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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86>진실 덮거나 조작하려 해선 안 돼
기사입력 2013-10-23 오전 9:19:36
정치가 문제라고 했다. 엊그제 청와대에서 미국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최고 경영자를 접견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그랬다. 대통령은 "모든 나라에서 정치가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국내정치에 대한 유감을 나타낸 것으로 보도 되었다.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 할 만도 하다. 대통령 당선 이후 하루도 편할 날 없이 그 정치판이 요동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부기관들의 대선개입 부정이 빌미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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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
바로 대통령의 정통성과 위상과 체면과도 연관되는 사태다. 특히 야당 때문에 대통령의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닌듯하다. 여당 측은 말로는 "선거 끝난 게 언제인데 야당은 아직도 뒤풀이에 급급하느냐"는둥 "국감이 대선패배에 대한 화풀이용으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고 '물 타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자기들이 'NLL 포기발언'으로 몇 년씩이나 노루 뼈 우려먹듯 덕을 보아 놓고 이제 와서는 사뭇 다른 태도다.
NLL 포기발언이야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났으나, 국정원과 군(軍)의 대선개입이나, 검찰의 수장과 대선개입 수사팀장을 생니 뽑듯 도려내 몰아내고, 보직을 빼앗은 일은 지금도 결론이 나지 않거나 진행형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사건 모두 '자상한' 대통령이 모를 리 없는 사건들이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산하부대 등 정부기관들의 대선개입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놓고 대통령은 아직 것 "나는 모르는 일"이라 하고, "나는 덕 본 것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철저한 모르쇠다. 애써 초연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이제는 그들 문제의 중심에 '모두를 모를 리 없는'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다고 깨닫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로 '대통령이 문제'라는 견해가 두드러지고 있다. 문제의 연원(淵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당선' 이후 줄곧 그녀의 뇌리를 점령하고 있는 두 가지의 '문제'가 감지된다. 하나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들 (야당까지도) 말하기를 삼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 확보'인 듯하다. 바로 그 문제를 관철하기 위해 자신은 구름 위에서 선문답이나 하면서,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기관들에까지 정치를 '하청' 주고, 그들을 통해 자기 뜻을 관철시키고자 애쓰는 형국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법적으로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는 국가정보원이 하청을 받아 죽기 살기로 정치를 하는가 하면, 검찰이 정치마름 노릇을 하고 있다. 국토방위와 치안 확보에 매달려야할 군과 경찰에다, 국가보훈처까지 정치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야말로 그래서는 안 될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학 중앙연구원까지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대통령의 문제' 때문에 하청 주어 정치를 시킨 기관이 너무나 많다.
아버지 박정희 씨의 명예회복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이유였다. 측근 중의 측근들이 대통령 되기 전부터 노상하던 이야기였다. 그녀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고 있는 역사 거꾸로 돌리기도 그와 연관돼 있다. 유신 공신 등 '묵은 냄새 나는' 사람들 집결시켜 울타리 삼은 것하며, 새마을운동하자 하는 것도 사실은 그런 것이라 보는 사람들이 많다.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학 중앙연구원 등도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하청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지난 번 대선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에 대한 공포증이 우리 짐작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당선' 이후 이 정권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얼마나 결사적으로 덤볐는지를 살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바로 '정통성 시비'에 대한 우려였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이 사실은 별게 아니다'는, 그래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에는 전혀 하자가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그동안 청와대와 '정치를 하청 받은 기관'들은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원세훈 씨의 범죄'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으로 공개하는가 하면, 사실도 아닌 NLL 포기발언을 진실인 듯 과대 포장해 계속 나팔 불어댔다.
