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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등장, 그리고 강남 8학군과 싸워야 하는 시대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한동훈의 등장, 그리고 강남 8학군과 싸워야 하는 시대

 
나는 초중고 동창회를 일절 나가지 않는다. 나라고 1970, 1980년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무들과의 아련한 추억이 없겠나? 하지만 아이러브스쿨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2000년대 초반 잠시 동창회에 참석한 이후 나는 그런 종류의 모임에 완전히 발걸음을 끊었다.

나는 초중고를 모두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에서 졸업했다. 이른바 8학군 출신이다. 그래서 그쪽 분위기를 어느 정도 안다. 모두 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8학군 출신들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혹은 지랄맞은) 아우라가 있다. 그들에게 초중고 시기는 아동·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동무들과의 아련한 추억만이 절대 아니다. 그건 사회 곳곳에서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하나의 카르텔이다.

8학군은 이제 거대한 하나의 계급이 돼버렸다. 8학군은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가장 강력한 권력(재벌)과 가히 어깨를 견줄만 하다. 법조, 의료, 기업, 지식사회 곳곳에 이들 출신들이 넓게 포진해있다. “돈 많고 사회에 불만 없는 우파 보수 친구들을 구한다”던 정순신의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의 이념은 매우 선명하다.

이원석 검찰총장, 송경호 중앙지검장 등의 등장으로 법조 권력은 이미 8학군 출신들에게 넘어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차기 대권을 노린다. 8학군은 더 이상 이 사회 기득권의 배후 세력이 아니다. 그들이 마침내 거대한 정치권력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경쟁의 신격화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지극히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불평등은 나날이 심화돼 이제 도저히 정상적인 사회의 유지가 가능한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 불평등한 사회를 용인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에 있다. 도대체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까? 이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학자가 있다. 20세기 가장 빛나는 지성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그 주인공이다.

바우만은 저서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이 불평등한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로 네 가지를 꼽은 바 있다. 그 중 하나가 ‘경쟁의 신격화’다. 즉 사회 구성원들이 ‘경쟁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일군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은연중에 경쟁의 승자들을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짓을 조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 지배계급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또한 이 짓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은연중에 서울대를 나온 사람을 보고 ‘야, 저 사람은 역시 서울대 출신이라 그런지 참 똑똑해’ 이런 우상을 만든 적이 없던가? 천만의 말씀, 이 우상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압도적으로 지배한다.

증거도 댈 수 있다. 21대 총선 때 우리나라는 30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는데 이 중 서울대 출신이 무려 63명으로 21%를 차지했다. 직전 국회였던 20대 때는 이 비중이 무려 27%(81명)였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호소한다. 국회의원은 우리의 대표를 뽑는 과정이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대표할 사람을 뽑으면 된다. 노동자는 노동자를 뽑고, 농민은 농민을 뽑고, 교사는 교사를 뽑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뽑으면 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광주 송정역에 도착해 경찰 경호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이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다. 2024.1.4. ⓒ뉴스1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노동자도, 농민도, 교사도 모두 서울대를 나온 사람을 뽑는다. 이게 경쟁을 신격화하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진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말씀드리겠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200만~250만 명에 이르는 농어민이 살고 있다. 인구 비중으로 따지면 적게 잡아도 4%를 넘는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300명 국회의원 중 12명은 최소한 농어민이어야 한다.

그런데 21대 국회에 농어민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은가? 빵 명이다. 단 한 명도 농어민 출신이 없다. 더 웃긴 이야기가 있다. 직전 회기였던 20대 국회 때에는 농민 국회의원이 단 한 명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 김현권 의원이 그 주인공이었다.

나는 김현권 전 의원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는 사람이다. 그 분의 삶에 존경심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은 이것이다. 김현권 의원도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왜 200만 농민을 대표하는 단 한 명의 국회의원조차 서울대 출신이어야 하나? 이게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경쟁의 신격화다.

8학군과 싸워야 하는 시대

“다시 말해 아이의 장래는 아이의 두뇌, 재능, 노력, 헌신이 아니라 태어난 곳과 태어난 사회 내에서의 부모의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대기업 변호사의 자식과 하급 공무원의 자식이 같은 교실에서 학교생활을 똑같이 잘 하고 똑같이 열심히 공부하며 IQ까지 같다고 해도,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미국 내 상위 10퍼센트의 부자에 포함될 만한 액수의 봉급을 받을 가능성에서 전자가 후자보다 27배나 높았다. 하급 공무원의 아이들은 기껏해야 중간 수준의 소득을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마저도 확률이 8분의 1에 불과하다.”

이게 바우만의 책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 나온 한 대목이다. 놀라운 사실은 여기서 말하는 붉은 글씨의 연구가 1979년 카네기재단의 연구였다는 점이다. 1979년이면 아직 미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출범도 하기 전의 일이다.

그런데도 상황이 이랬다. 이후 40여 년 동안 지속된 신자유주의가 저 불평등을 얼마나 악화시켰을지는 독자분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한동훈 위원장의 등장은 바로 이 불평등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이제 지배 권력은 더 이상 지방 출신의 자수성가 모델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공고해졌다. 대놓고 8학군 출신을 전면에 내세울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안타깝게도 민중들이 저 세습된 기득권의 상징 8학군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민중들조차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강남 출신들의 멋들어진(?) 삶을 동경하는 시대다. 한동훈은 그 동경과 선망의 눈빛을 받고 있는 상징적 인물이다.

만약 한동훈이 정치적으로 성공한다면 한국 사회는 진짜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지도 모른다. 학벌을 숭배하고 출신을 경외하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사회에 아무 불만 없는 사람들끼리 붕짜자 붕짜~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회로 접어들지도 모른다.

한동훈의 등장은 나에게 이처럼 상징성이 큰 충격적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회를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8학군이라는 새로운 거대 권력과 전면적으로 싸워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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