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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고려인들 “즈드라스트부이쩨” 여기선 안녕혀라~

등록 :2021-08-18 08:31수정 :2021-08-18 09:30

려인 동포들 광주 이주·정착 20년
 
지난 4일 저녁 광주시 광산구 월곡2동 ‘맛있는 정육점’ 앞길에서 고려인 동포 부부가 걷고 있다.
지난 4일 저녁 광주시 광산구 월곡2동 ‘맛있는 정육점’ 앞길에서 고려인 동포 부부가 걷고 있다.
 
스탈린때 강제이주 당했던 동포들
2007년부터 국내 재이주 본격화
집값 싼 월곡동에 둥지·특화거리
 

 

광주 고려인 마을 위치도.
광주 고려인 마을 위치도.

“즈드라스트부이쩨.”

 

 

 

경기도 안산에서 식료품점을 했던 김씨는 “안산의 고려인들과 달리 광주 고려인들은 부모와 자녀 등 3대가 가족 단위로 이주한 경우가 많다”고 광주 고려인 사회의 특징을 이야기했다.

 

월곡2동 고려인 특화거리는 외관부터 이채로웠다. Я, Б, Л, Ж 등 생소한 키릴글자 간판들을 단 음식점과 마트, 카페, 식료품점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러시아어를 하는 고려인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알렉스 김(25)은 “현재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한다. 이 거리에 오면 마음이 편해 퇴근 뒤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월곡2동 고려인 특화거리는 2014년 발레리 전(57) 대표가 ‘고려인마을 가족카페(1호점)’를 열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 고유의 풍미를 담아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외지 관광객들까지 찾아왔다. 고려인마을 가족카페는 4호점까지 생겨나 모두 가족들이 운영하고 있다.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가족카페’는 중앙아시아 전통 음식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 외지에서도 찾아온다.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가족카페’는 중앙아시아 전통 음식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 외지에서도 찾아온다.
 

고려인 특화거리엔 중앙아시아 음식을 파는 식당과 식료품점, 통신사 대리점, 무용학원 등 30여곳의 고려인 업소들이 들어섰다.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바람개비 꿈터 지역아동센터, 고려인 광주진료소, 월곡고려인문화관 등은 파란색과 녹색으로 칠해진 ‘러시아풍’ 외관이 이색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1937년 9월~1938년 1월 농업이민과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 영토로 이주했던 동포 가운데 17만여명이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수천㎞ 떨어진 중앙아시아에 던져졌다. 살아남기조차 힘든 척박한 땅에서 이들은 살아남았고, 고려인 공동체를 만들어 대를 이어 살아왔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한국과 왕래가 시작됐고, 2007년 러시아·우크라이나 등 12개 독립국가연합(CIS) 동포들을 대상으로 방문취업제도를 시행하면서 고려인들의 국내 재이주가 본격화됐다.

 

지난 3일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앞에서 신조야 센터장(가운데)과 이천영 목사(맨 오른쪽), 고려인마을 가족카페 발레리 전 대표와 촬영을 했다.
지난 3일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 앞에서 신조야 센터장(가운데)과 이천영 목사(맨 오른쪽), 고려인마을 가족카페 발레리 전 대표와 촬영을 했다.
 
이 가운데 광주지역을 찾은 고려인들은 하남·평동산업단지의 중간에 있어 집값이 그리 비싸지 않았던 월곡동에 터를 잡았다.

한국어를 하지 못해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고려인들 사이에서 공동체 의식이 싹튼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하남산업단지 인근에서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를 운영하던 이천영 목사와 당시 고려인 불법체류자였던 신조야(66)씨의 역할이 컸다.

 

두 사람은 2004년 9월 고려인 20여명과 고려인 공동체 모임을 꾸렸고, 1년 뒤엔 상담소를 개설했다. 신씨는 그동안 모은 돈을 털어 사무실을 빌렸고, 2009년 1월부터는 고려인지원센터를 열어 상주하기 시작했다. 고려인지원센터는 한국어 통역을 지원하고, 미취업자들에겐 숙식을 제공했다. 일자리를 알선하고, 임금체불 문제를 도왔다.

