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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파업 나선 철도노조, ‘수서행 KTX’와 무슨 상관이냐고요?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3/09/15 10:47
  • 수정일
    2023/09/15 10:4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들어간 14일 오전 부산역에 철도노조 파업에 따른 일부 열차 운행 중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14일 오전 9시 철도노동자들이 4년여 만에 파업에 나섰다. 18일 오전 9시까지 이뤄지는 이번 파업은 사실상 ‘경고 파업’ 성격을 띠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2차 총파업 가능성도 점쳐진다.

파업에 나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핵심 요구는 ‘수서행 KTX’다. 즉, 현재 서울역을 시·종착역으로 하는 KTX를 수서역에서도 달리게 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정부 정책을 명분으로 하는 파업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지만, ‘수서행 KTX’는 철도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철도노조는 반박한다. 더욱이 ‘수서행 KTX’는 철도 공공성과 시민들의 편리한 철도 이용과도 직결되는 문제라, “자신들의 요구 사항 관철만을 위한 파업”이라는 정부의 공세와도 큰 차이가 있다.

 

 

‘철도 민영화’ 우려 이어지는 이유
고속철도는 왜 KTX와 SRT로 나뉘었나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6월 1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인근에서 열린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에서 민영화를 통한 경쟁 체제 폐기와 고속철도 운영 통합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6.15 ⓒ민중의소리


우리나라 고속철도는 서울역을 기점으로 하는 KTX와 서울 강남구의 수서역을 기점으로 하는 SRT(수서 고속철도)로 나뉘어 운영 중이다. 이명박 정부가 수서 고속철도를 민간에 넘기려다 철도노조와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철도공사 출자회사’ 형태로 수서 고속철도 운영사(SR)를 설립해 SRT를 개통한 게 시초가 됐다. 당시 정부는 철도공사의 철도 독점 운영으로 적자 운영이 이어지고 있다며 철도 경쟁체제를 도입해 시민들의 편익을 높이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철도노조는 철도를 나눠 운영하는 것 자체가 철도 민영화를 위한 포석이라고 규정하며 맞서왔다.

철도는 분리됐지만 정부가 장담했던 유의미한 경쟁 효과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SR의 역 운영과 관제, 차량 정비, 시설 유지·보수, 사고 복구, 열차 내 승무 서비스, 고객센터, 차량·역 청소, 객실 설비 등 대부분의 업무가 철도공사에 위탁해서 이뤄지면서 오히려 통합 운영의 필요성만 재확인됐다. 또한 철도노조는 SR이 신규 도입하려는 차량의 정비와 고객센터 업무 등 철도공사에 위탁한 업무 일부를 민간에 이관하는 방식을 통해 우회적인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SRT 개통 직전 3년간 흑자를 기록했던 철도공사는 SRT 개통 직후인 2017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KTX 이용객 일부가 SRT로 분산되면서 나타난 결과 중 하나다.

철도에서 수익이 나는 노선은 고속철도가 유일하다. 여기서 나오는 영업이익으로 무궁화호나 새마을호와 같은 일반열차, 광역철도, 화물열차 등 공공성을 위해 필요한 적자 노선을 보조하는 방식이다. 수익 노선인 고속철도만 운영하는 SR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SR의 확대는 철도공사의 영업이익 축소로 이어지고, 적자 노선에 대한 보전도 당연히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공공성을 이유로 유지해 왔던 적자 노선이 축소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공공성 후퇴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철도노조는 우려하고 있다.

철도공사와 SR이 철도 운영이라는 동일한 업무를 나눠 맡으면서 발생하게 된 중복비용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 자문기구가 인정한 중복 비용만 연 406억원에 달한다.

