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독일 사회 초미의 관심사는 '9유로 티켓'이다. 독일이 지난 6월부터 운영중인 대중교통 무제한 9유로 티켓. 독일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호응을 받고 있는 정책. 시민들의 눈과 귀, 발까지 사로잡은 9유로 티켓의 의미는 무엇일까?
3개월 동안 9유로에 대중교통 무제한
독일 연방정부는 지난 5월 9유로 티켓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던 상황, 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독일 정부의 통합적인 부담 완화 정책(Entlastungspaket)이다. 소득세 인하, 추가 아동수당 등 여러 지원책이 포함되어 있지만 9유로 티켓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9유로 티켓으로 6월부터 9월까지 독일 전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 버스, 트램, 도시전철은 물론 근거리 기차까지 포함한다. 단, KTX와 같은 고속 기차는 해당하지 않는다.
▲ 독일 9유로 티켓. 월 9유로 티켓 한 장으로 독일 전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 이유진
독일 베를린 기준 대중교통 일회권 가격은 3유로, 한달 권의 가격은 86유로다. 물론 베를린 도심에서만 유효하다. 9유로 티켓을 이용하면 대중교통을 3번만 이용해도 소위 '본전'이다. 9유로 티켓이 얼마나 파격적인 정책인지 알 수 있다(독일 베를린 대중교통공사는 "우리가 이렇게 너그러웠던 적은 없었어"라고 9유로 티켓을 광고한다).
9유로 티켓은 발표되자마자 인터넷 밈이 됐다. 모두가 9유로 티켓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나' 계산하기 시작했다. 독일 언론과 미디어도 신이 났다. 독일 주요 도시에서 휴양지까지, 폴란드, 오스트리아 근교 도시까지 갈 수 있는 노선을 소개했다. 독일 남쪽 끝 뮌헨에서 북쪽 끝 함부르크까지 5번만(?) 환승하면 13시간 만에 갈 수 있다.
여행 생각에 들뜬 시민들과 달리 독일 정부는 좀 더 미래를 바라봤다. 독일 정부는 9유로 티켓을 통해 ▲운송 사업자는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면서 대중교통의 장점을 보여주고 ▲지역 정부는 대중교통 가격에 따른 이용자 규모 변화를 파악하고 ▲시민들은 기존의 이동 습관을 재고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3개월간 기후 친화적인 모빌리티로의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을 실제로 테스트할 수 있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입되는 예산은 3개월간 25억 유로. 9유로 티켓으로 인한 교통공사의 티켓 수입 감소 예상 금액이다. 지역 철도 및 대중교통 인프라 개선을 위해 지원되는 '지역화기금(Die Regionalisierungsmittel)'을 통해 보전한다.
▲ 독일 베를린 대중교통공사(BVG)의 9유로 티켓 광고. "우리가 이렇게 너그러웠던 적은 없었어" ⓒ 이유진
한 달간 2100만 장 판매
9유로 티켓 도입 한 달, 독일 교통기업연합(VDV)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2100만 장이 팔렸다. 기존의 정기승차권 이용자 1000만 명을 더하면 3100만 장이 팔린 셈(정기승차권 이용자는 월 결제 방식인데 9유로 제외한 차액을 돌려받는다). 이용자 설문조사 결과(중복응답 가능) 응답자의 53%가 쇼핑, 병원 방문 등 일상 생활 이동을 위해 9유로 티켓을 이용했다. 39%는 출퇴근 및 통학, 33%는 근거리 나들이, 14%는 휴가 및 여행에 9유로 티켓을 사용했다.
독일 연방정부도 "티켓 구입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0%가 저렴한 티켓 비용, 50% 이상이 자가용 사용 중단, 12%가 대중교통 이용 테스트라고 답했다"며 "9유로 티켓 정책은 이미 큰 성공을 거두었다"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9유로 티켓 도입 이후 개인적으로도 자동차 사용량이 줄었다. 그간 베를린에 일상화된 공유 자동차를 수시로 이용했다. 편리함도 있지만 2인 이상 사용시 대중교통보다 저렴했다. 9유로 티켓 이후에는 공유 자동차의 이점이 사라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6월 한 달간은 대중교통만 이용했다. 9유로 티켓이 일상의 이동 습관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 셈이다.
이처럼 9유로 티켓을 이용하는 3개월 독일 전 국토가 큰 실험실이 됐다. 정부뿐만 아니라 모빌리티 사업자, 도시 계획,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련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불만의 목소리도 물론 있다. 주말마다 주요 노선에 사람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다. 하지만 전반적인 평가는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긴급지원금을 지급할 때처럼 독일 정부의 보기 드문(?) 결단력과 추진력에 시민들의 호감도는 급상승했다. 직접적인 금전적 지원은 아니지만 시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 독일 대중교통 이용자 ⓒ 이유진
다음은 '기후티켓'
독일은 지금 9유로 티켓 이후를 이야기한다. 비용이 더 저렴하고, 인프라가 개선된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대중교통 이용이 에너지 절약은 물론 기후에도 도움이 된다는 명제를 모든 시민이 체감했다.
다음에 거론되는 것이 '기후티켓(Klimaticket)'이다. 하루 1유로, 연 365유로로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다. 현재 베를린 기준 연간권은 기본 676유로. 거의 절반으로 줄이자는 이야기다.
▲ 독일환경지원(Deutsche Umwelthilfe)이라는 시민단체가 진행중인 '기후티켓' 도입 청원. 9유로 티켓 도입 이전부터 시작되었는데, 호응이 좋아 정치권이나 미디어 등에서도 언급이 이어지고 있다. ⓒ Deutsche Umwelthilfe e.V.
시민단체인 독일환경지원(Deutsche Umwelthilfe)이 진행중인 기후티켓 도입 청원에는 15만 명이 서명했다. 독일환경지원 측은 "자동차 없이도 환경 네트워크를 통한 모빌리티(도보, 자전거, 버스, 지하철)로 우리 도시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다"라며 "친환경 모빌리티는 더욱 확장되고 매력적으로 짜여야 한다. 사람들이 가능한 한 더욱 쉽게 자동차를 두고 나올 수 있도록 독일 전역에 유효한 기후티켓이 도입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9유로 티켓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타고 정치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를린시는 정확한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365유로 연간권 도입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후티켓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독일에서 지금처럼 모빌리티 습관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커진 적이 있었던가.
기후티켓이든 365티켓이든 사회적 합의가 모아지는 지점은 하나다. 9유로 티켓 이후는 그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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