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여 마리 큰기러기 무리 중 돋보인 기러기 포착
백화현상으로 돌연변이, 흰색과 회색 절묘한 조화
» 김포시 한강하구 홍도평에서 발견 된 흰회색큰기러기.
» 김포시 홍도평.
유례없는 기러기가 김포 홍도평에 나타났다.
지난 9월18일 한강하구 김포평야를 대표하는 홍도평에 큰기러기가 찾아왔다.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온 학습으로, 환경이 바뀌어도 어김없이 큰기러기는 약속의 땅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9월21일 논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1천여 마리의 큰기러기 무리 중에 색다른 큰기러기 한 마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 큰기러기 무리 속에 함께 있는 흰회색큰기러기.
처음엔 그저 흰기러기인 줄 알았지만 홍도평에서 이 기러기는 뭔가 달랐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쇠기러기, 큰기러기, 흑기러기, 회색기러기 등 다른 종류의 기러기와 비교해도 생김새만 기러기지 다른 특징을 갖고 있어 별종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이름을 만들어 주고 싶지만 쉽지 않아 우선 색상을 고려해 흰회색큰기러기로 불러 보기로 했다. 서둘러 촬영을 준비하는 사이에 이 기러기는 이미 자리를 뜨고 말았다. 처음 도착한 큰기러기들은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속적으로 관찰하기로 했다.
» 흰회색 큰기러기의 뒷모습.
드넓은 평야와 한강 넘나드는 1만여 마리 큰기러기 무리 중에서 흰회색큰기러기를 관찰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홍도평엔 추수가 시작되면서 큰기러기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 3천여 마리로 불었다. 벼를 거둔 논은 큰기러기들의 먹이터가 된다. 한 달이 다 가도록 찾아 봤지만 흰회색큰기러기는 보이지 않는다. 혹시 이곳을 거쳐 남하한 것은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매우 보기 드문 희귀한 새를 눈으로만 한번 보고, 렌즈에 포착하지 못할까 마음이 급했다.
» 흰회색큰기러기와 큰기러기.
25일이 지난 10월16일 오전 8시 50분쯤 드디어 홍도평에서 그 진객을 다시 만났다. 설렘과 기쁨, 조심스런 마음으로 살펴보니 흰회색큰기러기는 백화현상의 큰기러기로 추정이 됐다.
홍도평에 벼 베기가 한창이라 농부들과 트랙터, 바인더 등 농기계들이 바쁘게 움직여 언제 큰기러기들이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 방해요인이 빈번히 발생하여 먹이를 편안하게 먹을 수 없는 큰기러기 무리.
아니나 다를까? 논길을 갑작스럽게 들어와 질주하는 승용차 때문에 놀란 큰기러기가 땅을 박차고 급히 한강을 향해 날아갔다. 또다시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관찰할 기회를 놓치니 아쉬움이 남지만 걱정도 앞선다. 김포평야에서 월동하지 않고 중간 기착지로 이용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해 월동하게 되는 경우엔 언제라도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10월 18일 오전 9시 20분경 벼 베기가 끝나 낱알이 떨어진 홍도평 논에 1천여 마리 이상의 무리들이 구역을 나눠 먹이를 먹고 있었다. 큰기러기가 앉아 있는 논마다 한 곳 한 곳 살펴 보았다. 흰회색큰기러기가 눈에 띈다. 가슴이 뛴다. 숨을 죽이고 한 발 한 발. 혹시 날아가지 않을까 조심 또 조심. 큰기러기들이 정신없이 먹이를 먹고 있다.
거리가 워낙 멀어 흰회색큰기러기를 자세하게 관찰하며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진객의 행동과 모습을 촬영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앞서간다. 다행히 큰기러기들이 찾아온 지 달쯤 되니 이곳 환경에 익숙해져 그다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아 큰 방해가 없으면 친숙하게 촬영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촬영을 하는 동안 큰기러기 무리가 동시에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려고 자동차 경음기를 울리고 돌을 던지는 무례하고 무식한 사람들 때문에 아쉬움을 남겨둔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음날 오전 8시30분 큰기러기 무리 속에 흰회색기러기가 보이지만 거리가 멀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관찰과 촬영이 어려웠다.
10월20일 오전 7시30분 홍도평에 인적이 드물다. 흰회색기러기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예상대로 그곳에서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다. 하지만 역광의 위치에서만 접근할 수 있어 관찰도 촬영도 어렵다.
잠시 뒤 흰회색기러기를 포함해 6마리의 큰기러기가 자리를 뜬다. 날 때는 6마리는 항상 함께 행동했다. 가족으로 생각되었다. 망원렌즈로 이동하는 모습을 추적했다. 멀리 날아가 앉는다. 차량으로 10여 분 걸려 흰회색기러기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 흰회색기러기 볏짚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한 달만에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가 왔다.
» 휴식을 취하는 흰회색큰기러기.
큰기러기에서 발견된 백화현상은 동물의 조직에 있는 검은색이나 흑갈색의 색소가 없거나 부족해서 그 양에 따라 피부나 머리카락, 망막의 색깔이 결정된 돌연변이다. 이 때문에 과거 참새나 제비, 까치 등의 조류에서 간혹 흰색이 발견되기도 했다.
» 몸단장하는 흰회색큰기러기.
특히 이들은 자연 상태에서 생존율이 높지 않아 사람의 눈에 쉽게 발견되지 않는 희귀종이다. 대체적으로 흰색으로 태어나면 눈이 붉고 부리는 분홍색, 다리도 분홍색을 띠지만 홍도평에서 발견된 흰회색큰기러기는 눈과 부리는 검은색, 다리는 회색을 띠고 첫째 날개깃은 검은색, 둘째 날개깃은 회색, 등과 가슴에는 흰색과 회색이 있고 배는 흰색이다. 조화로운 깃털의 색이 더욱 더 이채롭다. 흰회색큰기러기는 무리에서도 당당한 자태를 뽐낸다.
특히 큰기러기는 몸길이가 85~87cm, 검은 부리로 끝부분이 검은색에 이르기 전 황색테두리가 있으며, 다리는 주황색이다.
» 멸종위기야생생물2급 큰기러기.
쇠기러기는 몸길이 약 73~75cm, 몸 빛깔은 보통 회갈색인데 몸통 앞쪽이 등 쪽보다 연하고 이마의 흰색무늬와 분홍색 부리, 오렌지색 다리, 배 쪽의 불규칙한 검은 가로무늬 등이 특징이다. 학명과 영어명은 모두 ‘이마가 흰 기러기’라는 뜻이다.
» 쇠기러기
» 흰기러기
간혹 흰기러기가 길을 잃고 매우 드물게 기러기 무리에서 월동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흰기러기는 몸길이 64∼76cm로 다소 작다. 흰기러기는 날 때 흰회색큰기러기와 달리 첫째 날개깃만 검다. 북아메리카의 툰드라지대에서 번식하고, 멕시코만과 캘리포니아에서 겨울을 난다. 시베리아 북동부에서 번식하는 집단은 중국 북부와 일본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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