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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르 쿠데타, 반프랑스 민중항쟁 촉발

  • 장창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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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3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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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연출되고 있다. 니제르 군부가 프랑스를 반대하는 민중의 시위를 엄호하며 반프랑스 투쟁을 함께 하고 있는 것. 미국을 반대하는 민중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경이 동원되었던 우리 사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지난 7월 26일 니제르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모하메드 바줌(Mohamed Bazoum) 대통령을 축출했다. 바줌은 현재 군부에 의해 구금된 것으로 전해진다.

    2021년 출범한 바줌 정권은 친프랑스 정책을 추진했다. 바줌 정권은 프랑스를 반대하는 니제르 민중의 시위를 진압하고, 더 많은 프랑스 군인을 ‘초청’함으로써 프랑스 꼭두각시라고 불려 왔던 인물이다.

    바줌을 추출하는 쿠데타의 주역은 바줌의 경호 대장 압두라흐마네 치아니(Abdourhmane tchiani)이다. 치아니는 바줌 축출 이후 국가수호위원회(CNSP) 의장이 되어 정권을 장악했다.

     

    니제르 민중, 쿠데타 지지하며 반프랑스 운동 활발히 전개

    쿠데타가 발생하자 반프랑스 운동을 전개했던 니제르 민중은 쿠데타 지지를 선언하며 반프랑스 투쟁을 적극화하고 있다. 쿠데타 발생 직후부터 수도 니아메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 앞에 모여 쿠데타를 지지하는 한편, 프랑스 국기를 불로 태우면서 “프랑스를 타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개최된 쿠데타 지지 시위. 한 참석자가 "프랑스 타도, CNSP 만세" 피켓을 들고 있다.

    8월에 접어들면서 이들의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다. 프랑스 대사관에 이어 시위대가 향한 곳은 프랑스 군대 기지였다. 니아메 외곽에 위치한 프랑스군 기지에 연일 수천 명의 인원이 모여들어 프랑스 군대 철수를 주장했다. 쿠데타 이후 사실상 반프랑스 민중항쟁이 진행되고 있는 셈.

    1904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던 니제르는 1960년에 독립했다. 비록 독립국이었지만, 니제르는 프랑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그 결과 오랫동안 친프랑스 세력이 니제르 정치를 주도했으며, 니제르 민중들은 반프랑스 운동을 오랫동안 전개해 왔다.

    우리 언론은 관심을 두지 않지만, 현지 상황을 보도하는 외신은 아래와 같은 니제르 민중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들은 우리 말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저항할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군이 니제르에 주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형제, 우리 아버지, 우리 아이들을 죽였다. 프랑스인들은 떠나야 한다."

    치아니 정권, 프랑스에 수출 금지령 내리고 프랑스 대사관 추방 결정

    그렇다면 쿠데타에 성공하여 집권한 치아니 군부 정권은 이들 니제르 민중에 어떤 조처를 했을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은 집권 군부가 반프랑스 민중항쟁을 탄압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치아나 정권은 그들을 탄압하지 않았고, 오히려 프랑스를 니제르에서 몰아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군부 쿠데타 성공 이후 치아니 정권이 처음 취한 조치는 축출된 바줌 정권이 프랑스와 체결한 모든 군사 협약을 파기한다는 선언이었다. 프랑스는 1,500명 정도의 군대를 니제르에 주둔시키고 있고, 그 기지에는 1,100명의 미군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치아니 정권의 요구는 표면적으로 프랑스 군대 철수이지만 이는 미군 철수가 수반되는 조치인 셈이다.

    ▲ 니제르 군부의 반프랑스 정책은 니제르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8월 6일 쿠데타의 주역 치아니가 지지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치아니 정권이 취한 다음 조치는 프랑스에 대한 수출 금지령이었다. 7월 31일 새로운 정권은 프랑스에 대한 우라늄과 금의 수출을 금지했다. 니제르는 세계 최대 우라늄과 금 생산국 중 하나이다. 프랑스는 니제르 경제를 장악하여 이들 광물 자원을 통제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우라늄, 석유, 금 등 우리나라의 모든 부를 착취했다”, “니제르 국민들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없는 것은 프랑스 때문”이라는 니제르 민중의 성토가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다.

