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로 올라가는 대통령에게 왜 불손하게 질문을 던지느냐는 불만과 함께였다. 질문을 받지 않는 것도 대통령의 '자유'지만, 질문을 하는 것도 기자의 '자유'임에도 말이다. 기자는 곧바로 비서관에게, "무엇이 악의적인가?" "악의의 근거로 말하는 가짜뉴스는 무엇인가?" "영상에 다 있는데, 뭘 어떻게 조작했다는 말인가?"라는 상식적 질문을 던진다. '가짜뉴스'라는 엄청난 용어를 공개 석상에서 던지며 기자와 언론사를 파렴치범으로 만들었으면, 최소한 그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한 언론사를 '가짜뉴스', '악의적 행태'라 단정... 근거 묻자 돌아온 답은
"무엇이 조작이라는 거죠? 분석했다면서요? 그럼 증거를 내놔보세요." (18일 당시 MBC 기자)
악의적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근거'가 무엇인지 묻는 것은 매우 상식적이다. 만약 대통령실 주장이 사실이라면, 비서관이 "알겠습니다. 근거를 곧 보내드리죠"라고 하면 모든 게 끝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적인 요구에 비서관은 "그러니까 보도를 잘하세요. 정말..."이라며 자리를 떴다. '가짜뉴스' 보도와 '조작'에 대한 근거를 달라고 했더니, "보도를 잘하라"는 답만을 하고 대화를 끝낸 것이다.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 요구(증거를 보여달라)에, 너무나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답(보도를 제대로, 잘하라)을 내놓았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대통령실이 설정한 프레임인 '악의적'이란 단어는 고스란히 대통령실에 돌려주는 게 맞아 보인다. 한 언론사를 비난하고, 고발하고, 몰아붙이면서도, 판단에 대한 근거는 끝내 내놓지 않는 행동이야말로 너무나 정확하게 '악의적'인 게 아닌가.
MBC 기자의 "무엇이 악의적이란 말인가?"라는 외침에, 역시 기자출신인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MBC는 이래서 악의적이다"라며 10개 조항을 서면 브리핑으로 내놓았다. 공영 언론에 대해 악의적이라는 주장과 근거를 제공하셨으니,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의 일인으로 맞브리핑을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내용의 불합리성과 비논리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해 보려는 것이다(관련 기사:
"뭐가 악의적?" MBC 질문에 대통령실이 내놓은 10가지 이유).
부대변인 서면 브리핑 내용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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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지난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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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부대변인은 MBC가 "음성 전문가도 확인하기 힘든 말을 자막으로 만들어 무한 반복했으며" 이것이 바로 악의적이라고 1번(브리핑 내용)에서 적시한 바 있다. 그런데 부대변인의 주장처럼 '확인하기 힘든 사안'이라면, 도대체 대통령실은 무엇을 근거로 "(MBC보도는) 가짜뉴스"라며 공영 언론사에 대해 유죄 추정을 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더구나 음성 전문가로 소개된 일부 인사들의 즉흥적 발언들을 제외하고, 대통령실이 공식적으로 조사했다는 해당 자료를 제공하라는 언론사의 요구에는 응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도대체 어떠한 과학적 사실관계에 의해 해당 보도를 가짜뉴스로 단정하며 '악의적'이란 프레임으로 범죄화시키고 있는지, 비난의 주체가 설명의 의무도 져야 할 일이다.
2번의 모순도 상당하다. 부대변인은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을 MBC가 방송에 내보냈다"고 적었는데, 음성 전문가도 확인하기 힘들다고 1번에서 스스로 밝혔으면서, 대통령이 하지 않은 말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혹시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감히 대통령에게 해당 발언에 대해 확인을 했고, 국민을 향해서는 절대로 하지 않은 말인 "욕설을 한 적이 없다"는 명확한 답을 들었지만 정작 숨기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대통령은 그런 말(비속어)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는 대변인실 발표로 이 모든 국력의 낭비가 단 1초 만에 끝날 수 있는데도 안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참고로, 부대변인이 '악의적'이라 비난하는 MBC를 포함하여, 대한민국 국민의 63.2%가 욕설로 들린다고 대답한 바로 그 영상이 많은 언론사에 그대로 남아있다.
