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뒤면 한국전쟁 발발 72주년이다. 한국전쟁은 내전이면서 국제전이었다. 미국, 프랑스, 터키 등 16개국이 대한민국의 편에 서서 전쟁에 참여했다. 파주, 철원 같은 접경지역뿐만 아니라 논산, 부산 등 대한민국 땅 전역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국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겪었고, 다른 국가들이 참전해서 도와준 기억 때문인지 우리는 전쟁을 겪는 나라를 돕는 것을 어색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이라크 전쟁 때처럼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서 침략한 나라의 편에 서는 일이라면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여러 입장에 따라 찬반이 갈리고 논쟁이 일어나겠지만, 침략당한 나라를 돕는 일이라면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흔쾌하고 마땅하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전쟁 발발의 책임에 대해서는 서방 국가들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책임도 무시할 순 없지만, 침략을 일으킨 러시아와 푸틴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은 명백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국제사회에서 비인도적인 무기로 인식되고 있는 확산탄(cluster bomb)을 러시아가 사용했다는 정황이 국제앰네스티의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러시아의 편을 들 수는 없다.
무기를 지원해야 하나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군사대국인 러시아와 맞서려면 무기가 필요하다며 연일 국제사회에 무기 등 군사적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4월 11일에는 한국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하면서 "러시아의 탱크, 군함,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군사 장비들이 한국에 있다"며 한국 정부에 직접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약 500억 원가량의 비살상 군수물자와 의약품 등을 인도적 지원 명목으로 우크라이나에 지원해왔지만 살상용 공격 무기 지원은 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책임이 명백하지만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이 한국의 경제나 안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각 정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우크라이나의 직접적인 요청뿐만 아니라 다양한 루트로 간접적인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6월 1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한국정부에 완곡하게 요청했다고 여러 언론이 전했다. 그에 앞서 캐나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포탄을 지원한 뒤 무기고를 다시 채우기 위해 155mm 포탄 10만발 수출을 요청해왔다. 한국 정부가 포탄 제조업체인 풍산에 의뢰하여 정상가보다 낮게 책정된 가격으로 캐나다에 수출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우회적인 지원을 요청한 셈이다.
노르웨이와 폴란드 또한 자국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면서 한국산 무기를 수입하고 있거나 검토 중이다. 노르웨이는 K9 자주포를 수입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자주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미국 다음으로 우크라이나에 적극적으로 무기를 지원하고 있는 폴란드는 국방부 장관이 5월 29일 한국을 방문하여 전차, 장갑차 등의 무기 수출을 요청했다.
무기지원 요청이 거듭되고, 대통령 선거로 정권이 바뀌면서 한국 정부의 입장도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9일~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더불어 일본,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이 우크라이나와 함께 회원국이 아닌데도 초대받은 국가들이다.
우크라이나와 동구권 국가들, 혹은 유럽 중립국들의 NATO 가입이 서방국가들과 러시아 사이 첨예한 갈등의 중심 의제인데다 초대 국가의 면면을 고려한다면 NATO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 논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외교적 관례를 생각해본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NATO 정상회담 참석해서 공격 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존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러시아의 침략 행위가 부당하고, 침략 이후에는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마당이니 국제사회의 주요한 행위자로 한국 또한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하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 방식이 군사적인 지원이어야 할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방법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까닭은 전쟁을 끝내고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문제는 '평화'와 '승리'가 같은 의미가 아니고, 때로는 교집합도 크지 않다는 데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를 무찌르고 승리를 거머쥔다 한들 그것이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격렬한 전투가 이어진 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나서, 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온통 파괴되고 나서 이룩한 승리를 우리는 평화라고 부르면 안 된다.
전쟁의 결과를 승리와 패배로만 상상하는 것은 우리가 전쟁을 전투로만 협소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전쟁은 전투보다 훨씬 크고 넓은 일이고, 전쟁에서는 승리와 패배 사이에도 수많은 길이 존재한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독일의 시인 브레히트는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패전국에서 하층 서민들은 / 굶주렸다. 승전국에서도 역시 /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전쟁이 지속되는 한 그 결과가 승리로 이어지든 패배로 이어지든 평화는 요원하다. 평화는 승리와 패배 바깥에, 존재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전쟁이 일어났다면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이, 피해를 최소로 하는 것이 평화로 가는 길이다.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일이어야지 전쟁이 길어지거나 전쟁 피해가 늘어나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
▲ 부차 집단학살 희생자 묘역에는 침묵만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의 위성도시 부차의 한 묘지에 러시아군 점령 당시 희생 당한 희생자들이 안장돼 있다. 부차는 지난 3월 키이우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한 러시아군에 의해 민간인이 다수 학살된 곳으로 이들의 시신은 부차 시내의 한 성당 앞 공터에 임시로 매장됐다 신원을 확인한 뒤 가족에게 인계돼 다시 매장됐다. ⓒ 연합뉴스
물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물리치면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전쟁에서 무 자르듯이 승리와 패배가 결정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은 911테러 직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지만 결국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고 탈레반이 재집권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와 치른 전쟁이 실패로 귀결된 것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압도적인 군사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10년 가까이 지속되며 전쟁이라는 진창에 미국을 집어넣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 전쟁 또한 푸틴은 승리를 자신했지만 압도적인 군사력 차이에도 쉽사리 우크라이나를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푸틴도, 젤렌스키도 조지 W. 부시가 그랬듯 이 전쟁에서 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 없다.
