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통령실 향한 이태원 참사 추모 발걸음, 경찰에 막혔다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와 청년당원들이 3일 오후 6시34분 이태원 참사 현장 맞은편 이태원역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엄중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마친 뒤 대통령 집무실을 향해 가다가 경찰에 막혀 있다. 2022.11.03 ⓒ민중의소리

 

경찰은 신속했다. 빈틈없었다. 대통령실로 향하는 6m 인도를 40여명의 경찰이 틀어 막는데 20초가 걸렸다. 경찰이 막은 것은 둘씩 짝지어 걷던 청년 50명이었다. 그들 손에는 ‘막을 수 있었다. 국가는 없었다’라고 적힌 종이가 들려 있었다. 경찰의 신속함은 5일 전 이태원 골목에 있어야 했다. 그들은 참사 대신, 청년들의 추모를 막았다. 3일 저녁 7시 32분,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대통령실 방향으로 향하는 인도에서 벌어진 일이다.

충돌은 없었다. 경찰이 인도를 막자 청년들은 걸음을 멈췄다.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는 “참사 현장에 국가가 없었다.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5분여 뒤, 삼삼오오 뒤돌아 걸어갔다. 참사 발생 5일 만에 청년들의 추모 행렬은 처음으로 대통령실을 향했다.

늘 보던 경찰의 제지였다. 대통령실 인근에서 피켓을 드는 것은, 청와대 앞이나 삼각지에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늘 보던 때와 달랐다. 황망했다. 참사 현장과 너무나 가까웠다. 경찰이 삽시간에 모여든 녹사평역 4번 출구 앞은 참사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684m다. 달려가면 3~4분,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10여 분이면 갈 수 있다. 참사를 막을 공권력이 지척에 있었다 생각하니 더 황망했다.

약 1시간 전인 6시 34분, 청년들은 이태원역 4번 출구 앞에 있었다. 6시 34분은 참사 위험을 경고하는 112 신고가 처음으로 접수된 시간이다. 100여 청년들은 침묵시위를 했다. 지난 2일에 이어 두 번째다. 한마디 말도 없었다. 손에는 ‘탓하기 바쁜 정부 말고, 책임지고 민생 챙기는 정부’ ‘사고가 아닌 참사, 막을 수 있었다’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가 들려 있었다. 36분간 침묵시위를 하던 청년들은 녹사평역으로 걸었다.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청년들은 내일도 침묵시위를 연다. 주말엔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참사를 막지 못한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갖는다.

</figcaption>

청년들이 3일 오후 6시34분 이태원 참사 현장 맞은편 이태원역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엄중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마친 뒤 녹사평역 합동분향소로 행진을 하고 있다. 2022.11.03 ⓒ민중의소리
청년들이 3일 오후 6시34분 이태원 참사 현장 맞은편 이태원역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엄중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마친 뒤 녹사평역 합동분향소로 행진을 하고 있다. 2022.11.03 ⓒ민중의소리
 
청년들이 3일 오후 6시34분 이태원 참사 현장 맞은편 이태원역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엄중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마친 뒤 녹사평역 합동분향소로 행진을 하고 있다. 2022.11.03 ⓒ민중의소리
 
청년이 3일 오후 6시34분 이태원 참사 현장 맞은편 이태원역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엄중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하기 위해 손자보를 준비하고 있다. 2022.11.03 ⓒ민중의소리
 
3일 오후 6시34분 이태원 참사 현장 맞은편 이태원역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엄중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시위 참석한 청년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2.11.03 ⓒ민중의소리
 
 
청년들이 3일 오후 6시34분 이태원 참사 현장 맞은편 이태원역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엄중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마친 뒤 녹사평역 합동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2022.11.03 ⓒ민중의소리


청년들의 조용한 분노가 넘쳤던 침묵시위 현장 맞은편엔 슬픔과 애도가 있었다. 시민들은 해밀톤호텔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한숨과 탄식은 스님들의 목탁 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시민들 사이에서 김광민(가명·55)씨를 만났다. 멍한 눈으로 참사 발생 골목을 바라보던 그는 시민들이 남긴 추모의 글을 하나하나 읽었다. 그리고 가끔 하늘을 봤다. ‘추모는 다 하셨나’ 조심스레 물으니 고개를 돌렸다.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허망합니다. 허망하고…”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중년의 신사는 끝내 굵은 눈물을 흘렸다. 한참 숨을 고른 그는 “이 어린애들을 어른이 돼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게…” 그의 말은 또 끊겼다. 눈물을 훔친 그는 “지켜주지 못했다는 게 너무나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20대 자녀가 둘이다. 둘째 아들이 대학교 3학년이다. 다행스럽게도, 두 자녀는 참사와 무관하다고 했다. 하지만 “남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직장은 과천이다. 퇴근 이후 “한 번은 들러야 한다”는 마음에 이태원역으로 향했다. 그는 “나라가, 국가가 없었네요. 허망합니다. 뭐가 문제였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꼭 밝혀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어른 된 도리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골목을 한참 더 응시하던 김씨는 강서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추모 시민 중 상당수는 김씨와 같은 중장년층이었다. 
 

3일 저녁 6시 26분, 김광민(가명·55)씨가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아 추모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 홍민철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