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교는 어렵다. 루빅스 큐브와 같다. 한 면을 맞추면 다른 면이 헝클어진다. 바둑과도 같다. 한 쪽에서의 전투는 판 전체로 번진다. 중동 정세는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고, 에너지 문제는 러시아 변수로 이어진다. 러시아를 생각하면 나토를 빼놓을 수 없고, 나토에 가까워지면 중국과 러시아가 예민해진다. 그 파장은 다시 조선의 계산법에도 영향을 준다. 그리고 이 모든 선택의 바닥에 한미동맹이 놓여 있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 한국의 많은 외교 현안들은 따로 풀어낼 수 없도록 서로 얽혀져 있다. 여러 항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복잡한 다차 방정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6월 나토 정상회의에 불참을 결정한 이유도 이 방정식으로 풀어야 한다. 윤석열이 3년을 연속해서 참석해온 회의였다. 대통령실이 내세운 공식적인 이유는 중동의 급박한 정세였다.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유가와 금융시장이 출렁이던 시점이었고 이 대통령은 중동 상황을 “매우 긴급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실제 판단은 훨씬 복합적인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전 정부의 적대정책을 지속한다는 의미를 던진다. 조선에도 호의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 없다.
중동 전쟁은 우리의 사활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는 곧 경제적 비상사태다. 중동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정부는 대체 공급선 확보에 신경을 곤두세워 왔다. 중동의 포성은 한국의 물가와 환율, 산업 원가로 직결되고 곧바로 민생 문제로 이어진다. 당시 정부가 나토 회의장보다 중동 상황을 더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작년의 위기상황은 해를 달리해 다시 우리에게 닥쳤다. 이번에는 전 세계에 메가톤급 충격이 실제로 가해지고 있다.
전쟁 과정에서 한미동맹과 현실의 상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3월 미국이 동맹국들에 호르무즈 해협으로 군함파견을 요구했을 때 한국 정부는 ‘신중 검토’와 ‘긴밀 협의’로 일관했다. 한국 정부의 딜레마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미국과의 동맹은 중요하지만 미국의 군사적 요구에 기계적으로 응하다가는 우리의 안위가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요구를 즉각 거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5월 4일 ‘프로젝트 프리덤’을 전개하면서 다시금 한국의 군함 파견을 요구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한국의 화물선이 피격되었다.
트럼프발 나토 탈퇴 논의는 이 방정식을 한층 더 난해하게 만든다. 미국의 나토 탈퇴가 법적으로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조약상 탈퇴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대통령이 마음먹는다고 바로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 탈퇴 이전에 탈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벌써 동맹의 의미가 바뀐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이미 독일 주둔 미군 5천 명 감축을 지시해 지금 실행 단계에 있다. 현재 나토는 공동의 가치보다 비용 분담과 대가를 먼저 따지는 관계로 옮아가고 있다.
변화는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 국방부가 2026년 국가방위전략(NDS)에서 한국에 조선 억제의 주된 책임을 지우고 미국은 역내 분쟁으로 주안점을 이동시키겠다고 밝힌 대목은 비슷한 압박이 한반도에도 이미 가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나토의 변모는 남의 집 불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앞으로 감수해야 할 동맹의 가격이 어떻게 청구될지를 미리 보여주는 장면이다. ‘프로젝트 프리덤’ 동참을 거부하는 순간 미국은 주한 미군의 감축도 거론하기 시작할 것이다. 겁먹을 것은 없다. 우리는 동맹의 비용과 편익을 냉정히 계산하기 시작해야 한다.
러시아 변수 역시 다시 따져봐야 한다. 당장 러시아와 본격적인 에너지 협력을 재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제재와 국제정치적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 대부분을 바다 건너 들여오는 한국에게 공급선 다변화는 생존의 문제다. 중동 위기가 장기화될수록 러시아를 완전히 지워버린 에너지 전략은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토 문제는 한미동맹의 연장선으로 다룰 사안이 아니다. 나토에 밀착할수록 러시아와의 외교 공간은 좁아지고, 이는 결국 에너지 안보의 선택지 축소로 이어진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조선 문제를 국제화하고 한미동맹의 외연을 넓히겠다는 목적으로 나토에 접근했다. 북러 군사협력을 유럽 안보와 연결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국제무대로 끌어올렸다. 나토를 한미동맹의 범위 확장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도였고 이는 물론 미국의 의중을 충실히 따른 행동의 결과였다. 나토는 인도·태평양 안보를 유럽과 연결하고 중국을 러시아의 “결정적 조력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나토 옆에 서는 것은 베이징과 모스크바가 보기에 한국이 미국 주도 진영 정치에 더 깊숙이 편입됐다는 신호다.
조선의 ‘중차대한’ 결심이 이 대목에서 탄생했다. 서울은 2023년 7월 나토 정상회의에 재차 참석한데 이어, 8월에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의 하노이 회담 결렬과 북중러 밀착, 그리고 한국의 9·19 군사합의 파기라는 배경 요인이 작용하면서 조선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재정의한 것이다. 여러 사안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윤정부의 나토 밀착이 평양으로 하여금 남한을 같은 민족이 아닌 ‘적대 진영의 일원’으로 못 박게 만든 촉발제가 되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동맹을 강화하는 것과 동맹의 외연을 무한정 넓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전자가 억지력이라면 후자는 스스로의 외교 공간을 좁히는 족쇄가 될 수 있다. 한미동맹을 강화한다고 해서 한반도가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욱 불안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한미동맹의 강화를 한반도 안정이라는 등식으로 자동인식 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교의 여러 연관주제들을 도외시하고 하나의 요소에만 시선을 집중해 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외교는 저차 방정식이 아니라 최소한 5차 이상의 고차방정식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연결된 현안을 각기 떼어 다루는 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중동에서는 경제와 에너지 안보를 우선하되 군사 개입에는 신중해야 하고, 나토와의 협력도 필요한 범위 안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는 하루 속히 관계정상화의 길로 나서야 한다. 한미동맹은 안보의 축으로 유지하되 남북관계의 공간까지 닫아버려서는 안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끝까지 조정해 내는 외교의 루빅스 큐브와 바둑의 전략적 해결 능력이다. 끝.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s://www.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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