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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안전 요구’와 ‘경제 논리’의 싸움

 
 
화물연대 파업이 계속 뉴스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가 파업에 나선 화물운송 노동자들에게 사상 처음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파업 중인 화물 노동자들은 ‘업무개시명령’이 위헌이자 ‘계엄령 선포’라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화물노동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은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닌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파업을 저지하기 위해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화물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하면서 도입됐다. 노동자로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단체 행동은 막기 위해 ‘개인사업자’인 화물운송기사의 집단적인 운송거부를 규제하겠다는 것으로,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지속되었고, 지금까지 실제 사용된 적은 없었다.
 
화물연대본부 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24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다. 2022.11.24 ⓒ민중의소리
화물연대 총파업 엿새째인 29일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제2터미널 앞에서 열린 화물연대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서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이 삭발 투쟁을 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2022.11.29 ⓒ민중의소리
결국 업무개시명령 항의의 표시로 화물연대 간부들은 삭발을 했고, 경찰은 우선 업무개시명령 대상인 시멘트 운송 화물차 호위에 나섰다. 보수지·경제지들은 화물연대 파업으로 품절 주유소가 늘고 있다는 등 파업으로 인한 물류 마비, 정부와 노동자 사이의 격한 대치 등을 관련해 보도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면서 화물 노동자들이 애초에 총파업을 시작한 이유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대상 차종·품목 확대’였다는 점이 잊히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는 최소한의 운임을 결정, 공표하여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방지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다. 화물 노동자들이 ‘도로의 무법자’라는 화물 노동자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스스로 인정하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안전 운전·준법 운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이해가 높았고, 정부는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 당시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겠다고 합의하기까지 했다. 이후 정부와 국회가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어기고 이제 와 모르쇠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안전 요구가 생산성과 경제적 필요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2.11.29. ⓒ제공 : 뉴시스

화물 노동자들의 안전 요구를 무시하는 정부의 행태는, 다른 노동자들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난 11월 5일 수송원이 열차에 치여 숨진 뒤로 작업이 중단됐던 의왕시 오봉역에서 이례적으로 사고 발생 19일만에 작업이 재개돼 철도 노동자들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그 전까지 중대사망재해로 인한 작업중지명령은 짧게는 4개월에서 5개월 여의 기간 동안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청취 및 노사간 협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을 거치고서야 해제되었다. 2017년 6월 발생한 노량진역 중대사망재해의 경우 2018년 6월 작업중지명령 해제까지 1년이 걸리기도 했다.

이번 오봉역 사고 이후, 공사의 사과를 요구하다 장례가 늦춰져 11월 19일에 장례를 치를 수 있었고, 이 때문에 11월 18일에야 철도노동조합과 철도 공사가 처음으로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노사협의를 진행했다. 첫 회의에서 합의를 이루기 어려웠고, 이후 철도 노사는 수도권광역본부 임시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개최했지만, 인력충원 등 쟁점 사항에 대한 의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시멘트 산업계 물류난을 이유로 노사간 협의나 현장 노동자 의견 청취 등의 제대로 된 절차 없이 11월 23일 고용노동부에 작업중지명령 해제신청서를 제출했고, 노동부가 이를 초고속으로 승인해 하루만인 11월 24일 전격적으로 작업중지명령이 해제된 것이다.

여러 보도와 노동조합 입장에 따르면 화물연대 파업이 다가오자, 국토부 등 정부의 압력이 거셌다고 한다. 오봉역은 철도 화물의 31%를 수송하는 국내 최대 화물 거점인데, 화물연대 파업과 겹치면서 무조건 빨리 작업중지를 해제해야 한다는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는 것이다.

수년 간 반복되는 철도 입환(차량 연결, 분리) 작업 도중의 사고였다. 막을 수 있었고,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되는 사고다. 그런 만큼, 노사가 모두 무거운 마음으로,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대책을 합의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안전의 요구, 생명의 요구는 ‘물류대란’을 막아야 한다는 경제 논리 앞에서 힘을 잃었다. 현재 철도노조 역시 안전 대책 마련과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조합원들이 18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인근에서 열린 철도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규탄 현장 책임전가, 정원감축 중단 및 안전인력 충원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1.18 ⓒ민중의소리

최근 공항, 지하철, 병원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이 잇따르고 있다. 공통된 구호가 ‘안전’이다. 지금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은, 노동자들의 안전 요구와 정부의 경제 논리 간의 전쟁이다. 홀로 일하던 역무원이 피살된 후 지하철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인력 충원을 요구하고 있다. 병원 노동자들이 환자 안전을 제대로 책임지기 위해 적정 인력 확보를 주장하고 있다. 지나치게 넓은 구역을 담당해야 해 시민 안전 문제가 발생해도 대응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공항 보안경비 노동자들도 파업에 나서고 있다.

지금 ‘안전 확보’를 호소하는 노동자의 파업을 더 큰 위험 부담으로 덮으며 갈 것인가, 아니면 ‘안전 확보’라는 국가와 공공부문의 최소한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나아갈 것인가. 한국 사회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 
 
“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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