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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美 총기 난사, 근본원인은?

 

[편집국에서]<7>'정신이상자' 탓으로 돌리는 한 비극은 반복된다

이승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9-19 오전 6:46:17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경제수도 뉴욕을 강타한 테러 공격의 공포가 트라우마로 뇌리에 박힌 미국인들이 9.11 테러 12년 주년이 지난 며칠 뒤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총성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9.11 테러처럼 출근 시간 대 '수도 한복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장소만 경제수도인 뉴욕에서 미국의 공식 수도인 워싱턴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사건 장소는 미 의회 의사당과 백악관이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며 해군 시설 내에서 벌어졌다.

미국 본토의 수도에서, 그것도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군시설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은 "또 수도를 공격한 알카에다의 테러냐"는 공포감에 사로잡히기에 충분했다.
 

▲ '워싱턴 해군 시설 총기 난사 사건' 이 벌어지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또다시 총기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미국인의 정신상태가 변하지 않는 한 실질적인 총기규제안이 입법화되기는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을 무시하기 힘들다. ⓒAP=연합


몇 달마다 충격적인 총기 사건에도 '규제 불능'

치안당국은 "테러와 연결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강조했으나, 워싱턴DC가 지역구인 엘레노어 홈즈 노턴 하원의원은 "9.11 테러 이후 이런 날은 없었다"고 충격을 표현했다.

사실 치안당국도 사건 초기에 테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시내 교통을 전면 차단하는 한편, 워싱턴DC 레이건공항의 항공기 이륙을 중단시킬 정도로 비상경계 조치를 취했다.

현장에서 총기를 난사했던 용의자는 현장에서 경찰과의 교전 중 사망했고, 현장에서 무기를 가지고 도주했다는 또다른 용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군 하청업체 직원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범행동기는 명확하지 않다. 용의자 아론 알렉시스(34)가 분노조절 장애가 있다는 점을 들어 우발적인 총기난사 사건으로 단순하게 정리하는 보도도 있었다.

목격자들은 알렉시스가 거의 조준사격으로 12명을 살해하고 8명을 부상케했다고 증언하고, 다른 사람의 신분증과 AR-15를 비롯 권총과 반자동권총 등 모두 세 정의 총기가 미리 준비하는 등 이번 범행을 치밀하게 기획한 정황이 발견됐다. 그래서 "범행동기가 오리무중"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범행동기보다 더 '오리무중'한 것이 총기규제를 둘러싼 미국인의 정신상태다. 몇달마다 충격적인 총기 사건을 겪고, '전쟁국가'로 중동 등지에 많은 반미 세력을 양산해 결국 본토 테러까지 당한 트라우마로 볼 때 미국인들이 총기 규제에 적극 찬성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총기 사건은 충동적인 경우도 많지만, '계획적인 공격' 형태를 띄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범행 동기를 그저 '정신이상자의 1회적 사건'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만 할 수는 없다.

'워싱턴 해군시설 총기 사건'도 바로 1년전 미국에서 총기 규제 논쟁을 촉발시켰던 '콜로라도 총기난사 사건'의 재연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들 집단 살해돼도, 총기 규제는 '난공불락'

미국에서 총기 규제는 이런 사건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지난해 12월 '샌디훅 총기 난사 사건'으로도 난공불락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샌디훅 사건'을 계기로 총기규제를 '3대 역점 정책'에 포함시켜 총기 규제 입법화에 나섰다. 하지만 수십명의 초등학교 1~2학년생마저 조준 사격으로 죽임을 당해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분노의 힘도 총기 규제안을 의회의 문턱도 넘기는 데 역부족이었고, 결국 법안은 좌초됐다.

이번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규제 입법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스페인의 텔레문도TV와 인터뷰에서 "미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상식적인 총기 개혁안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면서 "서너달마다 끔찍한 총기난사를 겪는 게 의례적인 일이 됐다는 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의회가 나서야 할 부분"이라면서 "나는 내 권한 안에서 조치를 취했고 다음에는 의회가 나서 움직여야 한다"고 의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하지만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조차 의회에서 총기 규제 법안 통과에 필요한 지지표가 충분하지 못한 현실을 인정했다.

"총기소지는 기본권이라는 미국인들의 신앙"

이러한 미국인의 정신상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콜로라도 총기 난사 사건 당시 미국에서 총기규제 논의가 다시 불거졌을 때 "총기 규제는 늦었다"는 칼럼을 통해 미국에서 총기 규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가망이 없으며, 총기 난사 사건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어떤 근거로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을까? 두 가지가 근거였다. 첫째, 미국인들은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한 수정헌법 제2조를 총기 소지와 휴대를 '생명이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인간 기본권'으로 규정한 근거로 보는 '신앙'을 갖고 있다.

총기소유의 자유가 천부인권이라는 개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지만, 미국사회에 이런 '신앙'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더욱 현실적인 이유다. 규제를 하기에는 너무 많은 총기를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칼럼은 "이제 미국은 정신이상자들도 쉽게 반자동 소총에 접근할 수 있고 때로는 그것을 이용해 잔혹한 행위를 저지를 수도 있는 증오와 냉소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더 많은 잔혹한 사건들을 보게 될 것이며, 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적으로 없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렸다.

1년이 넘도록 미국에서 총기 규제 법안은 무력화되고, 총기 사건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볼 때, 비극적인 총기 사건들의 근본원인은 '아론 알렉시스' 같은 정신이상자보다 미국의 정신상태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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