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진보와 집권 사이 (4)
87년 6월항쟁이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열었고, 10년 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결실을 맺었다. 촛불항쟁 10년은 과연 어떤 정치를 창조할까. [편집자]
(1) 집권욕 약하면 진보 아니다
(2) 정권교체보다 체제교체가 절실한 이유
(3) 한국 노동자의 최대 불행은 자기 정당 없는 것
(4) ‘항쟁 없는 선거’와 ‘선거 없는 항쟁’의 교훈
선거가 항쟁을 동반해야 권력 이동을 넘어 체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항쟁과 선거가 만난 4번의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그러나, 4.19혁명은 박정희의 5.16쿠데타로, 80년 서울의 봄은 전두환의 5.17쿠데타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87년 6월항쟁도 노태우의 부정선거로 빛이 바랬고, 2016년 촛불항쟁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도 외세와 결탁한 정경유착 구조를 청산하기는 역부족임이 확인되었다.
한국 정치사의 이런 경험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닌 체제교체를 꿈꾸는 진보정당이라면, 응당 선거와 항쟁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항쟁이 선거를 만나듯, 민중이 진보정당을 만나 체제 전환을 이루어 낼 때, 이를 변혁이라고 부른다.
항쟁 없는 선거는 ‘모래 위의 성’
항쟁을 동반하지 않는 선거는 기존 체제 위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진보정당이 집권할 수도 없거니와 설사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도 반동 세력에 의해 전복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예컨대 1948년 미군정 하에서 치러진 5.10단선에서 여운형과 김구 등 분단체제를 거부한 인사들은 암살을 면치 못했고, 6월항쟁에서 군부독재를 타도하지 않은 채 치러진 1987년 대선에선 노태우가 당선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베네수엘라에선 1998년 50년 만에 자주적인 정권 차베스가 대통령이 됐지만 2년 만에 다시 친미 쿠데타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처럼 항쟁을 통해 민중이 체제 전환에 떨쳐나서고, 이 힘을 결집해 선거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할 때만이 민중권력을 온전히 쟁취할 수 있다. 만약 항쟁 역량 없이 선거만 치러지면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일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따라서 항쟁과 선거가 결합 되는 결정적 시기가 오기 전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진보정당은 역량 강화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진보정당은 항쟁과 선거를 동시에 준비하는 항쟁‧선거 병진노선에 입각해야만 진보집권을 완수할 수 있다.
일부 사민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헌법 안의 진보’는 현실 정치에 존재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헌법 안의 진보’는 집권을 포기한 개량의 다른 표현이다.
선거 없는 항쟁은 ‘부뚜막의 소금’
진보정당이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던 87년 이전과는 달리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보장된 조건에서 항쟁 전이든 후든 반드시 선거를 통해 집권해야 한다.
항쟁의 전취물을 온전히 민중의 손에 쥐여 줄 진보정당이 없으면, 기존 체제에 기생하던 정당에 다시 권력이 넘어가고 만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항쟁의 불길이 아무리 거세게 일어나도 진보정당에 선거를 통한 집권전략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부뚜막에 놓인 소금처럼 아무 구실을 못 한다.
이런 이치는 진보정당보다 기존 체제의 기득권 정당들이 더 잘 안다. 그래서 분단체제 유지를 위해 국가보안법으로 진보정당이 탄생조차 할 수 없게 싹을 자르고, 구사일생으로 창당한 진보정당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해산해 버리는 사법농단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항쟁의 성과를 선거로 결실 맺지 못하게 하는 가장 비열한 방법이 바로 내부 분열 조장이다.
기존 체제를 지키려는 자들의 이런 분열 책동은 과거 일제강점기 민생단을 독립군 내부에 침투시켜 분열과 질시를 조장하던 때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처럼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통합진보당의 강제 해산은 진보정당이 겪은 자연스러운 시련의 결과가 아니라 민중과 진보정당을 분리함으로써 선거를 통한 진보 집권을 막아보려는 악랄한 술책이었다.
항쟁과 선거라는 진보 집권의 양쪽 수레바퀴는 진보정당을 만난 민중만이 앞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진보정당을 만난 민중이 변혁의 주체
민중은 변혁의 주체지만 진보정당에 망라되지 않으면 주체로서 제구실을 못 한다.
민중이 주체가 되는 길은 두 가지. 하나는 진보정당의 당원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대중단체의 회원이 되는 것이다.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서도 그렇고, 항쟁을 통해 집권을 담보하기 위해서도 유권자의 1%는 진보정당의 당원이어야 한다.
집권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당원이 1%도 안 되는데 집권한 예는 보수정당들 중에도 없고, 해외 진보정당들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유권자 1% 당원은 진보 집권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다음으로 진보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대중단체 특히 노동계급의 조직률이 30%에 도달해야 진보집권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배타적 지지를 상층의 결정으로 조합원에게 강요해 선 안된다.
배타적 지지를 얻어내야 할 대중단체가 있다면 어디까지나 그 회원들을 입당시켜 진보정당의 정책이 대중단체에 스며들게 하는 방법으로 기층에 튼튼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진보정당이 앞으로 가야 할 집권의 길에는 험난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과거에 경험했던 분열과 탄압에 비교할 수 없는 고난의 행군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난관이 70년 한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민중이 주인 되는 새 세상 창조라는 이 짜릿한 유혹을 뿌리치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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