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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균·지한 씨 앞세우고 투사된 두 엄마 “공감이 힘 돼...자식들 위해 연대 하자”

이지한 씨 어머니 조미은·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자식 잃은 두 어머니의 다짐과 결심

28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작가회의 주최 행사에서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과 고 이지한 씨 어머니 조미은 씨(오른쪽)가 나란히 앉아 있다. ⓒ민중의소리


자식을 잃은 두 어머니가 한자리에 모였다. 두 어머니는 억울하게 자식을 잃었는데, 그 죽음을 대하는 정부와 정치인들, 기업의 태도가 가혹했다고 울분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울분을 계기로 자신들은 투사가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는 28일 오후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여기 자식을 잃은 두 어머니가 있습니다'라는 특별한 행사를 열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故) 이지한 씨의 어머니 조미은 씨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야간에 홀로 작업하다 목숨을 잃은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참석했다.

진보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는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 사태 등 사회 의제에 대한 문학작품을 발표하는 등 사회적 목소리를 내왔다. 김용균 씨 사망 사건과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정부의 책임을 묻는 성명을 냈다. 이날은 청년들이 일상을 보내다 목숨을 잃는 한국 사회가 노동 안전·시민 안전 차원에서 이대로 괜찮은가 성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먼저 가슴에 담아둔 사연을 밝힌 것은 조미은 씨다. 그는 참사 이후 국회와 정부의 태도를 보며 느꼈던 울분을 이 자리에서 토해냈다.

 

28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작가회의 주최 행사에서 이태원참사 희생자 이지한 씨의 어머니 조미은 씨(왼쪽)가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은 진행을 맡은 이용숙 시인. ⓒ민중의소리


조 씨는 "면담 때 이야기를 듣다 자리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 분도 있었고, 조는 분도 있었다. 심지어 휴대전화를 하면서 한 번도 유가족을 쳐다보지 않는 분도 있었다"고 참사 후 여당 국민의힘과 가졌던 첫 면담을 회상했다.

그중에서도 당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태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조 씨는 "그분이 그러더라 '저희 애가 지한이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남 일 같지 않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면서 "마지막으로 손까지 잡으면서 '방법, 수단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그때 모인 분들이 유가족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라 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1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비공개 면담을 마친 뒤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2022.11.21. ⓒ뉴시스

 

이어 "어제 내 손을 잡고 흘리던 눈물은 어떤 눈물일까, '공감한다'는 듯한 음성은 어떤 음성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다음 날, 유가족협의회를 꾸려서 정정당당하게 말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유가족협의체를 결성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후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다른 유가족의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조 씨는 "유가족들을 하나하나 찾아 다니고 제 전화번호를 주면서 협의체를 마련했다"라며 "지금은 희생자 107명 유가족 210명이 모였다. 저와 지한이 아빠가 미친 듯이 뛰어다닌 결과"라고 설명했다.

국정조사 과정에서도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은 계속됐다. 조 씨는 "마지막 공청회에 전주혜(국민의힘) 의원이 '앞으로 잘 하겠다 너무 슬프고 죄송하다'고 눈물을 흘리더라. 엄마로서 부탁해서 마음이 전달됐다고 생각했는데,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면서 "다음날은 국정조사 결과보고서가 채택되는 날이었는데 변호사에서 전화가 왔다. '보고서가 채택이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급하게 도착한 국회는 유가족 눈에는 난장판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결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며, 회의를 파행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조 씨는 "전주혜 의원은 '파행하라'며 헛소리를 하고, 조수진 (국민의힘)의원은 '청담동 술자리' 이야기를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어 "결국 지한이 아빠는 벽을 치며 통곡하다 119에 실려 갔다. 원래 지병이 없던 사람인데 혈압이 170이 나왔다"라고 가슴 아파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과정을 만족하지 못한다"라며, 국정조사 특위 당시 느낀 울분을 표현했다.

결국 국정조사 결과보고서는 국민의힘이 보이콧 해 야3당만의 채택으로 마무리됐다.