전쟁에서 어느 한 쪽이 드라마틱하게 승리하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다. 현실 세계에서는 거듭된 전쟁으로 피해가 늘어나고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불신이 커져 다시 전쟁의 재료로 쓰이는 악순환의 고리만 강화된다. 무기 지원은 이 고리를 끊지 못하고 오히려 강화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자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일도 우리의 좋은 의도와는 별개로 크고 많은 전투를 유발해 전쟁이 격화되고 지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시민들이고, 무기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군수산업체들은 전쟁이 지속되니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다.
전쟁이 시작된 지 세 달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세계최대의 군수산업체인 록히드마틴의 주가는 12.2%,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군수산업체 노스롭 그루먼의 주가는 16%, 영국 BAE 시스템스의 주가는 17.7%가 급등했다(5월31일 기준). 앞서 이야기한 캐나다 정부의 요청에 대해 한국 정부는 가격 인하분을 한국 정부가 풍산에 보전해주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전쟁으로 밀가루와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도 생활물가가 덩달아 치솟는 마당에, 전쟁으로 모두가 크고 작은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도 군수산업체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전쟁에서 누군가 승자가 있다면 이들 군수산업체들이 승자일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하지 말자는 말이, 러시아의 침략에 우크라이나 도시가 파괴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도시가 파괴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무기 지원이 아니라 실질적인 노력을 필사적으로 하자는 이야기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이 전쟁이 일어나는 과정을 방관했고, 전쟁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전쟁을 중단하려는 시도와 노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미국 주도로 러시아에 대한 각종 경제 제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역시 전쟁을 중단시키지 못하고 있다.
▲ 3월 2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약 400km 정도 떨어진 트로스트시아네츠 마을에서 청소년들이 부서진 러시아 탱크를 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휴전에 합의하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한국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다. 미국, 독일, 영국 등 국제사회의 전통적인 강대국들이 평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은 이 상황에서 더더욱 한국처럼 서방국가들과는 다른 상황과 처지에 있는 국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정부가 해야 할 일
휴전과 평화협정을 이끌어내는 것 말고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많이 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활동하는 평화단체 '우크라이나 평화 운동 Ukrainian Pacifist Movement'의 사무국장 유리 셸리아젠코는 전쟁 피해자, 난민, 실향민, 병역거부자들을 도와줄 것을 호소한다. 또한 도심의 전장에서 모든 민간인을 대피시킬 수 있도록 기관이나 단체들을 지원해 달라고 세계의 시민사회에 호소했다. 전쟁 난민을 받거나 전쟁 피해자를 돕거나, 전쟁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을 지원하는 일은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전쟁 당시 16개국의 참전 군인이 전쟁터에서 싸웠지만, 당시 한국 사회가 이런 군사적 지원만을 받은 것은 아니다. 2013년 한국 정부는 존 콘스라는 병역거부자에게 수교 훈장을 수여했다. 존 콘스는 퀘이커 교도로, 한국전쟁 당시에 병역거부를 했고 전후 한국으로 파견되어 대체복무를 수행했다.
의사였던 그는 군산에서 의료 활동을 했는데 당시 전라북도에 전쟁 난민이 20만 명이었고 군산에만 3만 3천 명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 정부가 당시 존 콘스의 대체복무 수행이 한국의 평화 재건에 기여한 바를 인정해서 수교 훈장을 수여한 것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를 통한 재건 활동의 공적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정부가, 한국의 시민사회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해야 하는 지원은 존 콘스와 같은 방식이어야 한다. 군사적 지원이 아니라 인도적인 지원, 전쟁을 지원하는 역할이 아니라 전쟁을 중단하고 끝내는 역할을 해낼 때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가 받았던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한 지원과 노력을 기억하며, 이제 우리가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세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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