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사라진 기억
제철소 협력사 취업해 희망 꿈꿨지만
2014년 6월6일에 시간이 멈췄다
생떼같은 아들의 사회적 나이는 2.45살
그의 답변은 모두 한 단어였다
21살의 나이로 전역한 아들은 2012년 광양에 있는 한 제철소의 협력사에 취직했다. 제철소 내 여러 기계 정비를 지원하는 업체였다. 복학할 수도 있었지만, 사회 경험도 하고 돈도 벌어볼 생각으로 취업을 택했다. 제철소와 협력사들은 동네를 먹여 살렸다. 다른 마땅한 회사도 없었다. 일찍 취업해 경력을 쌓다 보면 월급도 제법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괜히 회사를 보냈다는 생각을 해요. 후회해요.” 어머니는 허공을 바라보는 아들의 손을 맞잡고선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사고 경위를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희성이가 가스에 중독돼 병원에 있다”는 회사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뛰어들어갔을 때 아들은 외상 하나 없이 멀끔한 상태였다. “세 사람이 가스를 마셨다고 하는데, 그분들하고 현장에 들어갔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아는 거지. 다친 데가 없는데 눈을 뜨지 못하니 아무런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아들과 함께 현장에 들어간 나머지 두 사람은 며칠 뒤 회복해 면회를 왔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 회사의 말만 들었던 어머니는 왜 아들만 일어나지 못했는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회사는 사고가 벌어진 이후 비급여항목(인지·언어 치료 등) 의료비를 부담했지만 “다른 지원은 없었다.”
희성씨의 한줄짜리 재해 경위를 검토한 제철소 관계자는 <한겨레>에 “고로에서 나온 가스를 배출하는 밸브에서 볼팅(볼트를 조이는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밸브 룸(밸브가 있는 공간)은 밀폐돼 있고 가스가 새고 있는 것을 몰라서 중독된 건데, 가스 감지기를 달고 다니는 조치가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여기 하얗게 된 거 보이시죠. 마음을 준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는 어머니를 불러 아들의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보여주며 말했다. 자신의 눈에 비친 아들은 중환자실에서 잠시 잠자듯 누워 있는데,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아들의 뇌는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목숨마저 위태롭다는 소견이 나온 것이다. 살더라도 향후 인지 능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심한 후유장해가 지속될 것이란 설명이 이어졌다. “이게 말이 되나요. 내 새끼인데, 예를 들어 몸이 다쳐갖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면 알겄는디 어디 다친 곳도 없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께 기도 안 차더라고.” 어머니가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며 토하듯 말했다.
광양사랑병원→삼천포서울병원→부산대학교병원→전남대학교병원. “치료할 게 없다”는 말에도 희성씨 부모는 더 좋은 재활 시설을 갖춘 병원으로 옮겨 다니길 반복했다. 쓰러진 지 한달 만에 아들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못 알아보는 까막눈”으로 눈을 떴다. 말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의 말에 눈을 깜빡깜빡하며 가족들과 의사를 주고받았다. 말을 하고 의식을 회복하는 데까지 3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아들은 자신이 산재를 당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다. 지금도 산재 이전의 기억만을 더듬을 뿐이다. “네” “아니요” 외에 자기 생각을 말로 풀어내지 못한다. 2017년 4월18일, 사회성숙도 검사(사회적 능력, 적응 행동을 평가하는 검사)에서 희성씨의 사회적 나이(Social age)는 2.45살로 측정됐다. 웩슬러 성인용 지능검사 수치는 40이 나왔다. 최하 점수였다.
겉모습이 멀쩡한 “생때같은” 아들을 어머니는 포기할 수 없었다. 2017년 3월 요양을 종료할 때까지 희성씨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에 있는 세브란스병원, 경희대병원, 아산병원을 한달 간격으로 돌아다니며 언어 치료와 인지 치료를 받았다. 한 시간에 5만원인 언어 치료는 비급여 항목이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지원받지 못했다. 두 다리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간병비도 받을 수 없었다. 언어 치료는 하루에 최소 2시간에서 4시간가량 이어졌다. “당연히 시켜줘야지. 말을 하게 해줘야 하고 1, 2, 3은 배워주게 하는 게 부모의 마음 아니어요? 사람들이 현장에서 다쳤다고 하면 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대주는 줄 아는데, 안 되는 것들이 제법 많더라고.” 요양은 끝났지만,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의 불면증과 충동 조절 치료에 필요한 정신과 약을 타러 서울을 오간다.
