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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앞두고 세상 떠난 역학조사 공무원 “초과근무 월 120시간 달해”

공무원노조 “공무원도 노동자, 인력 충원하고 건강권 보장하라”

전호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이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서 ‘코로나 대응 인력 확충 및 처우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9.24.ⓒ뉴스1

 추석 연휴를 목전에 두고 수도권의 한 보건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역학조사 업무를 담당하던 30대 청년 공무원이 과로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19 대응 인력 확충과 처우 개선을 위한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한 탓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공무원노조)은 24일 서울 영등포구 공무원노조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의 죽음은 살인적인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공무상 재해 사망'"이라며 고인의 순직 인정과 공무원의 처우 개선을 정부와 지자체에 촉구했다.

"일이 너무 힘들다" 주변에 호소했던 역학조사 공무원

경찰과 인천시 부평구 등에 따르면 8급 공무원 A(35)씨가 지난 15일 오전 10시쯤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다.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월부터 인천시 부평구 보건소 상황실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역학조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확진자 동선을 파악하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확인하면서 관계자들에게 방역 협조를 요청하는 등의 업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업무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가장 힘들다"고 소문날 정도로 힘든 업무로 알려졌다.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고인도 주변에 "일이 너무 힘들다"고 여러 차례 호소했다고 한다. 홍준표 공무원노조 인천본부 부평지부장은 "역학조사는 거친 민원을 상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가격리를 통보하면 민원인들은 거칠게 나오기 마련이다"라며 "이런 거친 민원인을 상대하면서 고인은 정말 많이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고인은 월 120시간에 달하는 초과근무에도 늘 시달렸다고 공무원노조는 지적했다. 고인이 숨지기 직전인 올해 7월과 8월의 월별 초과근무 시간은 각각 117시간과 110시간이었다. 주말을 포함해 매일 하루 4시간꼴로 초과근무를 한 셈이다.

홍 지부장은 "살인적인 공무를 한 것"이라며 고용노동부의 '과로' 기준도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만성 과로의 기준을 '발병 직전 석 달 동안 주당 근로시간이 평균 60시간을 초과한 경우'로 보고 있다. 주 5일 기준으로 하루 4시간씩 석 달 동안 초과 근로를 해야 만성 과로로 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공무원노조는 "최근에는 4차 대유행을 수도권에 확진자가 급증해 상황실 업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며 "하지만 인천시는 코로나19 방역 선제대응이라는 명목하에 타 시도에서는 하지 않는 야간역학조사 및 기간확대, 선별진료소 운영시간 확대 등을 인력 충원도 없이 시행해 보건소 공무원들을 절망과 고통의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고 비판했다.

공무원노조는 부평구도 '보건소 상황실 인력 충원과 순환근무 실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계속 외면했다며 "결국 장기간의 격무와 스트레스로 고인의 삶은 피폐해질 만큼 지치고 힘들었지만 호소하고 의지할 수 있는 시스템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노조는 "고인의 죽음은 재난에 대응하는 공무원의 건강권을 도외시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인천시와 부평구는 유족에게 사과하고 즉시 순직 인정 처리하라"고 촉구했다. 또 "정부와 관련 지자체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현장 실태조사를 실시해 공무원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호소했다.

홍준표 공무원노조 인천본부 부평구지부 지부장이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서 ‘코로나 대응 인력 확충 및 처우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9.24.ⓒ뉴스1

보건소 떠나는 공무원들, 세상을 등지기도

더 큰 문제는 단순히 인천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5월 부산 동구 보건소에서 코로나19 대응 업무를 담당하던 30대 간호직 공무원도 과로를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바 있다. 고인은 사망 4개월 만인 지난 23일 순직으로 인정받았다.

보건소 근무자들의 초과근무 시간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비해 현격히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의 보건소 인력의 초과근무 현황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보건소 근무자의 지역별 평균 초과근무 시간은 2019년에 비해 월평균 88.7% 증가했다. 감염병이 지속된 올해(6월 30일 기준)의 초과근무 시간도 2019년에 비해 105.3% 증가했으며, 이는 코로나19 유행이 이미 시작된 2020년에 대비해서도 8.8% 증가한 수준이다.

이는 감염병 장기화에 대비한 보건소 인력이 업무량에 비해 확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다 보니 인력이 확충되기는커녕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보건소를 떠나는 공무원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보건소 공무원 휴직 및 사직 현황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 사직한 공무원은 468명으로 직전 3년 평균 311명보다 무려 50% 증가했다. 지난해 휴직자 수는 1천737명으로 이전 3년 평균 1천243명보다 40% 늘었다. 올해도 5월 말까지 200명이 사직하고 1천140명이 휴직했다. 보건소를 떠난 공무원 중 절반은 간호직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영등포구 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뉴시스

"공무원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

그런데 아직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이날 지자체 일부 공무원의 초과근무수당, 관내 출장여비 부정수급 의혹이 불거진 것으로 계기로 중앙·지방정부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공직사회 근무기강을 강화하고 공직자들의 경각심을 제고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에 전호일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허탈해했다. 공무원노조는 공공의료 확대 및 코로나 대응 관련 공무원 즉시 충원을 요구하고 있다.

전 위원장은 "코로나 이후 공무원들의 죽음 행렬을 막기 위해 인력 충원과 충분한 휴식, 그리고 심리 치료까지 필요하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계속 요구했다"며 "그러나 정부의 처방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이었다. 몇 명의 인원 충원이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사직하고 휴직한 사람들을 채우는 데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말, 밤낮없이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고 추석 연휴에도 근무했다. 확진자 역학조사, 백신접종, 그리고 재난지원금까지 이제는 업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인데, 도대체 정부는 뭐 하고 있는 것이냐"며 성토했다.

이양수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건 (정부가) 공무원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공무원을 정말 노동자로 대하고 공무원의 노동권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했다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무원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가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10월 20일 민주노총 총파업은 노동자를 살리고 사람 살리고 이 삐뚤어진 사회를 살리는 총파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박남춘 인천시장은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17일 부평구 공무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비보가 안타깝고 미안하다"며 "당장 추석 연휴부터 인천시의 근무 조건을 수도권 동일 근무 조건으로 조정하고 의견을 수렴해 종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차준택 부평구청장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최일선에서 맡은 임무를 다한 고인과 모든 직원께 사과드린다"며 "장례식 비용 전액 지원뿐 아니라 유가족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구 차원에서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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