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 사례마다 판단이 다를 거라고는 했지만 결국 이번 결정이 유사 사례 판단에 계속 영향을 주지 않을까.
박진 : 그렇다. 분명히 영향을 줄 것이다.
프레시안 : 인권위가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기존 입장을 너무 쉽게 뒤집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박진 : 십 년의 결정례를 바꿀 거면 국민들한테 물어봤어야 한다. 안 위원장이 숙의하고 토론하자고 자주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대토론회도 하고 공청회, 청문회도 하고 그랬어야 한다. 위원들 10여 명만 모여서 10년 결정을 뒤집으면서 뭘 숙의를 했다는 건가.
인권위에서 지금까지 이렇게 드라마틱한 변화가 많지 않았다. 따로 통계를 내지 않아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그렇다. 기본적으로 소위에서 합의가 안 되면 전원위로 보내고 전원위 내에서 그렇게 뭔가를 뒤집어야 한다면 말씀드린 대로 공청회 같은 여러 과정들을 거쳐서 오랫동안 숙의하거나 토론하는 과정을 거친다. 국민들이 납득할 시간은 줘야 할 것 아닌가. 이 결정으로 인해서 영향을 받게 된 무수히 많은 학생 청소년한테도 물어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현병철 인권위 2기, 가장 좋은 평가 받았다"
프레시안 : 인권위 23년 역사 가운데 흑역사 하면 가장 첫손에 꼽는 때가 '현병철 인권위' 시절이다. 지금과 그때를 비교하면 어떤가.
박진 : 그렇게 반인권이었다고 한 현병철 위원장 시절 때도 지금보다 훨씬 나았다. 현병철 위원장은 촛불집회같이 정치적으로 엮일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개입했지만 위원회가 돌아가는 데 대해 크게 반대하거나 국제사회가 우려할 만큼의 행보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가 흑역사로 기억하는 건 1기인데, 2기 때는 오히려 역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방침에 대해 철회를 촉구하는 입장도 그때 나왔다.
인권위 오고서 알았다. 와서 과거 기록들을 뒤져보니 현병철 위원장 때 인권위가 진짜 많은 일을 했었다. 그래서 사무처가 중요하다. 사무처 직원들은 위에서 시키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깨알같이 한 문구라도 더 넣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무처 직원들이 학습시키고 설득시켜서 완전히 다른 인권위원장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프레시안 : 김용원 상임위원의 경우 초반에는 기존 인권위 방향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순간 바뀐 것 같은 느낌인데, 왜 그렇다고 보나.
박진 : 실제로 본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작년 8월 전에도 그랬었냐'고. 채 상병 수사에 대한 긴급조치 안건 회의에 참석 안 한 것을 두고 군인권센터에서 고의로 불참했다고 한 내용이 보도된 후로 완전히 태도가 바뀐 건 맞는 것 같다. 그분 말에 비춰 보면 (무엇엔가) 많이 화가 나서 저런 건가 싶다.
프레시안 : 국감에서 화제가 된 이야기가 있다. '윤석열 위에 김건희, 김건희 위에 명태균이 있다면, 인권위에서는 안창호 위에 이충상, 이충상 위에 김용원' 이런 것이다. 실제로 그랬나.
박진 :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안 위원장 임명되고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적어도 직원들은 지켜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사무총장을 경험해 보니 위원장과 사무총장은 조직을 지키려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안 위원장이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으로부터 직원들을 지켜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박진 : 지켜주셔야 한다는 말을 다시 드리겠다.
프레시안 : 민주당에서 이른바 '김용원 방지법', 인권위 상임위원을 국회 탄핵소추 대상에 추가하는 내용의 국가인권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박진 : 탄핵만이 맞는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다른 나라 인권기구들을 보니 위원들을 해임할 근거가 있는 곳들이 있더라. 반인권적인 말과 행동을 하거나 인권위원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경우 해임 절차가 필요한데 구체적인 방법은 좀 더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권위원의 지위를 독립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라는 것이지, 다른 의미에서 독립적이라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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