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박근혜 “국민적 저항”, 국민을 모르는 소리

 
야당을 북한 다루듯 하는 대통령, 갈 데까지 가보자?
 
육근성 | 2013-09-18 09:53: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박 대통령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국민적 저항’ 운운하며 서로 치고 받았다. 3자회담 직후에 나온 격한 반응이다. 정치권의 못된 버릇인 국민을 싸움판의 도구로 끌어들이는 수법을 택한 것이다.

박근혜 VS 김한길, 서로 ‘국민적 저항’

박 대통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야당이 장외투쟁을 고집하면서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힐 것이며 그 책임 또한 야당이 져야할 것”이라며 야당을 맹비난했다.

김한길 대표가 민주당 시도지사들과 만나 “민주주의의 밤이 더 길어질 것 같다. 보름달은 차오르는데 민주주의의 밤은 길어지고 민생의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이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이라고 말하자 이에 박 대통령이 발끈한 것이다.

대통령이 야당을 이렇게 직접 수위를 높여 비난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여당 대표나 원내대표 정도가 할 수 있는 대야 비난을 대통령이 직접 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상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표직까지 겸직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김한길 대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표’의 작심발언이 있자마자 서울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의 불통정치가 계속되고 민주주의 회복을 거부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역공을 날렸다.

박근혜의 ‘민주-민생’, 김한길과 크게 다르다

상대에게 ‘국민적 저항’이라는 매질이 가해질 거라고 주장한 두 사람 모두 민주주의와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박근혜의 민주주의와 민생’은 김한길의 그것과 천양지차였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 문제로 장기간 장외투쟁 하는 것이 국민이 원하는 민의인지 동의할 수 없다”며 “민주주의는 국회가 국민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장외투쟁은 국민이 원하는 게 아니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진상규명 또한 국민의 ‘민의’에서 멀리 있는 것처럼 말했다. 국정원 사건을 크게 우려하는 국민들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발언이다.

야당의 책무와 역할 포기하라고 우기는 대통령

민주주의의 개념 또한 ‘박근혜식 불통’의 프레임에 넣어 해석했다. 국가정보기관이 부정선거와 불법 정치개입으로 헌정질서를 흔든 사건은 못 본 척 눈을 감고, 단지 청와대가 원하는 법안 통과에 발 벗고 나서는 게 국회의 역할이고, 이게 국민을 위하는 의회민주주의라는 황당한 주장을 편 것이다.

같은 편이니 여당은 ‘박근혜 당선’과 연관된 국정원의 불의를 눈감아 줄 수 있다손 치자. 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는 게 야당이다. 여권의 중차대한 잘못을 강하게 지적하고 바로잡는 게 야당 본연의 역할이다. 여당의 일방통행을 제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야당이라는 기본원칙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 대통령이 청와대를 지키고 있다는 게 비극이다.

박 대통령에게 야당이란 ‘없어져야 할 마땅할 루저’이거나 ‘꿀 먹은 벙어리’로 남아있어야만 하는 존재란 말인가.

국민 100%의 대통령 포기하고 52% 속에 갇히다

현 사태를 여야의 갈등으로 보는 건 속 좁은 시각이다. 박 대통령이 야당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몽니를 부리면서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대통령이 갈등을 풀어나가야 하는 책무를 무시한 채 직접 야당을 향해 최고 수위의 비난을 퍼부은 행위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과 생각을 달리하는 48%의 국민들을 철저하게 무시한 거나 다름없다. 국민 100%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더니 7개월도 안 돼 52%만 바라보고 그들의 보호막에 의지해 운신하려는 ‘박근혜의 민낯’을 봐야 한다는 게 답답할 뿐이다.

‘김한길의 민주주의와 민생’은 박 대통령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 김 대표는 “민생이 힘겨운 것은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민생은 민주주의를 전제로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야당 탓으로 책임을 떠넘기기에는 오늘의 민생이 너무 고단하고 힘들다”고 전제한 뒤 “민주주의를 회복해서 미래로 가느냐, 민주주의 없는 어두운 과거로 돌아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며 “민주주의의 밤은 길어지고 민생의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18대 대통령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어야

권력을 독점한 세력의 편의에 의해 민생이 재단 돼서는 결코 안 되며, 민주주의라는 진리적·보편적 가치에 의해 민생이 다뤄져야 한다는 게 민주당과 김 대표의 생각인 것이다.

3자회담이 청와대의 ‘정치쇼’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직후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이 ‘국가정보기관이 대선이나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잘못됐다, 대통령이 사과한다' 왜 이 한마디를 못하는 것인지 지금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탄식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다’는 식으로 국정원 사태와 선긋기를 하는 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18대 대통령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임기에만 국한된 대통령이 아니라 ‘역사적 대통령’으로 처신하는 게 대통령의 본분이다.

서로 ‘국민적 저항’을 외치며 박 대통령과 야당이 적처럼 대치하고 있다. 쉽게 끝나지 않을 싸움으로 보인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보는 시각은 천양지차인데다 민주주의, 민생, 국민 등에 대한 해석도 양 진영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야당을 북한 다루듯 하는 대통령, 갈 데까지 가보자?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이 대통령을 상대로 정책이나 현안을 끌고 나가려는 모습에서 벗어나 국회로 돌아와 여당과 모든 것을 논의하기 바란다”라며 야당의 지위를 대통령 아래로 끌어내렸다. 야당은 대통령의 상대가 아니란다. 비민주적인 주장이다.

이에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의 불통을 비난하며 “지금 지지율에 도취해 오만과 독선을 고집하면 그 지지율은 머지않아 물거품처럼 꺼져버릴 수 있음을 기억하라”고 경고했다.

박 대통령은 ‘국민적 저항’이 야당을 강타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김 대표는 ‘국민적 저항’이 박 대통령을 향할 거라고 주장한다.

중차대한 의혹 덮기 어려워, 민주당 승리로 끝날 듯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거라고 말하며 박 대통령이 내세운 논리는 ‘야당이 명분 없는 장외투쟁을 이어가며 국회를 포기했다’는 것인 반면, 김 대표는 ‘국정원 대선개입과 검찰총장 흔들기를 덮으려는 박 대통령과 여당의 꼼수가 저항을 몰고 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어느 쪽 명분이 국민에게 더 설득력이 있을까. 양쪽 모두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될 테지만 그 강도는 크게 다를 것으로 판단된다. 피부와 와 닿지도 않는 ‘민생 얘기’로 국정원 대선개입과 NLL 대화록 불법유출, 검찰총장 찍어 내기 의혹 등을 죄다 덮을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민주당도 민생을 외면한다는 국민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정원 부정선거 진상규명과 검찰 흔들기, 민주주의 후퇴 등을 받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국민적 저항 게임’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머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