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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관리’ 공감한 미중, ‘친미반중’ 올인했다 길 잃은 윤석열 정부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의 파이롤리 에스테이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이 바이든 정부 이후 꾸준히 유지해온 강력한 중국 디커플링(decoupling) 노선을 약화하며 대중 관계 관리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리스크를 안고 갈 필요가 없는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의 노선 변경을 마다할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인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15일(현지시간) 열린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 안정화에 대한 공통된 의지를 확인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경쟁적이지만, 이를 합리적이고 관리 가능하게 해 충돌이라는 결과를 피하는 게 나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도 “충돌과 대치는 양쪽 모두에게 감당하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규제나 대만 문제 등 핵심 이해관계와 직결된 현안에서 양 정상 간 이견이 미묘하게 표출되긴 했으나, 포괄적으로는 ‘이제 그만 싸우고 공존할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이 이번 회담에서 양 정상이 공통적으로 확인한 메시지다.

바이든 대통령의 노선 변경은 당장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로 평가되는 측면도 있으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중국과의 경쟁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미국 정가나 재계의 분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팽배해 있었다. 이는 이제 더이상 미국이 중국을 힘으로 굴복시키지 못한다는 상황에 대한 확인 등 자국이 그동안 누려온 패권이 유효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는 현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국면에서 미국이 유의미한 변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유럽과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 다수가 미중 사이에서 중간지대를 자임하며 전략적 균형을 취하려는 모습을 통해서도 객관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미중 경쟁의 미래는 다른 어떤 영역보다도 불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외교·통상 전문가들은 진영을 막론하고 누구든 미중 전략경쟁의 미래를 쉽게 점치지 못한다. 중국이 미국과 완전히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선 단계까지 온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중국을 다양한 측면에서 힘으로 압도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김재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중 전략경쟁과 관련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 ‘롱 게임(long game)’에 주목, “장기간에 걸쳐 탈동조화나 전면적인 무력충돌 없이 ‘롱 게임’을 펼칠 것으로 본다”며 “양국은 ‘관리된 전략경쟁’을 하면서 상호의존과 함께 공동발전하는 공진화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롱게임 시나리오를 설명했다.

이 시나리오에 대해 “양국은 평화공존을 위해 전략적 균형 유지와 상시적인 대화채널을 구축해 전략적 오판을 피하면서 위기를 관리할 필요가 있으며, 중국 공산당 체제를 붕괴로 몰아가려는 시도는 미국의 이익은 물론이고 세계평화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관점”이라고 부연했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 내용과 미국 정·재계의 흐름에 비춰봤을 때 가장 현실에 입각한 시나리오로 보인다. 두 정상은 군 고위급 소통과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군사안보협의체 회의, 사령관급 상시 전화통화 체계 구축 등 군사 대화를 재개하는 데 합의했다.

미국의 재계는 행정부의 중국 디커플링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리스크 관리 차원 이상으로, 경제 협력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애플, 테슬라, 구글, 인텔 등 미국의 글로벌 기업 CEO들은 직접 방중해 중국과의 투자 협력을 약속했다. 또한 미국의 디커플링 기조가 유지되던 2022년 미중 간 무역액은 역대 최고치인 7천600억 달러에 달했다. 서로의 외교 정책과 무관하게 양국 간 경제·무역 상호의존성은 오히려 높아지는 추세인 셈이다. 다만 미국으로선 전면적인 디커플링 대신 첨단기술분야 중심으로 부분적 디커플링을 밀고 갈 여지는 남아 있다. 이에 중국 역시 내부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분적 디커플링이 중국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면 무의미해진다.

 

 

 