철도노조 김선욱 정책팀장은 현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SR이 고속철도의 수입으로 철도 공공성에 어떠한 투자를 하느냐, 투자하는 게 없다. SR이 크면 클수록 철도의 공공성은 후퇴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SR 출범 당시 자본금을 투자했던 사학연금, 기업은행, 산업은행 등 투자자들이 올해 6월 1천475억원 자본금을 회수해 가면서 이자 비용만 780억원을 챙겨갔다. SR이라는 회사의 존재는 이 재무적 투자자의 배를 불리기 위한 용도에 지나지 않고, 철도 공공성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는다. 말은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가 민영화를 우려했던 그 효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철도노조는 정부가 도입한 철도 경쟁체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철도 통합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직전 파업인 2019년 파업 당시에도 철도노조의 핵심 요구는 철도 통합이었다. 당장 철도 통합이 어렵다면 수서역에도 KTX를 투입하자고 주장한다. ‘철도 공공성 강화’를 공약한 문재인 정부에서 철도공사 SR 통합을 검토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했지만, 당시 철도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감사원 감사가 진행됐고 이후 연구용역이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서야 발표된 연구용역 결과는 ‘코로나19 사태로 분석에 한계가 있다며 판단을 유보한다’는 허무한 결론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 의견을 수용해 철도 경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수서행 KTX가 뭐길래? 본말 전도된 정부의 철도 경쟁체제

서울행 KTX에서 한 승무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철도노조는 14일 오전 9시부터 18일 오전 9시까지 나흘간 1차 총파업에 들어간다. ⓒ뉴스1

철도노조가 이번 파업에서 ‘수서행 KTX’를 더욱 강조하게 된 배경은 철도 경쟁체제를 고수하는 정부의 정책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까지 초래됐기 때문이다.


발단은 SRT의 확대다. 정부는 올해 9월부터 경부선과 호남선에서만 운행됐던 SRT를 경전선(창원·진주), 전라선(순천·여수), 동해선(포항)으로 확대했다. 그런데 SR은 현재 신규 노선을 운행할 수 있는 열차를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존에 운행하던 노선에서 열차를 빼서 신규 노선에 투입해야 한다. 이에 정부는 SRT의 주중(월요일~목요일) 경부선 운행 횟수를 줄이기로 했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주중 경부선 SRT가 축소되면서 하루 평균 4천334석의 좌석이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예매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부산 구간의 KTX 운행을 하루 왕복 3회 더 늘렸지만,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 강남권으로 이동할 경우,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뒤 다른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거나 도중에 SRT 정차역에서 하차해 환승해야 하기 때문이다.

KTX 종착지를 서울역이 아닌 수서역으로 바꾸면 쉽게 해결될 문제지만, 정부는 철도 경쟁체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수서행 KTX’ 도입을 거부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국민 편익을 위해 경쟁체제를 도입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 경쟁체제를 유지해야 하므로 국민 편익을 확대할 수 없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철도 통합’과 ‘수서행 KTX’와 같은 현안들은 철도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도 관련된 문제다. 철도노조 이근조 정책기획실장은 “SR이 출범한 후 철도공사의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친 뒤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아주 단적으로 얘기하면, 2021년부터 경조사비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실장은 “(철도공사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추가 인력 채용을 하지 않고 있다. 정원보다 연간 1천400명 정도를 지속적으로 채용하지 않고 있는데 한국전력공사나 한국도로공사 등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수치”라며 “결국 현장의 인력 부족과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철도 통합과 수서행 KTX 문제는 단순히 경영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우리의 노동조건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철도노조는 성실한 임금 교섭과 4조 2교대 시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철도공사와 철도노조는 파업을 하루 앞둔 전날 늦은 저녁까지 교섭을 진행했지만, 철도공사가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예정대로 1차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는 서울과 부산, 대전, 영주, 호남 등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연다.

다만, 철도 업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하기 때문에 파업 시에도 일정한 운행률을 유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조합원 9천300여명과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6천여명이 현장에서 근무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교통부는 대체인력을 집중 투입해 광역전철 운행률은 평시 대비 75% 수준으로, KTX 운행률은 평시 대비 68% 수준으로 운행하겠다는 대책을 세웠다. 특히 이용 수요가 높은 출·퇴근 시간대에는 광역전철 운행률을 각각 90%, 80%로 운행하겠다는 계획이다. 
 

“ 남소연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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