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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망가지니, 정부도 망가졌고, 청년들이 죽었다"

[인터뷰] <정부가 없다> 펴낸 정혜승 작가

이명선 기자  |  기사입력 2023.11.07. 05:27:56

 

<정부가 없다>(정혜승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는 서울 이태원에서 159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 1주년에 발간됐다.

 

전직 기자 출신이자 청와대와 기업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정혜승 작가가 이 사건에 천착하게 된 것은 그의 이력 때문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과 동년배인 자녀를 뒀기 때문이다. 참사가 일어난 당일 대학생인 아들이 밤늦도록 연락이 안 됐고, 불안한 마음에 이태원 참사 현장을 남편과 함께 찾았다.

 

아들과 뒤늦게 연락이 닿았지만 참사 현장을 직접 목격하면서 마음을 졸이던 정 작가는 "우리 아이만 안전하고 안녕하다는 게 이렇게 끔찍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수많은 '왜?'라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정부가 없다'는 책 제목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정 작가를 지난 3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전홍기혜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한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내 아들만, 우리 아이만 안전하다는 게 끔찍했다"

프레시안 : 책의 첫 문장이 "나는 용산구 주민이다"다. 언론인, 청와대 비서관 등의 직함 다 떼고, 용산구 주민이 기록한 '10월 29일 그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정부가 없다>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정혜승 : 2022년 10월 29일 밤, 집에 있는데 '이태원 해밀턴 호텔 주변이 혼잡하니 오지 말라'는 재난 경보 메시지가 계속 왔다. '사고가 난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카카오톡 대화방에 '집단 실신 사태'라는 속보가 떴다. 트위터(현 'X')에는 이미 엄청난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심상치 않았다. 그날 아들이 늦는다고 했었다. 전화하고 카톡 남기고, 또 몇 분 있다 다시 하고… 전화는 받지 않았고 카톡 메시지 숫자 1은 없어지지 않았다. 피가 말랐다.

 

일단 이태원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녹사평역 부근에 경찰 통제선이 있었지만, 어영부영 들어갔다. '아이를 찾으러 왔다'고 하니까 경찰도 당황한 눈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너무 정신이 없었다. 해밀턴 호텔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 헤매던 중 아들과 연락이 닿았다. 같이 간 남편이 아들에게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날 밤 아들을 찾아 이태원 일대를 헤매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면,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혹시 혹시 내가 내일 이 거리를 다르게 보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혹시 일이 생긴다면 그 다음 일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공포가 밀려왔다. 그런데 아들이 괜찮다는 걸 알고는 더 끔찍해졌다. 공포가 한층 더 크게 밀려오면서 내 아들만, 우리 아이만 안전하고 안녕하다는 게 이렇게 끔찍할 수 있구나.(눈물) 

 

프레시안 : 10월 29일 밤 현장은 '이태원 압사 사고' 해시태그를 타고 트위터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날 것' 그대로 유통됐다. 그로 인한 2차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정혜승 : SNS와 TV 등으로 속보를 계속 지켜봤다.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멘탈도 점점 안 좋아졌다. 그래도 사망자가 159명에 달하는 큰, 대형 압사 사고라는 생각은 못 했다. 날이 밝으면서 멘탈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게 일요일이었다. 그렇게 화요일이 됐고, 관련 보도가 하나둘 전해지면서 이것은 명백히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에 고통과 절망이 분노로 바뀌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 2022년 10월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현장. ⓒ연합뉴스

 

"정치가 망가지니 정부도 같이 망가졌다" 

 

프레시안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2022년 10월 3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회의 결과 브리핑)는 말은, 그야말로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정혜승 : 청와대 비서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해봤는데, 한국 공무원들은 일을 정말 잘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정부는 진짜 일을 잘한다. 공무원들이 최고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이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일 잘하던 '일잘러' 공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공무원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와 같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이상민 장관의 말처럼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한다면, '대체 정부는 왜 존재하는 거지? 정부의 역할은 뭐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만큼 10월 29일 그날의 일은, 저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프레시안 : 대통령실에서 새 정부 출범 초기 때부터 일한 L, 서울시 어느 구청에서 일했던 '어공' N, 이상민 장관 판사 시절 동료, 이진석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국정상황실장), 여준성 전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정혜승 : 인터뷰를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정치가 망가지니까 정부도 같이 망가지는구나'였다. 정치와 정부의 상관관계, 그 시너지가 엄청났다. 

