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그는 /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혁명가로서 자기 신분을 잊은 적 없었다.“
(전사 I - 김남주)

남민전동지회가 주최한 ‘통일열사 이재문 42주기 및 남민전 동지 합동추모제’가 7일 정오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남민전동지회가 주최한 ‘통일열사 이재문 42주기 및 남민전 동지 합동추모제’가 7일 정오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남민전동지회가 주최한 ‘통일열사 이재문 42주기 및 남민전 동지 합동추모제’가 7일 정오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남민전 생존 동지들과 추모인사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이하 남민전)’ 서기 이재문 선생과 남민전 중앙위원 신향식, 김병권 선생을 비롯해 이해경, 박석률, 김희상, 김충희 선생의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남민전을 이끈 고 이재문 선생(1934-1981)은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수배자로 1976년 남민전을 결성해 서기를 맡았고, 1979년 구속돼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 옥중 단식과 고문으로 1981년 옥사했다. 

남민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남민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박석률 열사의 동생 박석삼 선생의 사회로 진행된 합동추모제에서 “박정희 독재보다 더한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이 들어선 것은 선생님들의 책임이 아니고 살아 있는 우리들의 잘못”이라고 자탄한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모든 세계혁명과 1970년 이전의 모든 투쟁을 낱낱이 연구한 이재문 선생님은 놀라운 혁명가였다”고 회상했다.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됐던 임헌영 소장은 “여러 동지들의 뜻이 어떠한 지 알 수 없으나 언젠가는 기왕의 연구자료에 더해 여러 동지들의 회상기 등도 모아 남민전이 정확하게 기록되는 역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사월혁명회 전덕용 회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사월혁명회 전덕용 회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범민련 남측본부 이태형 의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범민련 남측본부 이태형 의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사월혁명회 전덕용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피를 먹지 않은 혁명이 어디 있는가? 구호만으로 미제국주의와 독재권력이 물러나는 법은 없다”며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기 위해 이재문, 남민전 선생들과 같은 목숨 건 투쟁을 해야 한다”고 과감한 반미투쟁을 촉구했다.

범민련 남측본부 이태형 의장은 “세대는 변하고 시대는 전진했다”며 “목숨 걸고 몇십 장씩 뿌렸던 유인물을 이제는 수십만 장 대중적으로 살포하는 시대”로 변화된 상황을 지적하고 “선배열사들의 뜻을 이어 변화된 시대에 맞게 새로운 세대가 민족해방투쟁을 대중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황금수 선생이 남민전동지회를 대표해 인사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황금수 선생이 남민전동지회를 대표해 인사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황금수 선생은 참석한 남민전 동지들을 대표해서 “미제국주의 일극지배체제의 몰락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으며, 미제국주의는 전 지구 인민들에게 못되고 죽일 짓만 골라하니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위적인 이치”라고 성토하고, 해방이후 가장 깊고, 폭넓은 조직과 투쟁의 역사를 지닌 남민전의 정당성과 낙관적인 미래를 전망하며 찾아온 추모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남민전동지회가 주최한 이날 합동추모제는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경북대학교민주동문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사월혁명회, 서울대학교민주동문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 한국진보연대가 후원했다.

합동추모제는 남민전동지회가 주최하고 6.15남측위원회 등이 후원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합동추모제는 남민전동지회가 주최하고 6.15남측위원회 등이 후원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병인 통신원]

한국전쟁 이후 최대 지하조직 사건으로 알려진 ‘남민전 사건’은 유신 말기 반유신투쟁에 앞장서다 1979년 10월 4일 이재문 등의 구속으로 시작돼 84명이 구속됐고, 공안 기관은 ‘북한 공산 집단의 대남 전략에 따라 국가 변란을 기도한 사건’이라 규정했지만 2006년 3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사건 관련자 29명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재문은 옥사했고, 신향식은 사형이 집행됐고, 전수진은 병보석 후 병사했고 김남주 시인 등도 병사했다.

“해방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오늘 밤 또 다시 하나의 별이 / 인간의 대지위에 떨어졌다...
그 죽음이 결코 / 헛되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것이고...”
(전사 II –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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