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대통령들, '제사상의 대추·밤'을 올려놓은 사람들
1권은 대통령 5명을 다룬다. 읽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그들은 하나같이 헌법을 사랑했다. 다만 사랑의 방식이 독특했다. 이승만(1875~1965)은 헌법을 두 번 갈아엎으며 "내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고 했고, 박정희(1917~1979)는 스스로 헌법을 정지시키며 유신을 "가장 좋은 제도"라 불렀다. 전두환(1931~2021)은 계엄을 확대해 광주에서 시민을 학살하고도 훗날 "기억이 없다"고 했다. 최규하(1919~2006)는 모든 반헌법 행위 앞에서 서명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그의 반헌법 행위였다. 노태우(1932~2021)는 "나는 보통사람"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통령이 돼 4100억 원의 비자금을 쌓았다. 참으로 보통이 아닌 보통사람이었다.
민복기(1913~2007)가 퇴임 후 스스로 털어놓은 말이 1권 어딘가에서 메아리친다. 박정희가 사법부를 "제사상의 대추·밤처럼 구색을 맞추기 위해" 올려놓는 것으로 여겼다고. 10년간 대추·밤 노릇을 한 민복기의 솔직함에 박수를 쳐야 할지, 아니면 그 솔직함에 담긴 뻔뻔함에 혀를 차야 할지 모르겠다.
2권: 법원, 사법부가 스스로를 팔았다
2권은 대법원장 3인과 정치판사 27명을 다룬다. 민복기, 유태흥(1919~2005), 양승태. 이 세 사람은 각각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1952~ ) 정권의 사법부 수장이었다. 한국 현대사 3대 독재 및 권위주의 정권의 사법부 수장 세 명이 나란히 올라오는 셈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치고는 너무 촘촘하다.
양승태는 상고법원이라는 조직의 이기적인 목표를 위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재판 결과와 노동조합의 운명을 정권과 거래했다. 법원행정처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된 문건에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의 기대효과로 보수세력을 확실한 우군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내용이 버젓이 담겨 있었다.
최고 사법기관이 스스로 정치 브로커임을 고백한 문건이었다.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상고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원에 상고하는 장면, 그 아이러니를 뭐라 불러야 할까.
2권에 수록된 27명의 정치판사들이 내린 판결들은 훗날 대부분 재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그러나 그 판결들 사이에서 수십 년을 살아낸 사람들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재심 무죄와 억울한 세월을 맞바꾸는 것을 정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3·4권: 검찰, '법비(法匪) 49인전'
3권과 4권은 정치검사 49명을 다룬다. 김기춘(1939~ ), 고영주(1949~ ), 최병국(1942~ ), 안강민(1941~ ) 등. 이들의 공통직업은 검사이고, 공통특기는 법의 언어로 국가폭력을 포장하는 것이었다. 고문을 직접 가하진 않았지만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을 공소장으로 번역했다. 간첩을 직접 만들지 않았지만 조작된 간첩을 법정에 세웠다.
이 가운데 최병국은 부림사건 피의자가 "전두환 정권은 군사파쇼다"라고 말하자 "나는 파쇼가 좋은데"라고 대꾸한 인물이다. 이 솔직함은 어디서 나왔을까. 고영주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공언했고 법원은 이를 "공적 인물에 대한 의견 표명"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그는 스스로를 "법원에서도 인정한 공산주의자 감별사"라 불렀다. 유머 감각만큼은 발군이다. 다만 그 유머의 피해자들은 웃지 않고 있을 뿐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49명 중 상당수가 민주화 이후에도 의원직을 얻고 법사위원장이 되고 스타 검사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독재에 부역한 법비들이 민주화의 과실을 함께 나눠 먹은 것이다. 3·4권이 독자에게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은 이것이다. 과거의 반헌법 행위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민주화의 열매를 누렸다면, 과연 민주화는 완성된 것인가.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