두 번째, 부대변인은 2번에서 MBC는 전 세계를 상대로 '거짓 방송'을 했다고도 주장했다. 아예 가짜뉴스의 수준을 넘어, 공영언론을 대상으로 정보를 날조하여 퍼뜨리는 파렴치범으로 적시해 버린 것이다. 추후 MBC와 대통령실의 법적 다툼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공영 언론사에 대해 이 정도의 치명적 프레임을 들이대려면 스스로도 철저히 논리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말한 1번의 논리, 즉 최고의 음성 전문가도 판단하기 힘들다는 발언의 논리에 부합하려면, '거짓 방송'이란 단정적인 혐의 대신 최소한 '추측성 보도'라고 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이 비난의 수위를 거칠게 설정했다고 해서, 실무자이며 참모인 스태프들이 흥분하여 거짓 방송이라는 비논리적 용어까지 쓴 것은, MBC의 죄가 사실은 '괘씸죄'일 수도 있음을 자인하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추가적인 불합리성도 발견된다. 부대변인은 3번에서, MBC가 명확한 가짜뉴스를 근거로 마치 대통령이 F로 시작하는 욕설을 한 것처럼 미 국무부에 질문했으며 그것이 악의적이라 주장했다. 마치 MBC가 그들이 '조작한' 사안을 토대로 재빠르게 미국에 질문지를 보냈다는 의미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언론에 전해진 바를 근거로 앞뒤를 정리해 보자면, MBC가 국무부에 해당 내용을 질문한 시점은 본 사태가 전 세계에 알려진 뒤 무려 13시간이나 지난 뒤였다(미디어오늘, 10월 6일 보도 참조).
더불어, 질문 내용에 포함된 영어 표현도 MBC의 자의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이미 AFP(뉴스통신사)가 세계를 상대로 내보낸 기사를 첨부한 것이었다. 물론 국민의힘 김석기 의원이 10월 4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발언했듯 "'대통령이 실수했나, 그러면 큰일'이라고 걱정을 해야하는데, 그걸 또 우리 언론은 외신에 퍼뜨렸다"는 놀라운 언론관을 근거로 한다면 이게 악의적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같은 전체주의적 사고야말로, "1980년대 언론관" 혹은 "디지털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장)"으로 이해되는 것이 상식적이다.
턱밑까지 위협받고 있는 언론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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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대통령 전용기 탑승이 불허된 MBC 기자들이 지난 10일 오후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대통령 순방을 취재하기 위해 출국하던 모습.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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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부대변인이 4번에서 악의적이라 지적한 부분 또한 매우 놀랍다. 미 국무부는 언론사의 질문을 받고 "한국과 우리의 관계는 끈끈하다"라고 회신을 했는데, MBC는 그 부분을 보도하지 않았다며 "보도하지 않을 것이면서 왜 질문을 한 것입니까? 이게 악의적"이라 비난한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언론사의 보도 및 편집은 해당 언론사의 고유 권한이다. 해당 권한은 표현의 자유와 등치될 만큼 소중한 사항이란 사실은, 언론사 출신 부대변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 부분이 '악의적'이라고 한다면, 세계 모든 언론사는 악의적이거나 향후 악의적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대변인의 이같은 지적에서, 공영 언론사를 포함한 모든 미디어가 갖는 당연한 권리조차 어떻게든 자신들의 뜻에 맞추고 싶은 욕망을 들켜버린 것은 아닌지? 특히나 위험해 보이는 대목이다. 더 기술적으로는, 위 회신이 해당 시점에서 기사의 가치가 약해졌을 가능성도 상당해 보인다. 당시 미국의 NSC가 소위 윤 대통령의 '핫 마이크 발언'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겠다는 사실을 이미 밝힌 후였으며, 이것이 국내외 언론에 충분히 전달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위 사항 외에도, 브리핑에는 위험한 내용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가짜뉴스가 나가게 된 경위를 파악하기보다, 다른 언론사들도 가짜뉴스를 내보냈는데 왜 우리에게만 책임을 묻느냐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발언은, 일견 MBC와 여타 언론사들 간 분열을 만들려는 의지로 읽히기도 한다. 대통령실도 이미 충분히 파악하고 있겠지만, 현재 우리의 언론은 분열 대신 진보와 보수를 떠나 현 정부와 대통령실의 대언론 행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악의적이 아니라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 단일한 논리를 적용하면 결단코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복잡한 개념이라 고백한다. 치열하고 끝없는 논의를 거쳐야만 어렴풋이 알 수 있다는 고민도 전하면서 말이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그렇다면 '악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면 정의가 쉽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실이 말하는 '악의(惡意)'란 무엇인지, 묻게 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현재 시민기자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커뮤니케이션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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