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다란 물고기들이 한 배 가득이다. 그런데 물고기들이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 ⓒ 해창만 수상태양광 반대 대책위원회
큰 물고기들이 배에 가득하다. 숭어, 잉어, 붕어 등으로 만선(滿船)이 되었으니 어부가 행복할까? 그런데 배에 실린 물고기들의 색깔이 이상하다. 물고기 몸에 뻘건 출혈 흔적들이 보인다.
만선이 되었음에도 어부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호수에 둥둥 떠 있는 죽은 물고기를 건진 것이기 때문이다. 호수 가장자리와 수초 사이사이에 물고기 사체들이 가득했다.
▲ 죽은 물고기들이 호숫가를 차지하고 있다. ⓒ 해창만 수상태양광 반대 대책위원회
이곳은 전남 고흥군 포두면의 길이 약 10㎞, 너비 약 5㎞의 '해창만'이다. 1960년대부터 바다를 막아 간척지로 만든 곳이다. 드넓게 펼쳐진 간척지 논에서 친환경 농사를 지어오고 있다.
지난 3월 3일 지역 주민들이 호숫가에 죽은 물고기들이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창만 주변엔 유해 시설이 없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물고기 떼죽음이었다. 친환경농사를 짓는 호숫가에서 왜 물고기들이 떼죽음한 것일까?
지난 3월 17일 해창만 현장을 돌아보았다. 높은 담장이 산책로 가를 막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수상태양광 설치공사가 한창이었다.
▲ 해창만 산책로를 막고 태양광 조립공사가 한창이다. ⓒ 최병성
해창만 농경지 사이 수면에 수상태양광이 설치되고 있었다. 호숫가에서 태양광을 조립해 수면 안으로 이동해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미 드넓은 면적의 수상태양광 패널이 해창만의 수면 두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 해창만 수면 위에 설치된 태양광.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 최병성
▲ 해창만 수면 두곳에 대규모 수상태양광이 설치되고 있다. ⓒ 카카오맵
물고기 떼죽음 사고는 사업자가 수상태양광 패널을 세척한 직후 발생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태양광 세척제가 물고기 떼죽음의 원인이라 지목했다. 그러나 사업자는 세척제를 사용한 적이 없으며 농약이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고기 떼죽음의 원인은?
사업자는 왜 수상태양광 패널을 세척했을까? 세척하기 전 태양광 패널의 모습이다. 태양광 패널은 햇빛을 잘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검은 색이다. 그런데 해창만 태양광 패널은 흰색이다. 마치 흰 페인트를 칠한 듯 태양광 패널이 새똥 범벅이 된 것이다.
▲ 사업자가 세척하기 이전에 새똥으로 뒤덮인 해창만의 태양광. 흰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보일 만큼 새똥 범벅이다. ⓒ 해창만 수상태양광 반대 대책위원회
물고기 떼죽음 사고가 발생하자 고흥군청이 전라남도보건환경연구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3월 24일 시험 결과가 나왔다. 농약 성분이 없었다. 고흥군청의 노력에도 물고기 사망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나 물고기 떼죽음의 원인이 농약 때문이라던 태양광 사업자의 주장은 틀렸다.
▲ 고흥군이 의뢰한 전남보건환경연구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 농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 고흥군
주민들은 강원대학교 환경연구소 부설 어류연구센터에 조사를 의뢰했다. 최재석 센터장과 김희갑 교수 등 강원대 연구진이 현장을 조사했다. 죽은 물고기들의 혈액을 채취하고, 아가미와 내장 등의 다양한 증상들을 해부했다. 물고기가 죽은 곳과 태양광 패널이 있는 지점의 수질도 채취했다.
4월 21일, 조사결과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해창만에서 채취한 물과 죽은 물고기 혈액에서 세제 성분인 ABS가 검출되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물고기 몸 안에서 검출된 ABS 농도였다.
▲ 강원대학교 분석 결과 해창만 물과 물고기 사체에서 세척제 성분이 검출되었다. ⓒ 강원대학교 어류연구센터
환경정책기본법 상 ABS의 유해성 기준 농도는 1L당 0.5mg 이하이다. 그런데 연구소가 사고 직후인 지난 3월 10일쯤의 농도치를 계산한 결과 1L 당 481mg로 기준치의 962배가 나왔다. 죽은 물고기의 혈액 속 ABS 농도 값은 더 심각했다. 1L당 2144mg로 기준치의 4288배를 초과했다.
