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채폭탄 우려, 금융위기 가능성

대한민국 가계부채는 세계 1위이다. GDP 대비 105%에 달한다. 한달에 100만원을 버는데, 빚은 105만원이라는 뜻이다. 2008년 미국의 경우 가계부채가 GDP 대비 97%일 때 금융대란이 터졌다. 한국에 내일 당장 금융위기가 온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부채로 몸살을 앓는다. 미국, 일본은 국가부채, 중국은 기업부채, 한국은 가계부채가 문제이다. 이 부채로 인해 1929년 세계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가 찾아 온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 세계경제는 부채의 바벨탑 위에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세계에서 부채란 과연 무엇일까?

미래의 수입을 앞당겨 쓰면 부채가 된다. 가계부채는 미래의 가계수입을 당겨쓴 것이다. 벌어서 갚아야 한다. 국가부채는 미래세대가 낼 세금을 현세대가 미리 당겨쓴 것이다. 기업부채 역시 수익이 생기기도 전에 지출부터 해버린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는 온통 빚이다. 국가, 기업, 가계 모두 갚을 능력도 안 되면서 부채를 안고 산다. 현대자본주의는 일단 당겨쓰고 보자는 식의 ‘광기’어린 부채를 통해 연명한다. 마치 ‘마약’처럼 끊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이제 그 부채경제가 임계점에 달했다.

2. 부채의 바벨탑은 얼마나 쌓였나

전 세계 부채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세계 총부채는 2021년 초 296조(한화 36경 원) 달러다. 이중 정부부채는 92조, 가계부채는 55조, 기업부채는 149조 달러다. 기업부채 중 비금융 기업부채가 76조, 금융권 부채가 73조 달러에 달한다.

부채의 심각성은 실물경제와 비교하면 뚜렷해진다. 2021년 세계 GDP 규모는 약 95조 달러. GDP 대비 311%에 달한다.

2022년 5월 현재 세계 총부채는 305조 달러(약 36경6천조원)를 넘겨 2차세계대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먼저 정부부채를 보자. 세계 정부부채는 2021년 105% 수준으로 세계 GDP규모를 초과했다.

2021년 미국 국가부채는 28조 달러를 넘겼다. GDP 대비 126.3%에 달하며, 전 세계 정부부채의 1/3을 차지한다. 일본 정부부채도 10조 달러로 GDP의 250% 수준으로 팽창했다.

보통 정부부채는 국가채무(D1), 일반정부부채(D2), 공공부문부채(D3)로 나뉜다. 일반정부부채(D2)는 국가 간 비교에 자주 활용된다. 한국의 경우 2020년 기준 일반정부부채(D2) 규모는 945조1000억원에 달한다. 국가채무만 따지면 GDP 대비 44%선이다.

가계부채는 2021년 상반기 동안 1조5천억 달러(약 1800조 원)가 늘어났다. 미국·중국·브라질·한국 등에서 저금리로 부동산 대출을 늘리면서 집값거품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2020년 세계 1위이다. 가계부채의 경우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중요하다. 2020년 가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201%였는데, 소득에서 재난지원금을 빼면 208%로 올라간다.

기업부채의 경우 2008년 45조 달러에서 2021년 76조 달러로 급증했다. 문제는 이들 회사채 중 트리플 C등급의 회사채 비중이 상당하고, 40% 정도가 3년 안에 만기가 돌아온다는 점이다. 기업부채는 중국을 비롯, 미국, 유럽 비금융권 기업부채가 빠르게 증가했다. 중국 기업부채는 19조달러(약 2경1400조원)에 달한다.

한국 역시 기업부채에서도 위험군에 속한다. 한국 비금융기업 부채는 GDP 대비 115.7%로 가계부채 못지 않게 심각하다. 홍콩(292.9%), 레바논(264.6%), 중국(154.8%), 베트남(137.4%), 싱가포르(135.3%) 다음으로 많다. 여기에다 한국 중소기업 42% 정도가 한계기업(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기업)이다.

증가일로에 있던 세계부채 중 80%는 신흥국에서 발생했다. 특히 정부부채와 비금융 기업부채가 급격히 증가했다. 신흥국 부채총액은 100조 달러(약 10경2000조원)에 달한다. 중국, 베트남, 태국, 한국 등 신흥국 부채 수준은 GDP의 약 248%에 이르고 있다.

