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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김녕마을과 해양 신재생에너지 개발자들의 '아름다운 만남'

"블랙아웃-방사능 공포? 우리 동네 발전소는 달라요"

[현장보고] 제주 김녕마을과 해양 신재생에너지 개발자들의 '아름다운 만남'

13.09.16 08:09l최종 업데이트 13.09.16 08:28l
김시연(sta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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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제주 구좌읍 김녕리 성세기 해변 뒤편으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주글로벌연구센터 일대 풍력 발전기들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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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를 연상시키는 대형 풍력 발전기들과 집집마다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 아름답기로 소문난 제주 북동쪽 김녕마을 성세기 해변에서 바라본 이국적 풍경이다. 이 마을을 관통하는 제주올레길 20코스에 지난 14일 새로운 상징이 들어섰다. 풍력, 염분차 발전, 바이오매스 등 해양 신재생에너지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공공예술작품들이 그것이다. 과연 이 작품들엔 어떤 비밀이 담겨 있을까?

신재생에너지 개발자들이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법

건축과 예술, 과학을 결합한 공공예술 페스티벌인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 2013' 제주 전시회 개막에 앞서 지난 12일 제주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주글로벌연구센터(JGRC)를 찾았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원장 황주호)은 원자력을 제외한 각종 에너지 기술을 연구해온 정부출연연구소로 대전 본원 외에 JGRC에서 해양 신재생에너지를 연구하고 있다. 원자력, 화력 등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가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밀양 송전탑 갈등 등 환경오염과 사회적 갈등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에 태양력,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지구 80%를 차지하는 바다에서 새로운 에너지 원천을 찾으려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파력, 조력 발전에 이어 해양 염분차 발전 등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 실험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잠재량이 거의 무한대고 10~20년 뒤에는 상용화가 가능해 폐쇄 기로에 선 원전을 대체할 날로 머지않다.

지난 2011년 9월 김녕리에 둥지를 튼 제주글로벌연구센터에서에선 풍력 발전을 비롯해 태양에너지, 해양 염분차발전, 해양 조류를 이용한 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 연구가 한창이다. 마침 취재진이 센터를 찾은 지난 12일 제주시 그랜드호텔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해양 신재생에너지 워크숍이 열리고 있었다.

외국 강연자들 가운데는 네덜란드 레드스택(Redstack)사 피에테르 하크(Pieter hack) 대표도 포함돼 있었다. 레드스택은 올해 말을 목표로 해양 염분차 발전 기술을 활용한 50kW(킬로와트)급 실험용 발전소를 짓고 있고 2018년 이후 원전 1기(1000MW) 1/5에 해당하는 200MW(메가와트)급 상용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레드스택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양현경 선임연구원 연구팀이다.

해양 염분차 발전이란 바닷물과 강물(민물) 사이의 염분 농도 차이를 이용해 전기를 얻는 기술이다. 바닷물과 민물 사이에 물 분자만 통과할 수 있는 분리막을 설치하면 염도를 맞추려고 민물이 바닷물쪽으로 흐르는 삼투압 현상이 발생한다. 이때 수위가 높아진 바닷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얻는 게 '압력 지연 삼투(PRO)' 방식이다.

또 바닷물에서 식수를 뽑아내는 해수담수화 기술(전기 투석)과 반대로 이온의 흐름을 이용해 터빈 없이 직접 전기를 뽑아내는 기술이 바로 레드스택과 양현경 연구팀이 개발 중인 '역전기투석(RED)'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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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양현경 박사가 12일 제주 김녕 글로벌연구센터에서 해양염분차발전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위). 아래는 14일 제주 김녕리에서 열리는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 2013' 에 개막에 앞서 설치 작업 중인 '탕'. 양 박사가 예술작가, 건축가들과 함께 염분차발전 원리를 예술 작품에 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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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염분차 발전은 전세계 잠재량이 우리나라 최대전력 수요(2012년 6월 기준 0.073TW)의 35배인 2.6TW(테라와트)에 이르고 에너지 밀도는 240m 높이 수력발전용 댐과 맞먹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5대 강이 바닷물과 만나 입지 조건도 좋다. 무엇보다 시간이나 날씨 등에 상관없이 언제든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고 이산화탄소 같은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양현경 박사는 "내년엔 32인치 TV를 구동할 수 있는 100W급 데모 모델을 만들 예정이고 2015년까지 50kW 연구용 발전소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지난 2년 사이 레드스택 기술을 거의 따라잡았고 곧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염분차 발전을 이용하면 물 1톤으로 초당 약 2MW 정도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염분 농도가 20%에 이르는 사해를 이용하면 전력량이 5.9배 높은 11.7MW에 이른다. 심야시간대에 남는 전력을 이용해 해수담수화 과정을 통해 고농도 염수를 저장했 뒀다 대낮 피크시간대에 발전해 전기를 얻으면 예비전력 부족에 따른 '블랙아웃' 현상도 예방할 수 있다. 야간에 물을 끌어 올렸다 낮 시간에 방류해 전기를 얻는 양수 발전과 비슷하지만 입지조건과 환경오염에서 더 유리하다.