▲ 해창만 물과 죽은 물고기에서 검출된 세제 성분 ⓒ 여수 mbc
사고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수상태양광 패널과 가까운 지점의 ABS 농도가 다른 곳보다 더 높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같은 날인 4월 2일 해창만 선착장 지점의 ABS 농도 값은 L당 73mg인데, 태양광 패널 지점의 값은 그 두 배 이상인 리터당 191mg이었다. 태양광 패널 세척이 해창만 물고들을 떼죽음 시킨 원인이라는 주민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결과다.
▲ 태양광 패널이 있는 곳과 선착장의 세제 농도 차이 ⓒ 여수MBC
해창만 사고를 조사한 강원대학교 최재석 교수는 여수MBC와 한 인터뷰에서 "말 그대로 세제예요, 주방세제. (태양광 사업자 쪽에선) 안 썼다 그러는데 물에서 나왔단 얘기는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견된 사고
해창만 물고기 떼죽음 사고는 사실상 예견된 사고였다. 해창만은 국내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다. 해창만 수상태양광발전소 조성공사 당시의 환경부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을 입수해 살펴보았다. 해창만은 중요한 철새 도래지이기 때문에 조류에 영향을 줄까 우려된다고 반복하여 지적하고 있었다.
○ 사업예정지 해창만은 지난 20여 년간 환경부에서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 조사를 실시하는 중요한 철새도래지로 동 사업 시행으로 인해 조류에 직접적인 영향이 우려된다
▲ 환경부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 해창만은 중요한 철새도래지로 수상태양광이 조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협의
문제는 중요한 철새도래지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서를 협의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철새도래지에 설치한 수상태양광은 당연히 새똥광이 될 수밖에 없다. 말라붙은 새똥은 물만으로는 세척이 어렵다. 환경부가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KEI(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는 해창만 수상 태양광발전소 사업에 대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를 검토한 후에 환경부(영산강유역환경청)에 입지와 사업계획이 부적정하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제시했다. KEI가 부적정하다고 의견 제시했는데, 어떻게 환경평가 협의가 완료된 건지 의문이다.
○ 바다를 막은 준담수역은 육지의 댐과는 달라 충분한 검증 결과가 부재인 상태로 육역 일부 담수역에서의 검증 결과를 여과 없이 적용하여 일반화하는 것이 부적절하다.
○ 법정 보호종이 분포하고 국제적으로 보전이 요구되는 조류 이용도가 높은 해창만에서 인공시설의 과도한 점용은 안전상의 문제와 간척지 고유의 생물 서식역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 사업을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KEI는 해창만 수상태양광의 입지와 계획이 부적정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KEI
물고기만 죽은 게 아니었다. 가마우지 등의 철새 사체와 폐사된 조개류도 쉽게 발견되었다. 환경부는 중요한 철새도래지인 해창만에서의 수상태양광 사업이 초래할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결국 환경부의 안일한 환경영향평가서 협의가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사고를 초래한 것에 다름없다.
철새 서식지에 설치하는 수상태양광이 새똥으로 범벅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KEI의 지적처럼 수상태양광은 바닷가 철새도래지가 아니라 철새가 적은 육지의 댐과 저수지에 설치해야 한다.
▲ 파랑이 적고, 염분 피해와 철새가 없는 육지 내의 댐과 저수지의 수상태양광은 태양광 시설의 안전만 확보되면 가장 환경 피해가 없는 신재생에너지가 될 수 있다. 사진은 충주댐. ⓒ 최병성
바다를 막은 담수호에는 철새들도 많이 찾아오고, 파랑이 세서 수상태양광 시설 파손이 잦다. 또, 염분으로 인한 서설물의 장기적인 안전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 군무를 볼 수 있는 삽교호에도 수상태양광 사업이 진행 중이다. ⓒ 김상섭
그럼에도 신재생에너지 바람을 타고 전국 바닷가 철새들의 서식지마다 대규모 수상태양광이 추진되고 있다. 수상태양광 반대 현수막이 붙어 있는 이곳은 가창오리의 환상적인 군무를 볼 수 있는 삽교호(揷橋湖)다. 삽교호는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과 당진시 신평면에 위치한 호수로 1979년 10월 26일 3360m의 방조제가 완공됨으로써 생긴 담수호이다.
