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제23대 경찰청장 후보자로 현 경찰청 차장인 윤희근 치안정감을 제청한다고 밝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07.05. ⓒ뉴시스
‘경찰 직접 통제’ 논란에 휩싸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5일 새 경찰청장 후보자 임명을 제청하면서 공개 브리핑까지 직접 나섰다. 그동안 부처 장관들이 기관장의 임명 제청권을 가지고 있어도 대통령의 재가가 있기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던 점에 비춰보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경찰 고위직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인사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 경찰 제도 개편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의지를 다시금 드러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찰청 독립의 역사를 무시한 정권의 경찰 통제 방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일선의 경찰들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 장관은 이날 오후 세종정부청사에서 ‘경찰청장 후보자 임명 제청 관련 브리핑’을 열고 윤희근 경찰청 차장을 윤석열 정부의 초대 경찰청장 후보자로 제청한다고 밝혔다. 이 장관의 브리핑은 모두 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앞서 경찰 행정의 최고 심의·의결기관인 국가경찰위원회는 이 장관의 요청에 따라 이날 오전 임시회의를 열어 열어 윤 후보자에 대한 면접을 실시하고 ‘경찰청장 임명제청 동의안’을 의결했다.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후보자 임명 제청은 경찰법 제14조에 따라 국가경찰위원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이후 경찰청장은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게 된다. 경찰청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지만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아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이 장관은 이런 절차를 언급하면서 자신이 직접 경찰청장 후보자를 제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찰후보자 추천과 임명 제청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후보자의 위법 사항이나 재산상 문제 등은 인사검증단에서 따로 하고, 제청에 있어서는 세평이나 이런 걸 통해서 어느 정도 평판을 들어서 했다”고 답했다.
이 장관은 브리핑에 앞서 국가경찰위원회가 경찰청장 후보자를 심의하는 회의에도 직접 참석했다. 이처럼 이 장관이 후보자 심의에 참여하고 제청을 하는 것은 절차상 하자가 없지만, 이를 직접 나서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경찰 안팎에서 나온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 인사 논란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겠냐”고 조심스럽게 해석했다. 최근 경찰청이 치안감 28명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가 번복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재가도 없는 상태에서 인사가 발표됐다며 “국기문란”이라고 강하게 질타한 바 있다. 이에 이 장관이 인사 시스템을 다시 정비하는 차원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관의 브리핑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고, 오히려 경찰을 향한 공격적인 발언이 이어진 데 비춰보면 ‘경찰 길들이기’라는 다른 속내가 있을 것이라는 해석에 더 무게가 실린다.
이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경찰 직장협의회(직협)가 잇따라 삭발 시위를 하는 등 행안부의 경찰 통제 방안에 반발하고 있는 데 대해 “직협의 행동이 순수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직협은 제가 한 얘기를 틀림없이 보고 들었을 것이다. 그 말이 왜 잘못된 것인지 합리적인 이유와 명분을 대면서 반대해야 하는데 그런 건 하나도 없이, 일부 정치세력의 주장에 편승하는 주장만 하면서 정치적 구호를 나열하고 있다”며 “불법적 관행을 혁파해 제대로 하자는 것인데, (직협이) 이것을 경찰 장악이라는, 아주 심한 견강부회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굳이 내가 직협과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장관은 지난 5월 경찰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계급인 치안정감 7명 가운데 5명을 대폭 ‘물갈이’한 데 대해서도 ‘그들이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당시 치안정감으로 승진된 사람 중 한 명이 이번에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윤 차관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치안감을 달았고, 다시 반 년도 지나지 않은 올해 5월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찰 ‘넘버2’인 경찰청 차장에 임명됐다. 경찰청장(치안총감) 인사 절차를 모두 거치면 7개월 만에 경무관에서 치안총감까지 초고속 승진하는 전무후무한 사례로 기록된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난 정권에서 임명됐던 치안정감의 경우 정치권력과 상당히 연관돼있다는 세평을 많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새 정부의 경찰청장이 나와선 안 되겠다라고 판단했다”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인물로 새 정부의 경찰청장을 맞이해야겠다는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현재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윤 차관은 그런 면에서 순수한 사람이냐’는 기자들의 반문이 나오자, 이 장관은 “제가 신이나 점쟁이가 아니지만, 어쨌든 저의 판단은 그렇다”고 얼버무렸다.
이런 윤 장관의 발언들에 대해 경찰의 또 다른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정작 윤 차장을 누가 경찰청장 후보자로 추천했는지는 등은 밝히지도 않았다. 본인이 추천했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그럴거면 뭣 하러 브리핑을 직접 나와서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경찰 인사에 있어선) 내가 ‘얼굴마담’이니 내 말엔 다 복종하라는 의미인가”라고 꼬집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이 장관이 직협을 정치적이라고 규정한 데 대해 “내 생각과 다르면 다 야당과 야합하는 것이고 정치적이라는 말인가. 그게 장관이 긴급 브리핑을 하면서 할 말인가”라며 “(반발하는 일선 경찰들의) 진정성을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 장관이 ‘물갈이’ 된 치안정감들을 두고 ‘정치권력과 연관돼 있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사실이라면 경찰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어기고 법 위반을 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근거도 없이 그들이 전부 특정 정치세력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매도한 것이다. 해당 치안정감들이 이 장관을 고소해야 할 판이다”라고 황당해했다.
한편 이 장관은 이날 보도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정권에서 수사가 됐어야 할 것들 중 수사가 안 된 것들이 사실 꽤 있다”며 “뻔한 잘못을 가만 놔두는 것도 정말 불공정한 것 아니겠나. 잘못을 밝혀내고 처벌을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해선 정치적 고려를 하더라도 팩트 자체는 수사해서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해 ‘경찰 수사 개입’ 논란에도 휩싸였다.
이와 관련, 브리핑에서 ‘재수사 등의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 장관은 “그런 계획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수사는 경찰청 내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고, 제가 수사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이 장관은 ‘현재 추진 중인 경찰 제도 개편안에 행안부의 수사 지휘권도 담기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행안부에서 수사 지휘는 지금 제 생각에선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