 

지난 대선은 국론 분열이 가속화된 와중에 치러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0.73%포인트 차로 당선된 이후 국론 분열은 더 심화했다. 말하자면, 공무원 입장에서는 지난 몇 년은 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었다. 공직에 있든 기업에 있든 기자를 하던 사람은 다 똑같다. 사회에, 또는 조직에 좋은 변화를 가져올 때 신이 난다. 신이 나서 일할 수 있도록 끌어주는 것, 그게 리더십이다. 내 일이 쓸모없고 가치가 없다면, 그냥 대충 일하게 된다. 

 

청와대에서는 아침마다 '현안 점검 회의'라는 걸 했다. 국정상황실장이 회의에서 현안 하나하나를 점검한 뒤,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맞는 핼러윈 축제였고, 사람들이 몰릴 것이 뻔히 예상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대응 방안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이진석 두 사람 얘기는 꼭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진석 전 실장도 '내가 지금 국정상황실장이었다면 어떻게 대응했을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고 했다. 이 전 실장은 핼러윈 축제가 대통령 보고 사항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첫 축제이기 때문에 현안 회의에서 점검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상황실 혹은 비서실장 아니면 하다못해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중 한 명이라도 '어떻게 대응하기로 했어?'라고, 묻기만 했어도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질문하지 않고, 왜 챙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윤건영·이진석 두 사람 모두 공무원들은 매뉴얼대로 하는 일상 업무를 굉장히 잘한다는 했다. 위에서 점검만 하면,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질문이 '대응 매뉴얼이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됐을까?'였다. 그랬더니 두 사람은 '리더의 관심사의 문제'라고 했다. 

 

▲ 159명이 압사당한 현장은 폭 3m 남짓의 좁고 가파른 내리막 골목길이었다. 현장 CCTV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해당 골목의 군중 밀도는 오후 10시 15분께 ㎡당 7.72∼8.39명에서 5분 뒤 ㎡당 8.06∼9.40명으로 증가했다. 오후 10시25분께는 ㎡당 9.07∼10.74명까지 늘었다. ⓒ연합뉴스

 

"리더의 관심사에 정부의 말초신경까지 달라진다" 

 

프레시안 : 당시 대통령의 관심 사안은 '마약'이었다. 주말 핼러윈 축제를 앞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에서 "마약이 관리 가능한 임계치를 넘어 국가적 리스크로 확산되기 전에 전 사회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혜승 : 경찰은 대통령실 앞 집회 대응과 '마약과의 전쟁', 이 두 개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었다.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리더의 관심사가 실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리더의 관심사가 무엇인지에 따라 정부의 말초신경까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경찰서 '핼러윈 축제 클럽 마약류 집중단속 계획 추진 개요'에 따르면, 용산서는 10월 28~30일까지 이태원 유흥업소 밀집 지역 마약 단속을 계획하고 용산서 강력 4개팀, 형사 1개팀, 생활질서계 수사관들이 마약 단속을 위해 배치됐다. 

 

29일 참사 당일 이태원에 13만 명의 인파가 몰렸지만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137명에 불과했다. 인파를 관리하는 '혼잡경비' 업무를 맡은 경찰도 없었다. 저녁 6시 34분부터 해밀턴 호텔 주변에서 11건의 위험 신고가 접수됐지만, 현장을 통제한 경찰은 아무도 없었다. 

 

반면, 이날 대통령실 경호를 위한 집회 대응에 62개 부대(51개 경찰관기동대·3개 의경부대·지방청 8개 기동대)가 배치됐다. 

 

프레시안 : 정부의 수사본부 설치와 국회의 국정조사 합의는 비교적 빨리 이뤄졌다. 

 

정혜승 : 사건 발생 사흘 만에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가 시작됐지만, 경찰과 소방관이 서로 거짓말 했다고 책임을 떠넘기느라 급급했다. 수사는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기 때문에, 참사와 재난을 수사로 단죄한다는 것은 하수 중의 하수다.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때도 겪어봤지만, 정말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 그리고는 사소한 실수를 꼬투리 잡아 하위직이 처벌된다. 따라서 수사로는, 그 어떤 것도 밝혀지지 않는다.

 

국정조사는 수사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시작부터 '파행'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내년 예산안을 먼저 처리한다며 골든타임을 놓쳤고, 정부와 여당은 책임회피와 비협조로 일관했다. 유가족들이 책임자들에게 '왜 그런 지시를 했느냐?'라고 묻는 작업이 필요했지만, 공청회에서 발언 기회를 얻는 게 고작이었다. 

