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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세수펑크 내고도 반도체 세액공제 연장한다는 윤 정부

‘대기업 퍼주기’ 지적에 윤 대통령 “거짓 선동”…전문가들 “주장 아닌 근거 제시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경기도 수원 장안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자연과학캠퍼스 반도체관에서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 주제로 열린 세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4.01.15. ⓒ뉴시스
정부가 당초 올해 종료되는 반도체 세액공제를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고율의 반도체 세액공제는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된 대표적인 대기업 감세 정책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대기업 감세로 정부의 재정 역할이 위축된다는 비판에 대해 “거짓 선동”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15일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 반도체관에서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연장 방침을 밝혔다. 그는 “올해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가 만료되지만, 법의 효력을 더 연장해서 투자 세액공제를 계속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에는 고율의 투자 세액공제가 적용된다. 지난해 3월, 이른바 ‘K칩스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가 대기업 기준 기존 8%에서 15%로 상향됐다.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R&D)에 대해서는 대기업 기준 최대 40%의 세액공제가 적용된다.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적용 기한은 오는 12월 31일까지다.

K칩스법에는 임시투자세액공제도 포함된다. 최근 3년간 연평균 투자 금액 대비 투자 증가분에 대해서는 10%p를 추가 공제한다. 당초 지난해 종료됐으나, 정부는 1년 더 연장할 방침이다.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는 기업 투자를 유인한다는 취지다. 재투자를 통해 기업이 성장하면,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수가 늘어나고 일자리도 생긴다는 게 정부와 재계의 논리다.

현실은 다르다. 대기업에 집중된 세제 혜택은 세수 감소로 이어졌다. 기업 투자도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수가 줄어들자, 정부는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할 저성장 국면에서도 긴축재정을 고수하고 있다.

세액공제 효과 낙제점인데, “거짓 선동”이라며 우격다짐

윤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세액공제를 둘러싼 비판을 일축했다. 그는 “‘대기업 퍼주기다’ 이런 얘기들이 있지만, 이거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세제 지원의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했다. 그는 “세액공제로 반도체 기업 투자가 확대되면 관련 생태계 전체 기업의 수익과 일자리가 엄청 늘고, 국가 세수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됐다는 사실은 정부 집계를 통해 확인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 서면답변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규모 총 1조 9,468억원 가운데 1조 9,410억원(99.7%)이 대기업에 돌아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규모는 각각 40억원(0.2%), 18억원(0.09%)에 그쳤다. 시설투자는 7,500억원 중 7,483억원, 연구개발은 1조 1,968억원 중 1억 1,927억원이 대기업 몫이다.

세제 지원에 따른 세수 감소 지적에 대해 윤 대통령은 “기획재정부도 사업하는 곳”이라며 “세액공제 해줘서 세수 감소하는 것을 그냥 볼 국가 기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세금을 면제해 주고 보조금을 지급했을 때 더 많은 세금과 재정 수입이 이루어질 것을 보고 정부도 사업하는 것”이라며 “‘대기업에 퍼주기 해가지고 재정이 부족하면 국민 복지를 위한 비용들을 어떻게 쓸 거냐’, ‘결국은 큰 기업들 도와주고 어려운 사람 힘들게 만드는 거 아니냐’ 그런 얘기들은 거짓 선동에 불과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주장한 ‘세제 지원-투자 확대-세수 증가’의 선순환은 나타나지 않았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해 11월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1.9%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11월까지 평균 설비투자지수는 119.5로 전년 126.7에서 크게 하락했다.

정부 세수도 대폭 축소됐다. 정부는 당초 지난해 세수를 400조 5천억원으로 잡았으나, 지난해 9월 재추계를 통해 59조원 이상의 세수 결손이 날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는 세수가 더 쪼그라든다. 정부는 올해 세수를 367조 4천억원으로 편성했다. 지난해보다 33조 1천억원(8.3%) 줄어든 규모다. 법인세 감소분이 27조 3천억원에 달한다.

올해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확대한 데 따른 세수 감소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법인세는 통상 3월에 신고·납부가 이뤄지고, 이때 세액공제가 적용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율 상향과 임투세 도입으로 올해 세수가 2조 9,991억원 줄어들 것으로 봤다.

올해 예산은 총지출 규모가 656조 6천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증가율이 3%에 그친다. 역대 최저치다. 지출을 줄이지만, 적자폭은 커진다. 올해 예산안에 기반한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44조 4천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3조 1천억원에서 대폭 늘어난 수치다.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뺀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지난해 58조 2천억원에서 올해 91조 6천억원으로 불어난다. 정부가 투자 유인 효과가 드러나지 않은 대기업 감세를 고수하면서, 재정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재정건전성도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기업 감세를 추진하는 데 있어 근거가 결여돼 있다고 지적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세액공제를 해주면 앉아서 이득을 보는 것이니까 좋지만, 정부는 세제 정책으로 투자가 얼마나 늘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면서 “주장만 할 게 아니라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상황 등 투자 결정에 주효한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세액공제는 기업들이 기존에 진행하려던 투자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는 것에 불과해 경제적인 이득은 없다”며 “세액공제에 따른 부가가치와 고용 창출은 대통령의 믿음이지, 근거는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2년 5월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5.20. ⓒ뉴스1

RE100 확산하는데 “탈원전 하면 반도체 포기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정부는 이날 민생토론회에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방안’도 발표했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경기 평택·화성·용인·이천·안성·성남 판교·수원 등 경기 남부에 밀집된 반도체 기업과 기관을 묶은 개념이다. 이번 방안은 지난해 3월 제시된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을 구체화한 것이다.

현재 생산 팹 19개와 연구 팹 2개가 가동 중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는 2047년까지 622조원의 민간 투자를 통해, 16개의 팹이 새로 들어서게 된다. 2030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인 월 770만장의 웨이퍼를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용인에 360조원을 투입해 파운드리 팹을 세운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팹에 122조원을 투자한다. 또한, 삼성전자는 평택 고덕 캠퍼스 증설에 120조원, 기흥 반도체 R&D 단지 증설에 20조원을 추가 투자한다. 정부는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총 346만명의 직간접 일자리가 생기고 650조원의 생산 유발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전력 공급 방안으로 원전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심이 되는 용인 국가산업단지와 일반산업단지에는 총 10GW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정부는 초기 수요 3GW는 산단 내 LNG 발전소를 건설해 충당하고, 후기 수요 7GW는 전력망을 구축해 동해안 원전·석탄화력발전, 호남 태양광발전으로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 파운드리 라인 하나 까는데 1.3GW 원전 1기가 필요하다. 인구 140만명의 대전이나 광주보다 전기를 더 많이 쓴다”며 “고품질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하고 원전은 이제 필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원전을 하게 되면 반도체뿐 아니라 첨단산업을 포기해야 한다”며 “민생을 살찌우기 위해서라도 원전 산업은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원전으로는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애플을 비롯한 반도체 수요 기업은 협력사에도 전력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100을 요구하고 있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RE100을 안 하면 반도체를 못 파는 상황이 됐다”며 “원전을 강조하면서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망을 갖추지 않은 채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게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RE100 대응이 빠진 클러스터 조성 계획은 현실성이 없다”며 “실효적인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조한무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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