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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이재용 석방, 이 분노와 치욕을 잊지 않을 것이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8/16 08:59
  • 수정일
    2021/08/16 08:5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완배 기자 
발행2021-08-16 08:42:18 수정2021-08-16 08:42:18
 

참담하고, 참담하고, 또 참담하다. 이런 일이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정권에서 벌어지다니 믿을 수가 없다. 민중들의 혁명으로 집권했으면 민중들을 더 귀히 여겨야지, 어찌 재벌을 더 귀히 여긴단 말인가? 더군다나 이재용은 촛불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박근혜 뇌물 사건의 당사자란 말이다.

“정치적 판단일 뿐 재벌을 더 귀히 여긴 건 아니다”라는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일단 ‘정치적 판단에 의한 가석방’이라는 것부터가 일반 민중들은 결코 받을 수 없는 막대한 수혜다. 수혜는커녕 수많은 민중들은 정권의 정치적 판단 때문에 없는 죄까지 뒤집어쓰고 옥살이를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그 정치적 판단에 의한 석방의 혜택이 이재용에게만 집중되나? 그것도 촛불정부에서조차 말이다.

13일 청와대가 밝힌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보니 “한편으로는 엄중한 위기 상황 속에서 특히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라거나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같은 말들이 있다. 한 마디로 경제를 위해 이재용을 풀어줬다는 논리 아닌가?

이 칼럼에서 숱하게 밝혔지만 나는 이재용을 풀어준다고 한국 경제가 단 1그램도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백만 보를 양보해 누군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만약 그 예상이 틀려서 경제가 좋아지지 않으면 이재용을 다시 감옥에 가둘 건가? 못 그럴 거 아닌가? 가석방이라는 것은 “이번 판은 나가립니다. 다음 판을 기대하세요~”라고 노래 한 번 부르고 무를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통치 행위의 혜택이 무슨 성적 순서대로 적용하는 퀴즈대회 경품인가? 경제에 기여하면 죄를 사해주고 별로 기여를 못하면 감방에 계속 가두게. 도대체 이번 일로 무너진 도덕과 정의는 어떻게 회복할 건가?

설마 도덕이나 정의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참인가? 정말 그런 거냐고? 그러면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대통령 취임사는 도대체 뭐였냐는 말이다.

감옥에 가두기에 너무 큰 존재

“too big to jail”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자면 “감옥에 가두기에 너무 큰 존재” 정도가 된다. 원래 이 말의 뿌리는 “too big to fail”이다. 의역하자면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뜻이다. 어마어마하게 덩치를 키우는 바람에 절대 망할 수가 없는 JP모건 체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웰스파고,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월가의 6대 메가뱅크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들은 온갖 패악질을 저지른 뒤 망할 위기에 처하면 “우리가 망하면 미국 경제가 박살이 날 텐데요?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있을까요?”라며 배짱을 부린다. 미국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들이 필요하다”며 이들에게 각종 혜택을 쏟아 붓는다.

실제 월가의 패악질로 벌어졌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가 이를 수습하기 위해 투입한 구제금융 규모가 무려 7000억 달러(770조 원)였다. 물론 이건 미국 정부의 돈이니 니들 마음대로 써도 우리가 뭐라 할 일은 아니다.

회삿돈 86억원을 횡령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준 혐의로 징역형을 확정받고 복역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 돼 13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출소하고 있다. 2021.08.13ⓒ김철수 기자


문제는 미국이 위기를 극복한답시고 무려 16조 달러(1경 7000조 원)를 새로 찍어 냈다는 사실이다. 월가 살리겠다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티슈 찍듯 찍어내는 바람에 전 세계 경제가 박살이 났다. 70억이 넘는 인류가 월가의 패악질로 고통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이들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했다.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거세지자 2013년 미국 상원의원들이 법무부 장관 에릭 홀더(Eric Holder)에게 질문을 던졌다. “금융위기의 주범들이 아직도 활동을 하는데 이들을 처벌할 의도가 없나?”라고 말이다.

이때 홀더의 대답은 “월가 자본의 크기가 너무 커서 우리가 만약 그들을 처벌하면 국가경제, 심지어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였다. ‘망하기에 너무 큰 존재(too big to fail)’가 ‘감옥에 보내기에 너무 큰 존재(too big to jail)’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공화당 부시 행정부 때 벌어진 일이지만,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은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 때의 일이다. 월가를 ‘감옥에 보내기에 너무 큰 존재’로 공인한 홀더는 바로 오바마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었다. 미국 민중들의 열망을 등에 업고 당선된 오바마 행정부도 월가 앞에서는 꼼짝을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재용을 석방한 한국의 현실이 바로 오버랩되지 않나?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역시 이제용을 ‘감옥에 가두기에 너무 큰 존재’로 인정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도 명쾌한 해법을 제시한 이가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그 주인공이다.

샌더스의 소신은 간단하지만 명쾌하다.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 유세에서 그는 “If they’re too big to fail, they’re too big to exist!”라고 단언했다. “만약 그들이 파산하기에 너무 크다면, 애초부터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그에게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월가의 금융자본을 해체할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샌더스의 대답은 “Absolutely(당연하죠)!”였다.

우리가 나아갈 길도 이것이라 믿는다. 촛불정부조차 이재용을 가두지 못한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재용과 한국 재벌은 감옥에 가두기에 너무 큰 존재라는 사실이 완벽히 증명됐다. 그렇다면 그들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미국 민중들이 “월가를 점령하라”라고 외쳤다면, 우리는 “재벌을 해체하라”라고 외치는 일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을 공언한 대통령이 대놓고 자신의 선언을 어기며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한다. 그런데 나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뭘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가?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고, 결과는 정의롭지 않아도 돼. 원래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지 뭐” 이런 이해를 해야 하는 건가?

정권이 재벌에 휘둘리는 모습을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촛불정부가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감정이 쉽게 복원이 안 된다. 하지만 절망스럽다고 가야할 길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의 이 분노와 치욕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이 아무리 그들을 풀어줘도 우리는 다시 또 다시, 재벌 해체를 위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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