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입수된 조선노동당 개정 당규약을 통해 들여다 본 북의 변화 흐름은 운명공동체인 우리에게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게 한다.
지난해 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하고 올해들어 '반
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묵과해서는 안된다며 강경하게 체제수호를 강조하는 북을 상대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해야 하는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한반도 종전과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전략적 접근' 주제 포럼 기조연설에서 "북은 사방에 철옹성을 치고 있다. 그러나 틈새는 있을 것"이라며, "지혜로운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측 문화가 들어오는데 대해서 겁을 내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어떻게 추진해야 북측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가져올 수 있겠는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고민했다.
단적으로 "김일성 주석 시절만 해도 자본주의 문화는 모기장으로 걸를 수 있으니 돈은 들어와도 좋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김정은 시대에서는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으로 다 막으려고 하고 있다"며, "남북대화가 이루어지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처럼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정 수석부의장에 따르면, 종전선언 구상도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평화프로세스는 그걸 통해서 경제 및 사회문화 공동체를 만들고 정치 공동체까지 나아가자는 것. 다시 말하면 서서히 분단의 고통과 불이익이 최소화되는 방향에서, 사실상의 통일을 지향하는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남측이 생각한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이다. 그러한 징후는 2005~2006년부터 시작됐다.
1977년 당시 국토통일원 공산권연구관실 연구관으로 첫발을 내딛어 45년 가까이 남북문제를 다뤄 온 전문가답게, 남북관계 역사흐름속에서 현황을 설명했다.
남측에서 바라는 바로는 '시장사회주의'라는 표현 정도로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햇볕정책'을 썼지만, 지금의 북은 '시장'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원본 사회주의'로 가겠다는 방향을 잡았다는 것.
한때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이었던 청년단체의 명칭이 얼마 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바뀌었으며, 단체 명칭 중 '애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결사옹위하자는 사상교양의 일환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북이 이른바 국가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일련의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
정 수석부의장은 최근 당규약 개정을 통해 본 북의 변화에 대해서는, 1980년대 말, 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동유럽에서 체제전환이 일어나던 시기 동·서독의 통일과정을 지켜보면서 북이 체제위기를 관리해 온 과정을 짚어가며 해설했다.
그에 따르면, 1991년 5월 북은 유엔 동시가입 반대 입장을 철회하고 7월 유엔에 가입신청서를 냈고 뒤이어 9월 초 신청서를 제출한 남이 유엔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여 남과 북은 국제법적으로는 두개의 코리아가 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면서 김일성 주석은 △남북 상호 체제인정과 존중 △상호 내부문제 간섭 중지 △상호 비방중지 △상대 파괴·전복위한 일체 행위 중지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군사정전협정 준수 등 체제안전에 관한 합의를 1조부터 5조까지 빼곡히 관철했다.
1992년 1월 미국으로 건너간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는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철회할테니 수교하자는 파격제안을 했다. 서울에 있는 대사관은 그대로 두고 평양에도 대사관을 설치하되 그 조건으로 주한미군을 용인하겠다는 것이었지만 미국은 이같은 수교제안을 거절했다.
비록 미국과의 수교는 불발됐지만 유엔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로 체제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확보했다고 생각한 북은 이후 6.15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측과의 교류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2005년 무렵을 정점으로 북은 남측의 우월한 경제력에 주민들의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시작했다고 정 수석부의장은 짚었다.
이번에 알려진 개정 당규약은 30년동안 북이 체제안전에 대해 고민해 온 '두개의 코리아'를 법·제도적으로 공식화해 기정사실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일성-김정일시대와 김정은 집권 10년간 견지해 온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규약에서 빼 현실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하여 북이 남측이 바라는 방식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사방에 철옹성을 치고 있는 북을 상대로 지혜롭게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할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날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과 공동주최한 포럼에서 배기찬 사무처장은 개회사를 통해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멈춰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오고 있다"고 하면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이루라는 시민의 요구와 시대의 명령을 남북이 함께 만나서 실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현숙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 공동대표는 개회사에서 "한반도 종전평화 캠페인은 국내외에 탄탄한 역량을 갖춘 민주평통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을 공동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오늘 포럼은 그 첫발걸음이다"라며, "오늘 포럼을 통해 종전의 문을 열고 평화를 이끄는 평화 동력이 만들어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축사에서 "분명한 것은 적대와 갈등이 아닌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의 여정에 남북미가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이라며, "이제 다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재개와 성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를 나눌 필요는 물론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미·중 경쟁시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전략'을 주제로 진행된 1세션 발제에서 "미국과 중국사이의 상호의존성이 너무 높아져서 양국 스스로도 경쟁적 공존으로 갈 수 밖에 없으며,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이다. 우리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이익에 맞게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재개 전략에서 중요한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미국의 우려사항을 핵동결-핵능력감축-군비통제 등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점진적·단계적 수순으로 정리하고,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안전보장(한미군사연습 중단,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과 제재해재와 관련한 수순과 연계하여 안보-안보 교환 프로세스를 구체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또 "북중관계의 특수성과 중국의 대북영향력, 중국이 정전협정의 당사국인 점 등을 고려할 때 한반도 평화-비핵 교환프로세스가 성공하려면 중국의 관여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포럼의 2세션은 '한반도 종전 평화를 위한 국제여론 형성 및 시민평화외교 방안'을 주제로 김태환 국립외교원 교수와 이태호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 상임집행위원, 신승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국제협력화해통일국장, 박종범 민주평통 유럽중동아프리카 부의장, 이철호 코리아피스나우 그래스루트 네트워크 LA 코디네이터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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