2017년 3월 진행된 장해등급심사에서 희성씨는 3급 판정을 받았다. 2년 뒤 실시한 재판정에서도 등급은 변하지 않았다. 장해연금은 매달 200여만원씩 들어왔다. 장해연금의 산정 기준인 3개월간 임금총액을 반영한 결과다. 21살의 나이에 신입직원으로 입사해 1년9개월 일한 희성씨의 임금이 사고 당시 많지 않아서다. 해가 바뀔 때마다 물가상승분을 고려해 장해연금이 월 1만원 정도 오른다. 연금을 받아도 쓸 줄 모르는 아들 곁에 어머니는 ‘단짝’으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 하루 세끼를 챙기고 함께 산책하는 일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 됐다. 딸은 결혼해 분가했고, 남편은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트럭 운전대를 잡았다. “아직은 제가 젊어요. 아직은 괜찮은데….”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휴지를 꺼내 드는 어머니를 보고도 아들은 말이 없었다.
산재는 끝났지만, 재난은 끝나지 않았다. 2020년 10월 작성된 희성씨의 심리 결과 보고서에는 “(희성씨는) 산책을 하는 것 외에 딱히 즐기는 활동이 없으며 수면도 일정하지 않아 밤잠이 아니라 낮잠을 잠깐씩 잔다. 사고 이후에는 감정이나 충동 조절 문제도 매우 심각해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해 (…) 가장 큰 문제는 피검자(이희성)가 어떤 부분에서 기분이 나빴는지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라고 적혀 있다. 또 “전문의에 의하면 ‘뇌의 반이 없는 상태’라고 할 정도여서 기능이 퇴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한다. (…) 외양적 모습에는 이런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아 보호자만 답답함을 느낀다”는 내용도 나온다. 사회적 나이는 1.92살로 3년 전 2.45살보다 더 쪼그라들었다. 꾸준한 치료로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마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기억은 증발해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재해자들은 친구들과 함께 즐거웠던 과거를 추억하며 우울감을 달랜다. 하지만 희성씨를 지키는 이는 가족뿐이다. 친구들과 지인들도 처음에는 “속이 차지 않아 껍데기만 남은” 희성씨를 안타까워했지만,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몸무게도 10㎏ 이상 불어나면서 희성씨의 호리호리한 모습은 사진으로만 남았다. 꾸미기를 좋아했던 20대 시절, 패션에 관심이 많아 하나둘 사 모았던 나이키 운동화는 버려졌고 기분에 따라 곧잘 뿌렸던 향수에는 먼지가 쌓였다. 희성씨의 “의사소통 영역은 1~2살 수준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주 간단한 언어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대화가 되지 않는”다(심리 결과 보고서).
지난 4월4일 첫 방문날, 기자가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을 때 현관문을 열어준 것은 희성씨였다.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178㎝ 남짓의 건장한 청년이라 중장해를 입은 산재 피해자라 짐작하기 어려웠다. “사고 당시가 기억이 나나”, “일은 언제부터 했나” 등 산재 경위와 관련된 기자의 질문에 그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산재에서) 회사의 잘못이 있다고 보나”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했지만, 잘못한 부분을 짚어달라는 요청에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질문에 따른 대답은 모두 한 단어였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철강산업에서 발생하는 산재의 상당수는 인재가 원인이었다. 노동부가 지난해 9월 ‘철강산업 안전보건리더회의’를 열면서 2016년부터 2021년 7월까지 5년7개월 동안 철강사업장에서 산재로 사망한 75명과 그 세부 원인(복수 원인 포함) 153건을 분석했다. 이 중 작업계획을 수립하지 않거나 준수하지 않았던 경우가 79건(52%)으로 가장 많았다. 끼임 방지, 추락 방지, 보호구 착용 등 3대 안전수칙 미준수 등이 55건(36%)으로 뒤를 이었다. 산재 사망 유형도 끼임(20건), 추락(12건), 화재·폭발(11건), 화학물질 누출(9건) 등 다양했다. 최근에는 제철소에서 일하다 폐암 등을 얻은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월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포스코에서 근무했던 직원 6명이 폐암 등 질환을 산재로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정환봉 기자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