특히 저·중소득 국가의 대외부채가 증가했다. 세계은행은 대외채무가 2021년 평균 9조3,000억 달러(약 1경2,000조 원)로, 20년에 비해 6.9% 증가했다고 추산했다. 개발도상국 중 30개국은 부채 문제가 심각한데, 달러 금리가 인상되면서 이들 나라에서 벌써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루비니 교수는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민간 총 부채수준이 지난 1999년 200%에서 최근 350%로 급등했다고 지적하고, “빠른 속도의 통화정책 정상화와 금리 인상은 자기자본 대비 차입 비율이 높은 ‘좀비’ 가계와 기업, 금융기관, 정부를 파산 또는 디폴트로 몰고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3. 부채위기의 원인

 

지난 50년간 3차례 부채위기가 있었다. 그 끝은 항상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1차 부채위기는 1970~89년에 발생했는데, 멕시코 등 남미국가에서 정부부채가 터졌다. 2차 부채위기는 1990~2001년에 발생, 동아시아에서 기업부채가 터졌다. 3차 부채위기는 2002~2009년에 발생하여, 미국에서 가계부채가 터졌다.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정부, 기업, 가계부채가 모두 문제가 될 정도로 부채는 광범위하게 누적되어 있다. 현재의 부채위기가 어떤 방식의 금융위기로 이어질지 그 파급력을 가늠할 수 없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첫째는 실물경제의 장기 저성장이 부채를 야기하는 근본 바탕이다. 2차 대전 이후 국가독점자본주의, 조절자본주의로 전환되면서 자본주의 경기 싸이클은 일정한 굴곡을 거치게 되었다. 일단 저성장 국면에 돌입하면 장기화되는 경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저성장, 장기침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기부양책’을 쓰게 된다. 경기부양책에 동원되는 정책수단은 크게 2가지이다. 저금리와 재정확대. 즉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다. 다시 말해 부채를 증가시켜 인위적으로 돈을 풀고 재정을 확대해서 경기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2008년 금융공황 이후에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무제한적 양적완화이다.

결국 현대자본주의는 과잉생산과 유휴수요 부족에 따라 필연적으로 오게 되는 저성장의 문제를 부채를 당겨 경기부양을 하는 방법으로 연명해온 것이다.

둘째는 경제의 금융화가 부채를 가속화하였다. 현대자본주의는 ‘부채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적 은행은 대출을 통해 신용을 창출한다.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은 중앙은행의 본원통화를 바탕으로 통화승수만큼 신용을 창출하는데, 과잉대출로 인해 금융공황을 야기하는 필연성을 안고 있다. 마치 실물경제영역에서 과잉생산과 유효수효 부족으로 산업공황이 발생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런데 현대자본주의에서 부채의 증가과정은 자산유동화, 자산증권화, 금융팽창과정과 결합되어 있다. 자산을 유동화, 증권화하고, 금융이 팽창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약탈적이다. 하나는 실물경제를 자산화하고 주주가치를 앞장세움으로써 불로소득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현재의 실물경제를 약탈한다. 다른 하나는 다양한 금융상품, 파생상품은 미래수익을 선반영하는 시간가치 금융공학을 통하여 미래의 소득과 수입, 손자세대의 세금까지 당겨쓰는 미래경제에 대한 약탈이다. 이제는 이것이 더 이상 불가능한 ‘종말’단계에 접어들었다.

셋째는 부채위기의 주범은 달러제국주의라는 점이다. 그 시작점은 1971년 달러금태환 정지였다. 이후 달러발행이 급증하고 실소득은 정지되어 있는데 마치 월급이 오르는듯한 70년대 인플레이션 환상을 만들어 냈다. 1980년대에는 금리인상에 따른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레이건 정부가 막대한 공공부채를 늘려 경제를 지탱했다. 그 한계에 봉착한 1990년대부터는 민간부채를 늘리기 시작했고, 그 종착점이 바로 2008년 금융공황이었다. 이 모든 부채경제의 확대와 거품, 그리고 붕괴의 중심에는 언제나 미국, 달러제국주의가 있었다. 2008년과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걷잡을 수 없는 부채위기를 만들어 냈다. 이제는 거의 모든 나라가 MMT(국가주도 통화팽창정책) 수준의 양적완화 정책에 동참했다. 부채경제가 극한점에 이른 것이다.

