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지난 9월 13일 ‘서울시 바로 세우기’ 입장문 중 일부다. 서울시가 ‘비뚤어진’ 원인으로 시민사회단체를 지목한 것이다. 오 시장은 그 근거로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시민단체에) 지원된 총금액이 무려 1조 원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합리적인 문제 제기가 ‘박원순 전 시장 흔적 지우기’로 매도당하는 것이 억울하다고도 했다.
이에 1천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8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 시장의 이른바 ‘1조 원’ 프레임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퇴행적인 오세훈 서울시정 정상화를 위한 시민행동(오!시민행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이날 서울시가 지난 10년간(2012~2021) 민간보조금 및 민간위탁금 명목으로 시민사회에 지원했다는 1조 원의 세부 집행 내용을 정보공개 청구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애초에 시민단체 ‘배 불리기’ 지원금이란 있을 수 없다며 오 시장이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지 따져 물었다.
민간보조금이란 민간이 목적에 맞게 사업을 수행하겠다고 자율 공모한 사업에 대한 보조금이다. 민간보조금은 사업비로만 쓰여야 하지, 인건비 등 단체운영비로 사용돼선 안 된다. 민간위탁금이란 서울시가 해야 할 사업이지만 대민 접촉이 많은 등 시가 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을 때 민간에게 맡겨 지원하는 비용이다.
채연하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은 “운영비를 지원받는 단체는 관변단체·보훈단체뿐이다. 보조금은 단체운영비로 쓰이면 불법”이라며 “감독기구인 시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니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자료 분석을 통해 오 시장이 ‘1조 원’을 부풀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측이 1조 원을 주장하면서도 객관적인 근거자료를 모두 공개하지 않아 정확하지 않지만 아무리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7천억 원가량이라는 게 이들 분석이다.
구체적으로 서울시가 발표한 지난 10년간 민간보조금 예산은 약 4천300억 원이었는데, 자료를 따지고 보니 실제 집행액은 약 3천320억 원이었다. 1천억 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집행액이 기준이어야 하는 이유는 지원된 예산이 남는 경우 서울시로 반납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공기관·대학·언론·노조·종교단체 등 시민사회단체라고 볼 수 없는 일반기관에 지급된 민간보조금이 1천360억 원가량 포함됐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조민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일반기관을 포함해 집행 금액 및 지원단체 수를 부풀렸다”고 비판했다.
가장 많은 보조금(950억 원)을 지원받은 ‘사회적 경제조직’이 일반기관으로 분류된 이유에 대해 조 국장은 “일자리 창출·사회보험료 지원 등 사업 성격상 사회적 경제만을 위한 사업에 민간보조를 받은 기관이고, 지원대상은 인증된 (예비) 사회적 기업 혹은 지정된 마을 기업으로 한정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시민단체에 대한 민간보조금 실집행액은 예산의 45%(1천960억 원)에 불과하다. 이중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된 단체에 집행된 액수는 534억 원으로 실집행액의 3분의 1(27%)도 안 됐다. 이 중에서도 42%(227억 원)는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등 지원사업으로 모든 지자체가 시행하는 공익활동 지원사업이라는 게 이들 분석이다.
민간위탁금의 경우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예산(5천910억 원)만 공개했을 뿐 집행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최근 3년간(2019~2021) 집행액만 공개했다.
예산액만 따져봐도 시민단체로 볼 수 없는 일반기관에 위탁한 사업액이 2천100억 원가량 섞여 있는 등 민간위탁금 역시 민간보조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들은 “민간보조금 실집행액과 민간위탁금 예산현액을 더한 금액은 7870억 원으로 1조의 80%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오 시장 발언에 대해 “시민사회를 비난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 해석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오 시장의 한 마디로 시민사회단체 전체가 매도된 상황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단체들은 오 시장의 발언에 대해 ‘모욕적’이라고 분노했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은 “시민사회단체 활동은 시민들의 지지와 동의를 기반으로 활동하는데, 시민단체가 부도덕하고 문제 있다고 각인될 만한 오 시장의 발언들로 부정적 인식을 확산했다”며 “그 후 오 시장 행보가 바로 예산 삭감이었는데, 그걸 노리지 않았나 싶다”고 꼬집었다.
채 사무처장은 통화에서 “실제로 서울시 지원을 받든 아니든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오해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시민들 회비로 활동하는 많은 시민단체에 모욕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오 시장이 분야별로 시민단체들을 만나면서 ‘너희를 특정한 건 아니’라고 편 가르는 것 역시 너무 모욕적”이라고 분노했다.
이들은 오 시장에게 ▲부풀려진 1조 원에 대해 시민사회에 공개사과 할 것 ▲서울시민의 참여를 가로막는 예산 삭감 행태를 중단할 것 ▲공개하지 않은 7년간 민간위탁금 집행내역을 공개할 것 등을 촉구했다. 오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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