대로 식어가

 

이런 안전 부재는 하역 관련 다단계 원·하청 구조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쌍용씨앤비는 화물차에서 파지 등을 내리는 업무를 외주화했고, 하청업체는 자사 소속 지게차 기사에게 일을 맡겼다. 숨진 화물차 기사 장씨 등에게 ‘컨테이너 문을 열어달라’고 지시했거나 경사로 관련 불만을 청취한 쪽은 하청업체 관계자였을 공산이 크다.

 

화물을 받는 쌍용씨앤비와 화물차 기사 사이엔 원래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다. 파지 같은 화물을 파는 업체(화주)가 장씨가 소속된 운송업체에 돈을 지불하면 그 업체가 장씨에게 일감을 주는 식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화물을 받는 쌍용씨앤비가 계약한 하역 하청업체의 요구를 화물차 기사가 거부하기 어렵다. 화주의 고객사인 쌍용씨앤비가 화물을 받는 하역 현장에서 마찰이 생기면, 추가로 운송 일감을 받기 어려운 탓이다. 화물차 기사는 계약서상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다른 노동자처럼 급여를 받는 게 아니라 소속된 운송업체로부터 계약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이런 탓에 위험을 알면서도 컨테이너 개방을 거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화물차 기사들이 컨테이너 문을 열거나 화물 상·하차 작업을 하다가 사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엔 한 화물차 기사가 화물을 싣던 도중 기계가 굴러떨어져서, 11월엔 화물차 기사가 석탄재를 컨테이너에 싣다가 추락해서 숨졌다. 지난 3월엔 화물차 기사가 석고보드를 내리다 석고보드가 쏟아져 사망했다.

 

운송 현장을 함께 다니기도 했다는 장씨의 아내는 “운송 업무가 다 끝났는데도 수화인의 지시로 컨테이너 문을 열거나 내부를 청소할 때가 있는데, 늘 불안했다”고 말했다. ‘컨테이너 검사·청소 작업’은 국토교통부 규정에 따라 운송사업자에게 시킬 수 없는 업무다.

숨진 장씨의 차량엔 도시락통이 남아 있었다. 아내가 싸준 하얀 밥과 장조림, 김치 등은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식어갔다.

 

조치원/신다은 송인걸 기자 downy@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997155.html?_fr=mt1#csidxe5b99650dea62d1a6ac023dff6850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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