팀 쿡(왼쪽) 애플 CEO가 중국 베이징에서 딩쉐샹 중국 국무원 상무부총리와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쿡 CEO는 "애플은 경제 세계화의 방향을 견지하고 있으며 첨단 제조, 디지털 경제 등의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3.10.20. ⓒ뉴시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분리 정책에 따른 관계 기업들의 부정적 인식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만의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하기로 한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가동과 관련해 생산원가 상승, 미국 정부 지원의 불확실성 등 여러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 텍사스에 짓고 있는 첨단 파운드리 공장 가동과 관련해 TSMC와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전망에 직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미국과 아시아(한국·대만)에 첨단 시스템 반도체 공장을 짓고 10년간 운영했을 때 드는 총 비용(TCO·Total cost of ownership)을 비교한 수치를 보면 미국에서 드는 비용을 100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한국·대반에서는 78원이 들고, 중국에서는 63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성 측면에서 미국 공장은 ‘최악’의 카드인 셈이다.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미국의 중국 디커플링 정책은 불안정한 요소들을 동반하고 있으며, 이에 동조하는 다른 국가들로서도 리스크를 마냥 감수하고 갈 수만은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미 행정부 역시 이런 흐름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4월 브루킹스 연구소 주최 연설에서 “동맹 우방국들과 더불어 ‘차이나 쇼크’를 관리하겠다. 이는 중국과의 결별, 탈동조(di를 하자는 게 아니라 위험 해소(derisking)와 다변화(diversification)을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 “경쟁을 서로 책임감 있게 관리하고, 가능한 지점에선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모든 영역에서의 전방위 대중 전면전이 미국, 특히 미국 중산층의 이익에도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6월에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찾은 것을 계기로 사실상 ‘디리스킹’ 기조로의 전환을 시사한 바 있다.

안보적으로는 한미일이 삼각동맹에 준하는 수준으로 협력 관계를 강화함에 따라 동시에 강화하는 북중러 삼각 공조가 안보 딜레마 현상을 낳는 것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관리하는 것도 벅찬 상황에서 동북아 지역의 긴장까지 극대화할 경우 얻게 될 국가적 손실이 크다. 미국으로선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친미반중’ 올인한 한국이 설 자리는?


상황이 이러한데 한국 정부만이 일관되게 디커플링에 경도돼 있는 모습이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미국이 주도해 출범시킨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 5월에는 여기 참여하는 14개국과 공급망 협정을 맺었다.

이번 APEC 정상회의 계기로도 윤 대통령은 현지에서 IPEF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로 했다. IPEF 협상 분야는 무역·공급망·청정경제·공정경제 등인데, 한국은 4개 분야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안보적으로도 한국은 미국의 자칭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대중 견제 노선에 적극적으로 편승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 정책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공식화하는 등 반중 노선을 분명히 해왔다.

 

 

 

9일(현지시간) 밤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인도가 주최한 갈라 만찬에서 환담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특히 지난 5월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 매립 지역의 군사화 및 강압적 행위를 포함해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불법적 해상 영유권’, ‘일방적 현상 변경’ 등의 표현은 중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해왔던 것들이다. 역대 우리 정부가 외교 무대에서 자제해온 표현이다. 2021년 5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담긴 건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정도였는데, 그에 비해 다소 과격해진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한 변화가 없는 한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대미 관계처럼 급격한 변화를 추구할 이유는 특별히 없어 보인다.

중국 관가와 꾸준히 접촉해온 김준형 사단법인 ‘외교광장’ 이사장(전 국립외교원장)은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중국은 일단 한국과는 아무것도 안 한다는 입장이다. 동결이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한국이 미국처럼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든지, 그러한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한국과는 더 나쁘지도 않고, 더 좋게도 할 게 없다는 입장”이라며 “중국 입장에선 그게 굉장히 중요한데 한국은 그런 얘기도 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APEC 정상회의 계기로 미국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형식적인 약식회담에 그칠 것이라는 것이 김 이사장의 전망이다. 김 이사장은 “만나더라도 그냥 상견례같은 풀어사이드(pull aside.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회담장 옆에서 하는 약식회담)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중 관계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진단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이사장은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미국보다 더 강경하게 나와놓고, 지금 미국처럼 빼지도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생각은 미국과 딱 달라붙어 있으면 중국이 굴복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한미일이 묶이니깐 중국이 한국 단체관광을 풀었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는데, 그런 해석은 아전인수다. 절대 그런 게 아니고, 오히려 중국이 우리한테 양해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외교적으로 취할 수 있는 이익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다.

김재관 교수는 “한국은 이제 다극화 추세 속에서, 대미일변도 외교에서 벗어나 정경분리 접근법을 취하려는 최근 프랑스와 독일의 행보에서 보듯, 제3의 중간지대 국가들의 위험 회피, 즉 헷징(hedging) 전략 혹은 전략적 자율성 확보, 재량권을 추구하려는 주체적인 행보들을 눈여겨보며 반면교사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중국을 방문한 독일, 스페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프랑스, EU, 브라질 등의 헷진 외교 행보는 우리에게 주는 전략적 시사점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 강경훈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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