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정부는 재난안전에 만전을 기울이겠다고 했고, 장마 직전에는 홍수로부터 시민의 생명안전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 한 달 만에 44명 사망, 6명 실종의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는 것은 정부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천 산사태나 오송 지하차도의 참사는 현재 재난관리 체계의 문제들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예천의 경우에는 첫 산사태 신고가 접수된 건 새벽 0시 58분이지만, 예천군이 첫 대피 문자를 보낸 건 산사태가 발생한 지 1시간 가까이 지난 1시 47분이었다. 그마저도 '유사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지극히 형식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이 전부였다.
▲ 도보수색 시작한 해양경찰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지난 17일 새벽 해양경찰 대원들이 도보수색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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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생존자들 또한 다른 생존자들의 도움을 받아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문제점들도 밝혀지고 있다. 인근 교량 공사의 편의를 위해 제방 일부를 허물고 허술하게 쌓은 임시제방은 주민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홍수에 대한 아무런 고려도 없었다. 홍수통제소의 경고에도 권한을 가진 정부 당국은 안일하게 대처해 교통통제를 할 수 있었던 여러 차례의 기회도 지나쳤다. 관할 기관들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유가족들에게는 필요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으며, 피해는 진행 중이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겠다고 경찰은 전담수사본부를 꾸렸고 국토교통부장관은 철저한 조사를 언급했다. 언론 또한 관련자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적인 책임소재와 함께 '왜 그렇게 재난관리 행정이 진행됐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정부기관간 협업,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다
▲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상황실에서 호우 대처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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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호우 기록들만 보더라도 오송 지하차도와 예천 산사태 모두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별다른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재난 취약 지역의 발굴과 정리에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하천의 범람 위험에도 교통통제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재난에 대비한 구체적인 대응 계획이 없었거나 미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홍수와 산사태 위험 지도를 작성했지만, 재난에 대비한 실제 현장의 대응 계획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정부 시스템의 오류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기관들간의 책임 떠넘기기 또한 재난 대응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러한 재난관리 시스템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었지만 이번 정부뿐 아니라 지난 정부에서도 근본적인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이뤄진 적은 없었다. 현재 우리의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 등 시스템을 미국 등 재난관리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각각의 정부 기관들의 협업과 조정 및 지원 체계가 명확하지 않은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현행법은 각 정부 주체들에게 폭넓은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행 시스템에서는 어느 기관이라도 찾아서 적극적으로 일들을 하면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지만, 이번처럼 관할권을 해석하게 되면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재난 대응 체계의 한계에 대해 지난 정부에서는 청와대와 중앙정부의 지휘 및 총괄적 조정 기능을 강조해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부에선 자치단체의 실행 기능을 강조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각 정부 기관들간의 협업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태원 참사의 문제가 반복된 것으로 현재의 재난 대응 체계에 대한 재설계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번 장마의 피해와 재난관리 시스템의 문제들을 볼 때, 국지성 폭우로 인한 침수나 산사태를 비껴간 지역 어디라도 예천 산사태와 오송 지하차도와 유사한 피해를 겪고 재난관리 시스템의 오류가 반복됐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당장 다가오는 주말의 호우나 여름 태풍에서 또 다른 오송과 예천의 참사가 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들다.
현재 상황에서 확실한 대처 방식은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를 찾아 산사태 피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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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마의 피해로 볼 때, 현재 장마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확실한 대처 방식은 '재난대응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준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즉 각각의 정부 기관들이나 자치단체에서는 '현재의 기록적 폭우가 자신들의 관할 지역에 쏟아진다'는 가정 하에 '자신 이외에 다른 기관들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위험 지역이 어디인가를 예상하고, 지역 주민들에겐 어떻게 알리고 어느 순간에 누가 나가서 통제할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 놓는 것이다.
오송 지하차도의 문제는 단순히 재난시 진입금지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재난관리 시스템의 오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IT 기술을 활용하는 것으로는 막을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는 재난대응 시스템을 비롯해 재난 위험의 파악과 대비 계획 등 우리의 재난관리 시스템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인정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희천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연구소장은 재난 거버넌스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책임교수, 사회적참사피해조사위원회에서 피해지원국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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