4. 부채위기의 성격

부채위기는 순환적이면서도 누적적이다. 순환적이라는 의미는 ‘저금리에 기반한 부채창출-자산거품형성-부채의 급격확대-거품붕괴-부채폭발과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부채싸이클을 그린다. 누적적이라는 의미는 정부부채, 기업부채, 가계부채로 이전되다가 모든 부문에서 부채가 누적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렛대가 모두 상실된다는 의미이다.

최근 부채위기의 성격은 복합위기이자 전환기적 위기이다.

무엇보다 현재의 부채위기는 복합위기이다. 최근 경제위기는 1차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난다. 이와 더불어 금리인상에 따른 자산거품 붕괴, 경기침체로도 나타난다. 또한 신냉전에 따른 공급망 분리와 붕괴로도 나타난다. 복합위기란 여러 가지 위기요소가 중첩되어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복합위기의 집중점은 역시 부채위기이다.

루비니 교수 역시 현재 위기의 복합적 성격을 지적한다. 1970년대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지만 부채수준이 높지 않았고, 2008년에는 부채위기에 이어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최근의 위기는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과 2008년 스타일이 결합한 ‘스태그플레이션적 채무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때문에 해법도 쉽지 않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릴 경우에는 부채위기와 결합된 경착륙이 발생할 수 있다. 경착륙을 막기 위해 중도에 다시 통화긴축을 중단하면 인플레이션 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현재의 부채위기는 전환기적 위기이기도 하다. 신냉전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제공급망의 분리와 재편, 브릭스에 기반하여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통화체제의 등장, 전쟁의 발생 등 달러제국주의 체제의 붕괴를 가속화하는 요소들이 부채위기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의 부채위기는 달러체제의 급격한 쇠퇴약화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5. 한국의 부채위기

한국의 부채위기는 달러 종속성, 부동산 주도성, 서민 약탈성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금융은 달러체제에 완전히 종속되었다. 한국 대다수 시중은행은 미국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주요 소유자이고, 주식시장 역시 외국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외국인 지분율이 70%, 신한은행은 69%이다. 대다수 지방은행 40% 이상의 지분을 외국인이 갖고 있다. 외국자본의 손에 장악된 은행자본은 97년 이후 기업대출보다는 소매대출로 전향했다. 그리고 주택과 신용을 담보로 과잉대출을 일으키고 가계부채를 끌어올렸다.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공식적으로 2000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전세대출을 포함하면 3200조원에 이른다. 한국 부채위기의 핵심은 가계부채이다. 그런데 거의 부동산 관련 대출이다. 생계형 서민대출, 자영업자대출은 6%선으로 얼마되지 않는다. 대부분 투기성 부동산 대출이다. 기업대출의 절반 정도도 역시 위장된 부동산 가계대출이다. 게다가 80% 이상이 이자만 갚는 단기성 변동금리 대출이다. 그런데 한국 은행들의 예금 대비 대출율이 100%에 가깝다. 거의 모든 예금을 대출했기 때문에 추가 대출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조건에서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경기가 침체하면 자금 여력이 부족한 은행들은 대출을 회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부채위기가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나라 은행의 예대마진율은 2배 이상이다. 즉 대출이자가 저축이자의 2배라는 뜻이다. 이 말은 저축이자는 적게 주고, 대출이자는 많이 받는 약탈형 금융기관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대출행태에서도 약탈성이 드러난다. 원래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서브프라임)에게 대출을 해주는 것을 ‘약탈대출’이라고 한다. 대출을 통한 자산 거품이 발생하면, 모두다 부동산 투기, 빚투와 영끌로 몰려든다. 결국 상환능력을 가진 ‘헷지 차입자’는 얼마 안되고, 이자만 갚을 수 있는 ‘투기적 차입자’나 이자조차 갚을 수 없는 ‘폰지 차입자’들이 더 많아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어 부동산 거품,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막판에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던 개인투자자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렇게 부채위기와 이에 따른 거품붕괴, 금융공황은 사회적 약자들을 털어가는 과정이다.

이런 기가 막힌 부채위기를 재생산하는 한국의 금융체계에 대해 심각한 진단이 필요한 때이다. 다가오는 부채위기에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 종속적, 투기적, 약탈적 금융시스템을 다시 구원할 것인가. 아니면 금융주권, 금융공공성, 금융평등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기 위한 준비와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