 

"참사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프레시안 :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사 발생 사흘 만에 '무한 책임'을 느낀다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지만, 오 시장 책임 또한 적지 않다. 

 

정혜승 : 결국 이태원 참사는 각각의 책임에 구멍이 생기면서 벌어진 일이다. 국정상황실 혹은 서울시에서 대응 회의를 했다면? 경찰이 일선 구청과 한 번이라도 대응을 논의했으면? 

 

재난과 참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규명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는 세월호 이후 이런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세월호 때 그 생떼 같은 아이들을 보낸 것이 얼마나 힘들었나. 그런데 우리는 그 힘든 일을 또 반복하고 있다. 그 다음에, 피해자들. '피해자 우선주의' 굉장히 중요한데,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구제하고 살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다. '사회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 중 하나는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 이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참사와 재난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누군가 책임을 지고 사과하고 피해자를 위로하며 희생자를 함께 애도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사회적 태도가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처음으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세월호 때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희생자 애도는커녕 유가족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 자체를 '반정부 행위'로 규정했다. 

 

▲ 지난해 11월 5일 시청역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정부 규탄 촛불집회. ⓒ연합뉴스

 

"참사를 쫓아가는 과정은 정치적인 과정이다"

프레시안 : 정부여당은 이태원 참사 이후 야권과 시민단체를 향해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참사의 정치화)고 비난했다. 그런데 참사 1주기에 윤 대통령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봤다. 정부가 참사의 정치화를 몸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정혜승 : 윤 대통령은 1주기 시민추모대회를 '정치 집회'라며 불참을 선언하더니, 오히려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됐다. 어떻게 대통령도, 총리도, 장관도 한 명 안 오나. '내가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고 너희들이 하는 것은 정치다'라는 논리인데, 정치를 피하고자 하는 행동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행위다. 

 

'참사를, 재난을 쫓아가는 과정은 정치적인 과정이다'라는 학자의 얘기를 책에도 썼다. 참사가 왜 일어났으며 누구의 책임인지, 그리고 이를 복구하기 위해 국가의 재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이 다 정치적인 결정이다.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같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정치를 무슨 오물 대하듯 하면서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미루거나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애도하고 추모하는 일, 원인을 규명하는 일 자체를 마치 정치적 행위 또는 반정부 행위인 것처럼 비난하지만, 정부가 진짜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이려면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위로를 해야 한다.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탄 배가 가라앉은 걸 실시간으로 보고, 축제에서 사람들이 압사당하는 걸 여과 없이 접했다. 이런 집단 트라우마를 위로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 지난 10월 3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미사. ⓒ연합뉴스

 

'검찰 정부'의 '공포 통치'에 최선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프레시안 : 정치가 오히려 참사의 문제 해결을 막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혜승 : 한국 사회가 분열됐다고 하지만, 양극단을 제외하면 60% 정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라고 생각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극단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극단적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서 그렇지 국민 대다수는 극단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가족들은 시민 100명 중 한두 명을 빼고는 손을 잡아주거나 포옹해 준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아픔에 공감하며 같이 고민해 주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면, 그 과업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프레시안 : 책에서 '검찰 정부'의 한계를 지적했다. 사실 검찰이 제일 많이 대하는 사람은 죄지은 사람들이다. 죄지은 사람을 잡는 일이 업인데, 노동자나 정부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민을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정혜승 : 용산 대통령실에서 일했던 사람이 '검찰 정부'에 큰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최근 만난 몇몇 사람들도 '검찰 정부가 무서워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더라. 감사원에 털리고 검찰에 털리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검찰 엘리트들은 적을 선별해 타깃으로 만들고 '때려잡자'는 식이다. 국정 운영을 하는데 온갖 '카르텔'을 언급하며 때려잡자는 식인데, 과연 오래 갈 수 있을까? 검찰이 검찰 방식으로 정부를 운영하며 '공포 통치'가 되면, 책임은 회피하고 복지부동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 

 

이 정부의 또다른 특징이라고 하면, '곳간지기의 전성시대'를 들 수 있다. 기획재정부, 그중에서도 예산실에서만 일하던 사람들이 대통령 비서실장(김대기)도 복지부 장관(조규홍)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건전 재정'을 얘기하는데, 예산을 줄이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해 8월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회의 후 한 유가족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항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프레시안 :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고, 이상민 장관은 여전히 건재하다. 

 

정혜승 : 굉장히 안 좋은 시그널이다. 책을 감싼 띠에 쓰인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유가족의 말이다. 

