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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숨겨진 진실'의 실체

25.02.19 06:53최종 업데이트 25.02.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극우세력이 가짜뉴스를 퍼트리면서 여론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는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배제를 조장하고, 음모론을 확산시키면서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더 큰 문제는 가짜뉴스로 만들어진 여론에 무분별하게 편승하는 정치권이 '혐오 정치'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망가뜨린다는 점입니다. 세계 각국의 '극우발 가짜뉴스'를 조명하고, 이에 대한 해법과 대안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2017년 1월 11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설하는 모습. 그는 이날 자녀에게 사업을 넘기는 것과 가짜 뉴스에 대한 질문 등에 대해 답변했다.UPI/연합뉴스

사람들은 왜 가짜 정보에 더 끌릴까? 진실은 불완전하고 때로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쉽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우리의 신념과 충돌하며 불확실한 현실을 직면하게 만든다. 반면 허위정보는 편견을 확인해 주고,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한다. 불안한 시대일수록 이런 '가공된 진실'에 사람들이 더 빠져든다.

디지털 시대의 허위정보는 '숨겨진 진실'이란 이름으로 퍼져나간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더 자주, 더 오래 머물수록 광고 수익이 늘어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분노와 음모론을 담은 콘텐츠가 이러한 체류를 늘리기에, 결국 알고리즘이 허위정보의 증폭기가 된다

2024년 미국 대선은 디지털 시대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허위정보로 민주주의를 흔들었던 트럼프가 바로 그 전략으로 재집권에 성공했고, 소셜 미디어가 허위정보를 확산시키는 동안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가치가 역설적으로 그 방패막이가 되었다. 이제 한국도 피할 수 없는 같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16년 대선: 디지털 허위정보의 위력을 깨닫다

미국은 지난 10년간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허위정보의 위력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2016년 대선은 미국이 디지털 시대의 허위정보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러시아 정부는 조직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미국 선거에 개입했다. '인터넷 연구소'(IRA)를 통해 수천 개의 가짜 계정을 만들어, 인종, 종교, 이민 문제 등 미국 사회의 민감한 쟁점들을 건드려 분열을 조장했다. 이들은 특히 경합주 유권자들을 겨냥해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허위정보를 집중적으로 퍼뜨렸다.

2016년 12월 9일, '피자게이트 음모론'으로 총격 피해를 입은 워싱턴의 피자 레스토랑인 코멧 핑퐁 밖에 사람들이 남긴 꽃과 메모가 있다.AP/연합뉴스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피자게이트' 음모론이었다. 민주당 지도부가 워싱턴 DC의 한 피자가게에서 아동 성매매를 운영한다는 황당한 주장이 SNS를 통해 확산됐다. 2016년 12월, 이 주장을 믿은 한 남성이 AR-15 소총을 들고 가게에 난입해 총격을 가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는 허위정보가 현실에서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뒤늦게나마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정직한 광고법'(Honest Ads Act)을 통해 온라인 정치광고의 투명성을 높이려 했다. 이 법안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정치광고 집행 내역과 광고주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특히 외국 세력의 정치광고 구매를 엄격히 제한하는 조항을 담았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1996년에 제정된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 230조 개정도 추진됐다. 이 조항은 플랫폼 기업에 이용자 콘텐츠에 대한 법적 면책권을 부여했는데, 이 특권이 플랫폼의 무책임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개정이 추진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좌절됐다.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와 플랫폼 테크기업들의 반발이 주된 원인이었다. 민주당은 허위정보 규제를, 공화당은 보수 진영 검열 중단을 각각 요구하며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연방 차원의 규제는 실패로 돌아갔다.

2020년 대선: 허위정보가 민주주의를 흔들다

페이스북 로고 (자료사진)AP/연합뉴스

2020년 대선은 허위정보의 파괴력을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개표 과정에서 우세가 무너지자 트럼프는 '선거가 도둑맞았다'며 부정선거 주장을 펼쳤다. 투표기 회사의 알고리즘 조작설, 사망자 명의 투표설, 개표 과정 조작설 등 다양한 음모론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법정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됐지만, 법적 절차를 통한 진실 규명보다 음모론이 더 빨리 확산됐다. 결국 2021년 1월 6일 의회 난입이라는 전대미문의 폭력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의회는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플랫폼 규제 강화에 나섰고, 이를 위해 두 가지 법안을 추진했다. 2020년 상원에 처음 제안된 '플랫폼 책임성 및 소비자 투명성 법안'(PACT)은 플랫폼의 투명성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 법안은 플랫폼이 콘텐츠 관리 정책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게시물 제한 시 근거를 제시하며, 이용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보장하도록 했다. 또한 반기별 콘텐츠 관리 보고서 발행을 의무화하고, 불법 콘텐츠 방치 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으며, 연방거래위원회에 집행 권한을 부여했다.

