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검찰이 “학예사가 상시근무하지 않는 박물관이었기에 보조금을 부정 수급한 것”이라며 제시한 박물관 등록 심사 기준에서 ‘학예사가 상시 근무하고 있는지 여부’는 여러 평가 항목 중 참고할 사안이지 필수 요건이 아니라는 게 문화체육관광부 지침서에 적혀 있었다. 재편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관련 혐의에 대한 증인 심문이 이루어질 때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였다는 점만 두드러지고 있는 셈이다.
우수 평가 넘쳐...모두 검찰이 확보한 증거자료
40점 만점 중 40점...“30여개 박물관 중 5곳만”
의견서에 적힌 평가 “학예사 없지만, 콘텐츠 우수”
26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문병찬)는 윤 의원 등의 보조금관리법 위반·사기 등 혐의에 관한 공판을 진행했다. 윤 의원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로 일하던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운영하며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부터 총 3억 원가량의 국고보조금 등을 부정 수령한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공판에는 검사 측 증인으로 서울시 공무원 A 씨가 나왔다. A 씨는 2020년부터 박물관 등록 및 보조금 지급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로, 2013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학예사 및 박물관 자료 등 요건을 갖춰 문체부와 서울시에 등록할 때의 상황을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따라서, A 씨는 현재 업무 처리 방식을 기준으로 증언했다.
윤 의원 측 변호인이 제시한 증거 자료들은 모두 검찰이 확보한 서울시 자료였다.
이 자료들을 보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보조금 지급 관련한 각종 평가에서 매번 높은 점수 또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심사위원들은 학예사가 상근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여성인권 콘텐츠가 우수하다” 등의 평가로 높은 점수를 줬다.
이 의견들은 모두 보조금 지급과 관련된 평가였다. 보조금 지급 관련해서는 학예사 상근 여부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시 평가단은 2019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평화시민들과 함께 외치는 평화’라는 사업으로 보조금을 신청한 것에 대해 현장실사를 하고 “참신하다”며 40점 만점에 40점을 줬다. 윤 의원 측 변호인은 그해 사립박물관 심사표를 제시하며 “34개 (박물관) 중 현장실사에서 만점을 받은 곳은 5곳밖에 없는데, 그중 한 곳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라고 강조했다. 또 배점 항목을 제시하며 “학예사 상근 여부를 보면서 평가하는 항목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변호인은 2018년 특화사업 관련 현장실사 결과 30점 만점에 30점을 주고 종합의견으로 지원이 적정하다고 평가한 의견서, 2018년 서울시 사립박물관 활성화 사업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90여 점(서류가 흐릿해서 ‘9’ 뒤에 숫자는 잘 보이지 않음)을 받은 서류, “학예사 부재가 우려되지만 콘텐츠가 우수하다”는 의견이 적힌 평가단 의견서 등을 제시했다.
특히, 검찰은 윤 의원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학예사가 상시 근무하는 것처럼 속이고 보조금을 받았다고 보고 있는데 보조금을 신청할 때 학예사가 상시 근 무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명시적인 법 규정이나 관계부처 지침은 없었다. 문체부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박물관 및 미술관 등록업무 지침’에 따르더라도 학예사가 박물관 상근자인지 여부 평가 항목은 ‘정량평가’가 아니라 ‘정성평가’ 사안이었다.
‘정량 평가지표’란에는 “학예사를 1명 이상 두어야 한다”고만 적혀 있지, 상근 여부에 대한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다. 윤 의원 측에 따르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2013년 박물관 등록 당시 학예사 1명에게 박물관 학예사가 되어 주겠다는 동의를 얻었다. 이에 정대협은 관련 서류를 갖추고 박물관 등록 절차를 완료했다고 한다.
다만, 증인 A 씨는 이번 윤 의원 사건으로 학예사 상근 여부가 논란이 되자 현재는 보조금 지급 전 평가 때 학예사의 상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4대 보험 서류를 제출받고 있고, 상근 학예사가 없는 경우 6개월가량의 재채용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A 씨는 ‘상근 학예사가 없어서 박물관·미술관 등록이 취소된 사례’에 대해 “알지 못 한다”고 답했다.
윤 의원 측 변호인은 등록된 박물관 현황이 자세히 기재된 서울시 자료에서 학예사 인력이 표기되지 않은 ○○뮤지엄, ○○○○박물관 등의 사립박물관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변호인은 “이런 사례는 각 구청이 시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서 표시가 안 된 것인가”라고 물었고, A 씨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 시정 조치를 요구한 적이 있느냐”는 변호인 질문에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변호인은 국립박물관으로 등록된 박물관으로 범위를 넓히면 더 많은 박물관이 나온다고 지적하며 “서울시가 해당 국공립박물관에 시정 조치를 요구한 적 있나”라고 물었고, A 씨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실제 변호인이 제시한 국공립박물관 중 학예인력 표기가 안 된 곳, 아예 없다고 표기된 곳 등이 나타났다.
판사 “명시적 규정 본 적 있나”...증인 “없다”
법도 규정도 없는데, 검찰은 왜?
판사도 이 부분을 분명히 하고자 A 씨에게 물었다.
판사는 문체부 지침 자료 내용을 짚으며 “정량평가 지표 최소요건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이고, 보통 정성평가 요건은 여러 평가 항목을 합쳐서 그 점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 아닌가. 그럼 ‘4대 보험 내역 등 상근여부 확인 자료’는 정성평가 보완 기준요건에 불과하므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은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고, A 씨는 “현재 기준으로만 말하자면, 상근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있다”라고만 답했다.
또 판사의 “보조금 사업 관련해서 명시적으로 학예사가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본적 있냐”는 질문에 A 씨는 “없다”고 답했고, “학예사가 (박물관) 등록 요건으로 (법에) 규정돼 있긴 하지만, 중간에 학예사가 없어졌다고 할 때 취소 여부는 법적 평가를 받아봐야 하는 일이고, 또 등록 취소가 내려지기 전까지 등록은 유효한 것 아닌가”라고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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