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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빠진 윤석열 정부의 ‘전세사기 종합대책’

정부 ‘전세사기 방지 대책’에 피해자단체 “가짜 시세 못믿겠다... 보증금 반환 대책 마련해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 관련 합동브리핑에 참석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02.02 ⓒ민중의소리
윤석열 정부가 예고했던 전세사기 방지 대책이 발표됐다. 핵심은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90% 이하인 주택만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또 안심전세앱(App)을 통해 신축빌라 등의 시세, 악성 임대인 정보, 임대인의 세금체납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 단체와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단순히 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높이는 것만으로 전세사기를 막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강제력 없이 단순히 정보만 추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이는 안심전세앱도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봤다.

정부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전세사기 피해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 보증보험 가입 기준 전세가율 100%→90%로 낮춘다
... 전세사기 피해자들 “‘가짜 시세’  못 믿겠다, 보증금 반환 대책 마련해야”


우선 정부는 오는 5월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보증보험 가입 대상을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보증금 비율)을 90%로 낮춘다. 기존엔 전세금 반환보증이 매매가의 100%까지 허용돼 악성 임대인의 무자본 갭투자와 공인중개사 등의 깡통전세 계약 유도에 악용됐다고 판단한 데 따른 조치다.

등록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 의무 준수 여부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법 개정으로 2021년 8월부터 모든 임대사업자의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됐지만, 말로만 의무 가입 대상자라며 세입자를 안심시킨 뒤 가입하지 않은 사례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

정부는 세입자가 거주하고 있는 주택의 경우 집주인이 보증보험에 가입해야만 민간임대주택으로 등록해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공실은 민간임대주택 등록 후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되, 미가입 때는 임차인에게 통보해 계약을 해지하고 위약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 앞으로 감정평가는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격이 없는 경우에만 적용한다. 이미 감정평가사가 시세 부풀리기에 가담한 사례가 발생했던 만큼 시세에 대한 감정평가는 협회에서 추천한 법인의 감정가만 인정하기로 했다.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 등에 대해서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 처벌을 강화한다. 한 번이라도 전세사기 가담 사실이 확인되면 자격을 취소한다.

 

 

 

전세사기 임대인 사망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27일 세종시 어진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 사각지대에 놓인 다양한 피해자 해결방안을 촉구하고 있다. 2022.12.27. ⓒ뉴시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동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세보증금 자체를 규제하거나, 전세보증금을 부채로 인식하도록 해 악성 임대인의 무자본 갭투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은 “보증보험 가입 기준 전세가율을 100%에서 90%로 낮추는 건 무자본 갭투자를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면서도 “전세가율 자체에 상한을 둬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소장은 “표준임대료제도를 도입하거나 임대인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시 전세보증금을 포함시키는 등의 근본적인 제도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며 “정부의 이번 대책처럼 전세보증금 가입 기준만 낮추는 건 HUG의 자기 보호지 전세사기 방지 대책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꼬집었다.

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집값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전세가율 90%로 하는 건 부족하다”며 “집값은 앞으로 20~30% 가량 더 떨어질 수 있다. 전세가율 90%는 언제든지 깡통전세로 전락할 수 있는 만큼 보증보험 가입 기준을 70~80% 수준까지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단체는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명확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미 감정평가사들의 ‘가짜 시세’로 피해를 본 세입자들은 시세 자체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전세가율을 낮추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며 “협회가 추천한 감정평가사 감정을 한다고 해도 믿지 못한다. 피해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명확한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HUG의 '안심전세앱' 자료사진 ⓒ국토교통부 제공

 

강제력 없이 ‘안심전세앱’ 정보만 늘린다는 정부


정부는 또 HUG의 ‘안심전세앱’을 통해 계약 단계별로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해당 앱을 업그레이드해 ▲신축빌라 등의 시세 ▲악성 임대인 정보 ▲세금체납 정보 ▲전세가율 및 경매낙찰률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오는 4월부터 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심사시 확정일자 확인 후 대출을 진행하기로 했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확정일자 효력이 발생하기 전 담보대출을 받아 대출 근저당이 전세보증금보다 우선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안심전세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최경호 소장은 “앱을 통해 시세를 알려준다고 하는데, 요즘 같은 부동산 하락시기 빠르게 변하는 집값을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며 “전세사기 피해가 극심한 상황에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안심전세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운영 계획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제력이 없는 한 ‘안심전세앱’이 실효성을 갖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은영 소장은 “기존의 ‘안심전세앱’에서 제공되는 정보만 늘렸을 뿐 여전히 강제력이 없다”며 “집주인의 인증 과정을 거쳐야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집주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꼬집었다.

안상미 위원장은 “집을 구하는 세입자는 공인중개사와 함께 집을 보러 다닌다. 집주인을 만나는 건 마지막에 계약서를 쓸 때뿐”이라며 “집주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건 계약서를 쓸 때야 안심전세앱을 확인하라는 것이냐”고 황당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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