삽교호에는 매년 30~40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찾아와 환상적인 군무를 펼친다. 많을 때는 약 70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삽교호에 머문다. 가창오리는 낮에는 삽교호 수면 위에 머물다 해질 무렵 노을 지는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 가창오리의 군무 삽교호에는 매년 30~40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찾아와 환상적인 군무를 펼친다. 낮에는 삽교호 수면 위에 머물다 해질 무렵 노을 지는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 최병성
▲ 삽교호 수면 위에 쉬던 가창오리들이 해질 무렵 날아오르며 군무를 시작하고 있다. ⓒ 김신환
삽교호는 가창오리뿐만 아니라 큰고니, 큰기러기, 노랑부리저어새, 흰꼬리수리, 도요새 무리가 찾아오는 국내 최고의 철새도래지다.
▲ 삽교호는 가창오리만이 아니라 큰고니, 큰기러기를 비롯해 다양한 철새들이 찾아오는 찰새 낙원이다. ⓒ 김상섭
삽교호 인근 인주면 이장들에게 태양광사업자가 협약 제안서를 받고 있다. 인주면에 연간 1억 원을 17년 동안 지급하며, 동참하지 않는 마을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일종의 협박성 협약 제안서다. 이로 인해 마을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 태양광 사업자가 주민들에게 연간 1억원을 준다며 협약을 제안하고 있다. ⓒ 수상태양광 협약 제안
보상금으로 인한 주민간의 갈등은 삽교호만이 아니다. 태양광이 설치되는 전국의 마을마다 돈 문제로 주민 갈등이 발생한다.
만약 삽교호에 수상태양광을 설치하면 어떻게 될까? 해창만과 새만금처럼 새똥 범벅이 될 것이다.
▲ 삽교호 내 어부들의 작업대가 새똥으로 가득하다. ⓒ 최병성
신재생에너지 제대로 하자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환경을 훼손하는 방식이라면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전기가 필요한 곳에 전기를 생산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설치가 이뤄져야 한다.
새똥광 세척으로 물고기가 떼죽음 된 전남 고흥의 해창만은 남쪽 바다 끝에 있다. 전남 완도 약산면 간척지 50만 평에도 태양광 설치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전기가 필요한 곳은 도심인데, 왜 국토 최남단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있는 것일까?
▲ 전남 완도 약산면 50만 평의 간척지 전체를 태양광으로 덮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왜 바다 끝 섬까지 태양광을 설치해 전기를 끌어와야 하는 것일까? ⓒ 최병성
해창만, 새만금, 삽교호 등에 수상태양광을 설치하지 않아도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이 많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고속국도 밀도는 OECD 평균의 약 7배로 5위에 해당된다. 일본과 프랑스의 고속국도 밀도의 2배에 이를 만큼 국토 면적에 비해 도로가 많은 나라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도로 건설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햇볕이 잘 드는 고속도로 경사면이 텅 비어 있다. 고속도로 경사면에 태양광을 설치한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 고속도로 경사면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전국 고속도로와 도로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해창만과 삽교호 등의 철새들 서식지와 간척지에 태양광을 하지 않아도 된다. ⓒ 최병성
고속도로만이 아니다.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장과 물류창고 지붕들이 텅 비어 있다. 공장마다 태양광 전기 생산 의무화를 해야 한다. 햇살 잘 드는 공장 지붕은 팽개치고 산과 바다를 훼손하는 것은 올바른 신재생에너지가 아니다.
세계는 벽면 태양광 설치가 한창이다. 기술이 발전하여 벽면 태양광의 전기 생산 효율도 점점 더 높아진다. 심지어 투명유리 태양광 패널도 개발되고 있다. 이젠 전기 때문에 억지로 설치하는 흉물스런 태양광 시대가 아니다. 전기도 생산하고 건축물의 가치를 높여주는 태양광 모듈도 속속 개발 설치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전기가 필요한 곳에 전기를 생산한다는 친환경적인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철새들의 서식지는 철새들의 터전으로 남겨주고,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다양한 환경 사건, 사고 제보 받습니다.
cbs5012@hanmail.net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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