 

재난과 참사가 일어나면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라고 생각해서, 대개는 장관 하나 정도는 물러난다.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목을 거는 일이다. '꼭 그렇게 사람을 자르고 가야 해? 그러면 살아남을 장관이 누가 있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 그만큼 무거운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하기 때문에 사퇴로 그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묻고 지나가는 방식이 된다. 그게 어떤 건지 우리는 지금 확인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들었는데, 지난 8월 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할 때 이상민 장관은 바로 옆에 있는 유가족을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지나쳤다고 한다. 유가족 중에는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도 있을 텐데, 그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책임지지 않아서 국회의원들이 이상민 장관 탄핵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한 헌법학자가 장관 탄핵소추가 아닌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되는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헌법 정신 위배로 소를 제기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하더라. 헌법 제34조 제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태원 추모비, 행안부 건물에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올해 핼러윈 데이는 정말 조용하게 지나갔다. 정치권은 외면하고 있지만, 온 국민은 이렇게 애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혜승 : 조용하게 넘어간 것도 공감하고 위로를 전하는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애도가 필요하다.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유가족 요구사항 중 이뤄진 게 하나도 없다. △진정한 사과, △성역 없는, 엄격한,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의 마련 등. 이와 함께 유가족들이 국회 통과를 원하는 특별법의 핵심은 독립적 조사기구다. 

 

지금 시청 앞 서울광장 한편에 있는 분향소는 점거 형태다. 지인의 초등학생 딸이 지나가다가 보고, '엄마 분향소는 원래 임시 건물이야? 천막으로만 돼 있어? 그렇게 만들게 되어 있어?'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분향소가 천막 치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인가. 그게 자연스러운 건 이상한 일 아닌가. 

 

유가족 중 한 분이 '어디에 추모비가 들어가면 좋겠느냐?'고 물어서 '이태원이요?'라고 했더니, '이태원에도 필요하겠지만 희생자 이름으로 벽 한 면을 가득 채워야 할 곳은 행안부 건물'이라고 하더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일할 때 희생자들의 이름을 보면서 더 정신 차리고 일해야 한다'는 얘기다. 너무 와 닿았다. 

 

▲10.29 이태원참사 1주기를 맞은 10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연합뉴스

 

무기력해진 1년, 무엇을 해야 할까 

 

프레시안 : 정부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1년이었다면, 시민 입장에서는 더욱 무기력해진 1년이다.

 

정혜승 : 1년이 지나고 보니, 구멍은 더 명확해졌다. 그런데 어디가 문제인지 알면서도 바꿀 수 없어 무기력해진다면,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과정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한 명 한 명 개인은 무기력하지만, 모이면 무기력하지 않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 

 

혹자는 이걸 '정치'라고 말하겠지만,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가 반복되지 않고 아이들에게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남겨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같이 고민하고 떠들어야 한다. 뉴스를 멀리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지?'와 같은 질문을 얘기하다 보면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어떤 일도 저절로 해결되거나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결해 주는 법은 없다. 불신한다고 외면할 일은 아니다.

 

최근 MBC에서 이태원 참사 수사기관의 보고서 161건, 169명의 진술조서 등 모두 1만2000쪽 분량을 공개했다.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수사한 결과인데, 공개가 맞는 것 아닌가. 그러나 수사 기록은 조사 기간이 끝나면 대게 그냥 캐비넷에 들어간다. 경험이 자산이 돼야 하는데, 자산은커녕 수사 한 번에 기록 공개도 없이 정치권 공방으로 끝난다. 그럼,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따라서 민간에서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펜박(FENVAC)' 같은 단체는 굉장히 의미 있다고 본다. 펜박은 프랑스 재난 참사 테러 피해자 협회로, 재난이 계속 발생하면서 생긴 피해자와 유가족 연대체다. 이 연대체가 법적 기구로 인정받으면서 조사 권한까지 갖게 됐다. 이런 게 가능하더라. 

 

왜 다정함인가 

 

프레시안 : 책 마지막에 '다정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의미인가. 

 

정혜승 : '왜 다정함이 결론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분열을 조장하고 극단주의를 부채질하는 정치적 위기도 외로움 탓이다. 외로움이 우파 포퓰리즘과 긴밀하고 광범위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외로움을 극복하고 분노와 절망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소통과 공감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원 올앳원스>의 여주인공은 "혼란스럽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때일수록, 서로에게 다정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기왕이면 정부가 또 우리 모두가 좀 더 다정했으면 좋겠다. 

 

 

▲ <정부가 없다>(정혜승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메디치미디어
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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