조 씨는 참사를 대하는 정부 태도는 '2차 가해'라고 표현했다. 그는 "용기를 잃게 하고 2차 가해를 하는 분들이 대통령,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다"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아이들 49제 행사를 하는 날 크리스마스 트리에 점등식을 하고, 떡을 돌렸다. 왜 하필 아이들 명복을 비는 그날이어야 했느냐"라고 분노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의 49재가 열린 지난해 12월 16일, 윤 대통령은 한 행사의 개막식에 참석한 바 있다. 또 같은 날 서울 서초구 자택 주변 주민들에게 떡 선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국회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9차 전체회의에서 고 이지한 씨 어머니 조미은 씨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에 항의하고 있다. 2023.1.17. ⓒ뉴스1

 

한 엄마의 결심 "아들, 네 억울함 풀기 위해 투사가 될께"

조 씨는 아들 지한 씨의 죽음을 접한 순간의 절절한 심정도 토로했다. 조 씨는 "응급실에 도착하니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망선고를 받았다"면서 "(아들의) 몸에 온기가 느껴졌다. 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공호흡을 했는데 텅빈 관으로 공기가 통과하는 소리가 났다. 그때서야 '하늘나라로 간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엉엉 울었다"고 울먹였다.

참사 이후 조 씨와 남편은 두 번이나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마다  '내 아들의 마지막 순간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조 씨는 "지한이를 비롯해 158명의 그 순간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순간 지한이는 누구를 생각했을까 생각해보니, 문득 엄마인 저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 씨는 아들의 죽게 된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내가 그 골목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었다면, 지한이도 똑같이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사와 관련해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항의하는 조 씨의 모습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자, 극우성향 유튜버들과 악플러들은 그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조 씨는 "녹사평역 분향소 천막에 있는데 신자유연대라는 곳에서 '시체팔이하는 배우 XX 엄마'라고 하더라. 도무지 참을 수 없어 '너도 인간이냐' 하고 항의하다 119를 탔다"고 고초를 겪은 사연도 털어놨다.

그러나 지지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통해 힘을 얻는다고 했다. 조 씨는 "한 택시기사 분이 저를 알아보고 대한민국이 반으로 갈라져 있지만 그래도 옳고 그름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면서, 지지하는 국민이 더 많다고 힘내라고 해주신 말이 큰 용기가 됐다"고 전했다.

조 씨는 끝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연대를 호소했다. 그는 "지식인들, 교수들 시인, 작가, 종교계, 변호사, 검사, 판사들을 다 찾아다니면서 부탁하고 싶다"면서 "공감하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회초리를 들 수는 없으니 말과 글로 해야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느낄 수 있든, 없든 바른 말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28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작가회의 주최 행사에서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은 진행을 맡은 장우원 시인. ⓒ민중의소리

 

다른 엄마의 목소리 "아들아, 너를 통해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

또 한 명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아직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아픔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김 이사장은 "명절이 되면 돌아올 자식이 없으니 축 처진 기분으로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4년이 됐지만 트라우마가 나아진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트라우마와 같이 가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정규직들의 산업 재해 현장을 찾아다니는 김 이사장은 현장에 가면 아들을 잃었을 당시 슬픔이 다시 올라온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청년노동자 사망사건을 접했을 때도 그랬다. 김 이사장은 "SPC 사건은 용균이 사건이랑 너무 판박이라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면서 "(김용균 사건 이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하나도 안 바뀐 것 같아 비참한 심정이었다"라고 토로했다.

김 이사장은 먼저 간 자식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사회를 바꾸는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간 자식에게 우리는 죄인 같다. 적어도 '네 죽음으로 인해서 많은 일을 해결하고 왔어. 내가 한 게 아니라 너의 죽음을 통해서 한 거야' 하고 말하고 싶다"고 담담히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자식들이나 스스로를 위해 이 사회를 보고만 있지 않고 뭔가를 하겠다는 다짐을 했으면 좋겠다"면서 "한 사람은 약하지만 여러 마음이 모이면 못할 게 없다"고 사회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국작가회의 회원 40여명은 시인들은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먹먹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시인인 회원들은 두 청년들의 애닮은 죽음에 대한 애도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주선미 시인은 "저 이불 속에 네가 꿈틀거리고 있을 것만 같아 자꾸 들춰본다"라는 이태원참사 애도시 '공정한 사회'의 구절을 떨리는 목소리로 낭송했다. 

이날 행사에서 박관서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두 어머니에게 "시인으로서 어머니들께 죄송하다"며 "시 쓰는 일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안 좋은 일을 예견하고 다시 못 일어나게 앞장서야 하는 일이기도 한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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