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에 떠밀린 건 원인 아닌 현상...여전히 진상규명 필요
특조위가 사법부·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할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윤 변호사는 “행정부가 재난원인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경우 그 역할을 대신할 독립적 조사 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해외 사례에 비춰도 보편적”이라며 “특조위는 기본적 조사를 수행하는 기구이고 사법 판결을 내리는 기관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부에 의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진 바 없다. 경찰 수사는 용산경찰서장, 용산구청장 등 일부 관련자만을 기소하는 데 그쳤고, 국회 국정조사는 출석 자체를 회피하거나 자료 제출을 거부한 자들이 너무 많았다.
이에 윤 변호사는 “특수본은 사건 발생 74일이나 되어서야 군중 유체화(사람이 인파에 떠밀리는 현상)를 원인이라 얘기했지만, 그건 모두가 알고 있었던 현상에 불과하다”며 “참사 이전에 왜 경비대를 배치하지 않았는지, 119 신고 대응이 왜 지연되었는지는 여전히 아무도 모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엔 자유권 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기구 설립을 권고한 데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유가족 서로 못 만나게 하고, 장례 빨리 치르라 압박...“이게 지원이냐”
정부의 생색내기용 변명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가 내세우는 유가족들에 대한 전담 공무원 배치와 장례지원, 의료비 지원 등에는 어떤 내실도 없고, 오히려 사건을 덮으려는 치졸함이 돋보였다는 것.
이와 관련해 조인영 변호사는 “장례지원 과정에서 배치된 전담 공무원은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이 서로 못 만나게 하고, 장례를 빨리 치르라 독촉하기까지 했다”며 “의료비 지원의 경우 유가족에게는 문자 한 통으로 안내하고, 참사 생존자에게는 그조차도 하지 않아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한 희생자들이 즐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부실 대응을 감시 감독하기 위해서라도 특별법 제정을 통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거부권 의결과 더불어 정부가 발표한 ‘희생자·유가족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 계획’에 대해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 위원장은 “1년 넘게 무수히 호소하고 절규할 때는 단 한 번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철저히 외면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피해자를 위하는 척 하는 것은 거부권 행사에 대한 반발을 막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특별법을 통한 특조위가 아닌 어떤 것도 정부 측과 논의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거부권 행사로 말미암아 안전사회로 나아갈 길이 요원해진 가운데, 국회 재의결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재의결은 국회의원 출석 2/3가 찬성하면 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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