"대형 건물에 물탱크만 있으면 어디든 발전 가능"

양 연구원은 "양수발전은 주변에 반드시 강이 있어야 해서 입지 선정에 어려움이 있지만 염분차 발전은 건물 지하나 옥상에 물탱크 2개만 있으면 돼 어디든 설치할 수 있고 다시 방류할 필요가 없어 환경 문제가 없다"면서 "50kW급 발전에 1시간당 200톤 이상의 물이 필요하지만 고농축 염수를 사용하면 물탱크 크기를 1/5에서 1/1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이 상용화돼 서울과 같은 도심에도 발전소가 들어서면 밀양 송전탑과 같은 초고압 송전을 둘러싼 갈등도 해소될 수 있다.

같은 센터에 있는 김동국 박사 연구팀은 최근 '흐름 전극'을 이용한 축전식 탈염 해수 담수화 기술(FCDi)을 세계에서 처음 개발했다. '축전식 탈염'(CDi)이란 바닷물이 다공성 전극을 통과할 때 염이온을 제거해 먹는 물로 만드는 기술인데, 전극을 흐르게 해 효율성도 높이고 탈염시 발생하는 전기에너지 절반 정도를 회수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염분차발전이나 FCDi 해수담수화 기술이 아직 실험실 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해상 풍력발전 기술은 이미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에 근접한 상태다. 현재 제주에는 연간 700가구 이상이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2MW급 해상풍력발전기 2기가 설치돼 있다. 이는 수심 15~20m 정도 되는 바다 속에 경사형 2단 자켓을 먼저 설치하고 그 위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한 발 더 나아가 물에 띄울 수 있게 해 수심 40~50m 이상 깊은 바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부유식 해상풍력발전기도 KAIST와 함께 개발하고 있다.

장문석 JGRC 풍력연구실장은 "육상 풍력은 바람 효율이 좋은 1등급 지역은 거의 포화 상태고 민가에 가까워지면 민원이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해상 풍력은 해안가에서 30km 이상 떨어져 대단위로 건설해도 경제성이 있고 육상과 달리 장애물이 없어 바람이 균질하고 강한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경남호 박사 연구팀은 앞으로 국내에 10GW 용량의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면 국내 총전력 수요의 5% 정도를 감당해 매년 38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처음엔 주민들도 반대했지만... 이국적 풍경도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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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구좌읍 월정 앞바다에 해상 풍력 발전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경남호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STX중공업, 두산중공업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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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단순한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거둔 성과를 예술 작품을 통해 주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과 함께 진행하는 '자연과 미디어 에뉴알레 2013'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다. 올레길 20코스 곳곳에선 JGRC 연구자들과 예술가, 건축가들이 공동 작업한 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양현경 박사가 참여한 '탕'이란 작품은 해양 염분차 발전을, 풍력연구실 곽성조 박사가 참여한 '풍루'와 유체역학 연구자인 김호영 박사가 참여한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는 풍력발전 기술을 예술로 형상화했고, 김대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참여한 '사랑당: 푸른빛의 전설'은 해양 바이오 에너지 가운데 하나인 발광 미세조류를 제주 민속신앙인 '당'과 결합했다.

지난 13일 취재진과 함께 올레길을 둘러본 박윤보 김녕리 이장은 대형 프로펠러가 도는 풍력발전기를 가리키며 "풍력발전이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땐 소음이 심해 주민들 반대도 심했다"면서도 "저 정도면 이국적 풍경도 나오고 괜찮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굳이 예술 작품이 아니더라도 친환경-신재생에너지는 지역 주민들과 융합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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