    다음으로 취해진 조치는 니제르 주재 프랑스 대사관 추방령. 그러나 프랑스는 치아니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추방령을 거부했다. 결국 치아니 정권은 8월 27일 프랑스 대사관에 전기와 물 공급을 차단했다. 프랑스 대사관과 군사 기지에 물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람도 “주권 국민의 적”으로 취급할 것이라는 입장도 발표했다.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이 민중과 함께 반외세 자주화 투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반제 자주 세력과 제국주의와의 전쟁 위기 고조

    제국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지배에 부역했던 현지 정치세력을 앞세워 반외세 자주화 투쟁을 억압하고 진압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법칙이다. 프랑스와 미국은 치아니 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미 피력했고, 군사 개입을 시사했다. 과거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15개 나라로 구성된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역시 군대 동원을 언급하며, 니제르 쿠데타 세력을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 8월 3일 미 국무장관 블링컨은 축출된 바줌 정권의 복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미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국가수반들은 8월 10일 “연합대기군 배치”를 명령하고 자기 나라 참모총장들에게 “즉시 기동”을 지시했다. 연합군 지휘관들은 군사 기동을 위해 8월 12일 회의를 가질 예정이었다. 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회의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소속 일부 국가들이 군사 개입과 지원을 거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가나에서 대규모 반전 집회가 일어났고 가나 의회는 병력 배치를 반대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나이지리아에서도 반전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 의회에서 군대 배치 계획을 거부했으며, 나이지리아 시민들도 반전 시위에 나섰다. 나이지리아 반전 시위대는 “니제르인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니제르 침공은 서방 군의 음모(a plot by Western forces)”라고 주장했다.

    니제르 접경국들은 군사 개입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니제르와 함께 반제국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니제르 접경국들은 최근 쿠데타에 성공하여 새로운 정권이 등장한 나라들이다. 말리는 2020년에, 기니는 2021년에, 부르키나파소는 2022년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각각 외세 추종 정권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이들 삼국과 니제르는 서아프리카에서 강력한 ‘반제국주의 벨트’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 빨간색 표시 국가는 '반제 연대'를 구축하는 니제르, 말리, 기니, 부르키노파소. 회색 표시는 니제르 군사개입을 시도하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소속 국가.

    이들의 ‘반제 연대’는 상당히 견고해 보인다.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국가들이 군사 개입을 모색하자 니제르 군부 정권은 8월 25일 “대규모 기습을 피하기 위해” 니제르군에 “최대 경보”를 발령했다. 전쟁 불사를 천명한 셈이다.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정권은 “니제르에 대한 무력 개입을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니제르 실권자가 된 치아니는 부르키나파소와 말리의 군대가 나이지리아 영토에 개입할 수 있는 조치를 승인했다. 부르키나파소와 말리 군대가 나이지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니제르 영토를 통과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치아니는 8월 26일(현지시각) 토요일 “우리에 대한 공격이 가해지면 (상황은) 공원 산책이 아닐 것”이라며 격렬한 군사적 대응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했다.

    니제르 쿠데타로 촉발된 아프리카의 위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쿠데타 이전으로 돌리려고 하는 외세의 군사적 개입을 ‘반제국주의 벨트 역량’이 억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언제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아프리카 전쟁 위기는 서아프리카에서 제국주의 세력을 축출하려는 반외세 자주 세력과 제국주의 세력 간의 치열한 정치·군사적 대결의 성격을 띠면서 고조되고 있다.

     

    니제르 시위 현장에 나부끼는 러시아 국기와 인공기

    프랑스를 타도하자는 구호가 외쳐지는 시위 현장에 러시아 국기가 휘날리고, “푸틴 만세”라는 피켓이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아프리카를 침략했던 국가와 달리 아프리카에 우호적인 접근을 하는 러시아에 대한 호감이 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쏟아 왔다. 지난 7월 말 러시아는 아프리카 50여 개 국가와 정상회의를 진행한 바 있으며, 남아공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푸틴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식량 공급을 늘리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 니제르 시위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러시아 국기와 "푸틴 만세" 피켓.

    한편 최근 북 인공기가 니제르 시위 현장에서 펄럭이는 장면이 포착되어 눈길을 끌었다. 8월 28일 니제르 시위 현장을 소개하는 한 영상이 트윗에 올라왔다. 24초 분량의 이 영상 초반에 니제르인이 인공기를 들고 있는 장면이 스치듯 지나간다. 그 배경은 아직 확인되지 않지만, 미 제국주의에 맞서 정치·군사적 대결을 펼치고 있는 북에 대한 연대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 니제르 시위대가 들고 있는 북 인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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