 

광주시 등 자치단체의 관심도 고려인 공동체 안정화에 큰 힘이 됐다. 2013년 10월 광주시의회는 전국 최초로 “고려인들을 광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대표발의자인 홍인화 전 광주시의원)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해 6월 광주시 광산구 고려인마을에서 열린 아시아인권평화대회. 광산구청 제공
지난해 6월 광주시 광산구 고려인마을에서 열린 아시아인권평화대회. 광산구청 제공


이천영 목사·불법체류 했던 신조야씨
고려인 공동체 ‘씨앗’ 뿌려 각종 도움
시의회 조례로 교육·의료 예산 지원
“광주선 투명인간 신세 면해” 입소문

 

이후 2014년 법무부에서 사단법인 ‘고려인마을’ 설립 허가를 내줬고, 고려인마을은 1억8천만원을 모금해 오래된 상가 건물을 사들여 2015년 7월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를 열었다. 현재 고려인마을이 운영하는 기관·단체는 어린이집, 고려인지역아동센터, 고려인진료소, 고려에프엠(FM)방송, 월곡고려인문화관 등 21곳에 달한다. 광주시와 광산구에서 지원받은 예산과 시민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잘 갖춰진 교육·보육체계는 고려인 커뮤니티의 자랑이다. 어린이집과 바람개비 꿈터 공립지역아동센터는 부모들의 출근 시간에 아이들을 돌봐주고, 이천영 목사가 2007년 설립한 다문화 대안학교인 새날학교는 2011년 초·중·고교 학력인정학교로 인가를 받아 대학 입학생을 배출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 고려인법률지원단이 무료로 법률상담을 돕고, 화요일 저녁엔 광주 의료인들이 무료진료 활동을 펼친다. 국내 고려인들 사이엔 ‘광주에 가면 ‘투명인간’인 우리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퍼졌을 정도다.

 

지난 3일 오후 광주시 광산구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해설사가 고려인 동포 강제이주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광주시 광산구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해설사가 고려인 동포 강제이주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공동체가 자리를 잡으면서 광주 고려인 거주자 수도 지난해 말 기준 5700명가량(광산구청)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10년 새 10배 이상 늘어, 경기도 안산(1만2천여명)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많다.

 

방문취업(H-2), 동포비자(F-4)를 얻어 광주와 전남지역 건설 현장이나 공장, 농장에서 일하는데, 5천명 이상이 광산구 월곡·하남동 등지에 모여 산다. 이천영 목사는 “경기도 안산엔 고려인들이 흩어져 살기 때문에 광주처럼 고유의 커뮤니티를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광주 고려인 공동체의 다음 목표는 주거문제 해결이다. 신조야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장은 “광주 시민들이 고려인 동포들을 품에 꼭 안아 주셔서 고려인 커뮤니티가 가능했다”며 “생계비 중 임대비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엘에이치(LH) 임대아파트에 고려인 동포들도 거주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동포들 나처럼 고생 않길 바라…꾸준히 봉사활동”
신조야 광주고려인마을지원센터장

 

신조야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장.
신조야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장.
 
“(새로 입국한) 고려인 동포들이 나처럼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3일 광주시 광산구 월곡2동 센터에서 만난 신조야(66) 고려인마을종합지원센터장의 말이다. 광주의 고려인 공동체가 자리잡는 데 큰 구실을 한 그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한국인 사위의 초청을 받아 2001년 10월 한국에 왔다. 충남 서천에서 시작한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한때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남 함평 콘크리트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는 광주 하남산업단지에 있던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에서 이천영 목사를 만나면서 고려인 동포 지원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사단법인 고려인마을의 고려에프엠방송은 2016년 임시 주파수를 받아 한달간 라디오 방송을 한 경험을 살려 휴대전화 앱을 통해 24시간 방송을 이어왔다.
사단법인 고려인마을의 고려에프엠방송은 2016년 임시 주파수를 받아 한달간 라디오 방송을 한 경험을 살려 휴대전화 앱을 통해 24시간 방송을 이어왔다.


“고려FM방송 허가 한국인 인정된 것
모금 통해 장비 사 내년 2월 첫 전파”

 

신 센터장은 법무부의 위임을 받아 고려인들이 외국인 등록증을 받을 때 필요한 법정 의무교육(3시간)을 하고 있다. 그는 “고려인 커뮤니티 안에서 마약이나 성매매 등을 하면 공동체가 모두 무너진다”고 강조한다. ‘깔끔이봉사단’을 조직해 일주일에 한번씩 거리 청소를 하고, 자율방범대를 결성해 월곡동 일대를 정기적으로 순찰하는 등 공동체 활동에도 열심이다.

 

신 센터장은 이천영 목사와 함께 ‘고려에프엠(FM)방송’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고려에프엠방송은 지난달 20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공동체 라디오방송’ 신규 허가 대상 사업자에 선정됐다.

 

그는 “전파법상 주파수는 공공재여서 고려에프엠방송 허가를 받은 것은 고려인들이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로, 획기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사단법인 고려인마을은 2016년 한달 동안 임시 주파수를 받아 라디오방송을 진행한 뒤, 휴대전화 앱을 통해 한국어 교육과 이민자 뉴스 등 12개 프로그램을 24시간 방송해왔다. 신 센터장은 “모금을 통해 방송송출 장비를 사들이고 내년 2월부터 라디오 방송을 송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1008084.html?_fr=mt1#csidxa82de42b3d914a5bbbec3563157f1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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