그 사태는 대화록 폐기여부 문제까지 이끌려 갔으나, 이 부분 이야기의 국민적 관심은 노무현 씨가 과연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 한다"는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였다. 때 마침 '이석기 의원 사건'의 '도움'도 받았으나 큰 효험은 없었던 듯하다. 필경 대선불법개입이라는 사건의 몸통에서 점차 고개를 들고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있는, '숨겨질 것으로 믿었던' 진실을 잠재울 수 없었던 게 문제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여당은 그동안 '죄를 진' 원세훈 씨를 감싸면서 불법선거운동 사실을 감추기 위해 무진 애를 썼으나 허사로 끝난 꼴이 되었다. 특히 원 씨의 기소를 막기 위해 청와대와 국정원장과 법무장관이 기를 썼지만, '걸림돌' 채동욱 검찰총장의 당찬 고집을 꺾을 길이 없었던 듯하다. 채 총장은 그래서 목이 잘렸다. 그러나 역시 진실은 덮거나 조작하려 덤벼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번에 걸림돌이 된 윤석열 대선개입 수사팀장 사건이 터지면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은 규모가 엄청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정부 여당은 당초 국정원이 대선 때 올린 인터넷 댓글이 73건에 불과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그냥 인터넷 댓글이 아닌, 트위터에서 특정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며 올린 '선거운동' 글은 5만 5689차례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게 전부도 아니라고 했다. 5만 5689차례 게시한 선거운동 글은 5만 5689명에게만 전달되는 게 아니었다.
리트윗되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백 개 계정으로 퍼 날랐다고 했다. 기하급수적 확산성 때문에 수백만 명에게 전달 됐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윤석열 수사팀은 게다가 지난 대선 때 국정원 심리전단과 새누리당 SNS 단장이 이끌던 십알단(십자군알바단)이 서로 동일한 글을 리트윗한 사실도 확인해 냈다. 국정원의 재정지원을 받는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에서도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있다.
규모는 알 수 없으나 국정원 심리전단에서 퍼뜨린 규모를 훨씬 웃도는 SNS상의 선거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따라서 국정원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와 새누리당이 삼각편대를 이뤄 긴밀히 협조하며,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저질렀을 가능성의 '새로운 의혹'도 밝혀내야 마땅하다고 본다. 사람들은 대선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선개입 사건수사에서 새로운 범죄사실을 밝혀낸 윤석열 수사팀장은 수사팀장 보직에서 쫓겨났으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며 신음을 토해내는 쪽은 정부와 여당 쪽이다.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면서 사전에 보고를 안했느니 국정원의 사전 동의를 안 받았느니 여러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다. 때 맞춰 '이른바 언론'들도 '검찰의 내분'이니 '폭로공방'이니 하며 어울리지 않는 소리들을 하고 있다.
문제는 절차상의 흠결이 아니다. 설사 있다 치더라도 트집 잡을 일이 아니다. 정확한 범죄 사실과 그것이 어떻게 처리되느냐 하는 게 본질이다. 국정원장이 자기네 직원체포에 격노하고 그 때문에 대검이 아수라장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윤석열 수사팀에서는 직원을 체포한 뒤 조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국정원 법률보좌관에게 체포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세훈 씨 등의 변호인들이 항의 했다고 했다.
"국정원장에게 통보하도록 되어있는데 왜 보좌관에게 통보한 거냐"며 따졌다고 했다. 국정원장에게 '직접 통보'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고 했다. 지난 11일 수원지검은 마약밀반입 사건과 관련,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오전 7시 5분 쯤 국정원 직원 1명을 체포하고 환각제를 압수했다. 수원지검이 이 직원의 체포사실을 국정원에 통보한 것은 9시간 뒤인 그날 오후 4시였다. 그것도 수원지검 강력부장이 국정원 본부도 아닌 경기지부에, 서면도 아닌 전화로 통보했으나 항의는 없었다고 했다.
국정원 직원 3명이 윤석열 팀에 체포돼 조사를 받는 동안 남재준 국정원장은 변호인을 통해 직원들에게 계속해서 "진술하지 말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장의 입에서 "야당 도울 일 있느냐"는 터무니없이 편향된 소리도 나왔다. 국정원이나 검찰이나 경찰 모두 범죄를 막고 범죄꾼 잡는 기관들이다. 범죄꾼을 잡지 못하게 하거나, 왜 새로운 범죄사실을 밝혀냈느냐며 죄인 검거한 사람을 꾸짖으면서 범죄꾼을 감싸는 심각한 작태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범죄꾼으로부터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켜내는 나라인지, 범죄꾼을 보호하는 나라인지 몹시 당혹스럽다. 트집질은 안 된다. 급한 나머지 그랬겠지만 새누리당의 원내 대변인이 22일 오후 윤석열 전 수사팀장을 친노 인사라고 몰아쳤다가 빈축을 산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런 짓도 하면 안 된다.
모를 리 없으면서도 대통령은 오늘도 말이 없다. 대통령의 생각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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