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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택배노조 죽이기, 씁쓸한 이유

김태원 전국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이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김포 대리점 소장 사망에 대한 노조 차원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1.09.02.ⓒ뉴시스

 지난해에만 16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들의 죽음 뒤에는 주 평균 72시간이라는 열악한 노동환경이 있었죠. 그래서 이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던 전국택배노조가 나섰고,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진행한 사회적 합의 끝에 과로사 방지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주 60시간, 1일 12시간을 초과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또 6년간 계약보장과 표준계약서도입도 약속받았죠. 무법천지였던 택배업계에서 택배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CJ대한통운 김포 장기대리점주가 택배노조를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 벌어졌습니다. 유서에는 고인이 일부 조합원으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죠.

택배노조도 자체 조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일부 인정했습니다. 조합원들이 일부가 고인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의 글들을 단톡방에 게재했었다는 겁니다. 단 폭언이나 욕설 등의 내용은 없었고, 소장에 대한 항의의 글과 비아냥, 조롱 등의 내용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문제는 사건 이후 였습니다. 같은 기자가 봐도 목적이 의심스런 보도가 여럿 보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예의 ‘노조 죽이기’ 여론이 형성돼 갔습니다.

 

최근 보도된 노조 간부와 비조합원간의 몸싸움 영상 관련 보도는 압권이었습니다. 악의적인 편집을 통해 비조합원이 노조간부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사건인 양 보도했습니다. 쌍방간에 다툼이 있었고, 그로 인해 몸싸움이 벌어졌다면 양측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보도는 의도적으로 한쪽이 일방적으로 폭행을 했고, 그 가해자가 조합원이라고 보도한 겁니다.

실제 노조가 공개한 전체 영상을 보면 앞부분에 비조합원이 노조 간부를 향해 망치를 먼저 꺼내 들거나, 택배 상자를 집어 던지는 등의 행위가 있습니다. 하지만 앞뒤를 자른 이 짧은(8초) 보도 영상엔 노조 간부의 폭력성만을 부각시켰죠.

‘노조간부가 대리점주에게 상납받아왔다’는 보도는 또 어떤가요. 사실과 다른 구석이 많습니다. 당사자인 노조 간부가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면서 대체인력 비용을 대리점주들에게 ‘상납’ 받았다는 것인데, 실제 돈을 상납했다고 지목된 대리점장들이 보도 내용에 대해 부인한 겁니다. 대리점 소장들이 부인한 내용을 언론이 보도한 셈이죠.

‘노조 죽이기’의 보도와 여론 목적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택배 노조가 만들어지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담당하는 주체가 누구일까요.

빠르게 성장하는 택배산업의 흐름 속에서 택배기사들이 오히려 과로사로 죽어 나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가슴에 담습니다. 지금 ‘노조 죽이기’에 앞장서는 일부 언론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면 자괴감이 듭니다.

변화를 만든 것은 정치권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언론도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며 거리로 나선 것은 택배 노동자 자신들이었고, 그들이 만든 택배노조가 단단한 버팀목이 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최근, 노조를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참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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