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체류 중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일(현지시각) 파리경영대학원 앞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 46조 1항은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입니다. 헌법에 이런 내용까지 있는 줄 몰랐던 분도 많을 것입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국회의원은 이렇게 선서하고 임기를 시작합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국회의원은 청렴하게 살아야 할 헌법상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준수하겠다고 선서까지 했습니다. 청렴하게 살지 않았다면 헌법을 어긴 것입니다.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전체 규모와 세부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습니다.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송영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경선 캠프 총괄이었던 윤관석 의원, 그리고 이성만 의원,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 강래구 수자원공사 감사 등이 돈을 마련해서 몇몇 의원들과 위원장들에게 돌린 것 같습니다. 이런 행위가 송영길 당시 후보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지시가 아니라고 해도 송영길 후보가 알았는지 몰랐는지 등은 앞으로 규명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매표의 상징 ‘전당대회 돈봉투’
송영길 전 대표는 1963년생으로 올해 60살입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습니다. 16·17·18·20·21대 국회의원과 인천시장을 했습니다. 정치를 꽤 오래 했는데 지금까지 금품 관련 비리에 휘말린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번에 터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했다고 해도 어쨌든 송영길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한 행위입니다. 법적 책임은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 책임까지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돈봉투 사건은 송영길 전 대표와 주변 인물 몇 사람의 책임에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당은 1955년에 창당한 옛 민주당에 뿌리를 둔 정당입니다.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 운동, 선거에 의한 최초의 정권교체, 외환위기 극복, 남북정상회담 등 빛나는 역사를 가진 정당입니다. 그런 정당의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부패와 매표를 상징하는 돈봉투를 돌리고 또 받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민주당 당원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송영길 사건’이 아니라 ‘민주당 사건’인 것입니다.
민심을 읽는 ‘촉’이 뛰어난 이재명 대표가 지난 17일 아침 최고위원회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조치를 다 할 것”이라고 약속한 것도 사태의 위중함을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민주당이 이번 사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몽땅 물러나야 할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심각하게 보냐고요? 전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2012년에 불거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2008년 7·3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친이명박계의 지원을 받은 박희태 의원이 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2012년 1월 고승덕 의원이 “2008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30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가 돌려준 일이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언론의 추가 취재로 파장이 커지자 한나라당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박희태 국회의장과 경선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었던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사퇴했습니다. 검찰은 두 사람을 기소했고, 법원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김효재 전 수석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처음에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지만, 나중에는 “집안 잔치 분위기 때문에 약간 법의 범위를 벗어났던 관행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전당대회 돈봉투는 관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그런 관행을 용납하지 않았고, 법원도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문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 사건 범행은 대의제 민주주의 및 정당제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것으로서, 피고인들과 같은 지위의 사람들이 큰 죄의식 없이 법을 무시하고 돈으로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침해해온 관행에 경종을 울릴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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