'사기, 착취, 위협, 극단주의 및 소비자 피해 방지법'(SAFE TECH)은 한발 더 나아가 플랫폼의 면책 특권 자체를 제한하려 했다. 특히 사이버 폭력, 혐오 발언, 선동적 콘텐츠에 대해서는 '통신품위법 230조'의 면책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플랫폼이 문제성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걸러내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이 법안은 또한 유료 광고나 상업적 콘텐츠에 대해서도 면책 조항을 적용하지 않도록 했으며, 스토킹이나 괴롭힘 등 명백한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플랫폼을 직접 고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나아가 플랫폼이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을 통해 유해 콘텐츠를 확산시킨 경우에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법안들은 2023년 민주당 의원들이 재발의 해 현재 상원에서 검토 중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규제의 균형을 두고 민주당은 허위정보를, 공화당은 보수 진영 탄압을 우려하며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공백을 파고든 트럼프는 2024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트럼프 시대 2.0: '진실 없는 자유'의 역설

트럼프의 재집권은 암울한 미래를 예고한다. 그는 재취임 직후 "정부의 검열을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모든 규제를 무력화하려 했다. '허위정보' 자체가 검열의 도구라고 주장한 것은 사실상 허위정보 규제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그는 소셜 미디어의 자유를 확대하고, 보수 진영 목소리 억압을 이유로 플랫폼들을 압박하고 있다. 메타(구 페이스북)는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팩트체크를 중단하고 콘텐츠 규제를 완화했다. 다양성 프로그램도 축소한다는 소식이다. 다른 플랫폼 기업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가 바이든 정부의 '검열' 의혹을 내세워 언론 통제에 나설 가능성이다. 전임 정부와 테크 기업들의 '결탁'을 조사하겠다는 명분으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억압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언론 자유의 승리'라 부르며 환호하고 있지만, 오히려 언론 자유가 위축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제 미국은 서로 다른 '진실'을 가진 두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진영에 따라 다른 뉴스를 보고 다른 사실을 믿는다. 정부는 규제를 포기하고 플랫폼은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디지털 시대의 표현의 자유와 정보 책임 사이의 균형이 무너져가고 있다.

미국 경험에서 배우는 세 가지 교훈

2018년 10월 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당신은 가짜 뉴스입니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들고 있다. 트럼프를 비판하는 기성언론들을 향해 오히려 '가짜뉴스'라고 지적하고 있는 모습이다.AP/연합뉴스

미국의 실패는 디지털 혁명을 제도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20세기의 '표현의 자유' 원칙을 디지털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고, 정치권은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공화당은 모든 규제를 '표현의 자유' 침해로 규정했고, 민주당은 낡은 규제 방식만 고수하는 사이 소셜 미디어는 허위정보의 증폭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디지털 허위정보 확산에 따른 민주주의 위기의 징후는 뚜렷하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의 디지털 환경이 이러한 위험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와 더불어, 카카오톡과 네이버 같은 소수 플랫폼에 대한 압도적 의존도는 허위정보의 전례 없이 빠른 확산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고집중화된 디지털 생태계에서는 한국만의 특수성을 고려한 새로운 규제 체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미국의 실패를 교훈 삼아, 한국적 상황에 맞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공적 책임을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팩트체크, 알고리즘 투명성, 선거 기간 내 정보 검증 등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기업의 자발성에만 맡겨둘 경우 정치적 압박이나 수익 앞에서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정부와 플랫폼 사이의 건전한 긴장 관계도 구축해야 한다. 정부가 규제를 포기하면 플랫폼은 책임을 방기하고, 반대로 과도한 개입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양자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한 공동 규제가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이 모든 노력의 성패는 시민사회의 역량에 달려있다. 정부나 기업이 제 역할을 못 할 때 마지막 보루는 시민사회이기 때문이다. 허위정보 감시와 팩트체크, 미디어 교육은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와 시민 참여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플랫폼 규제, 정부 감독, 시민 주도의 팩트체크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다면, 디지털 시대 민주주의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수 있다. 디지털 광장의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실험, 이제 우리가 앞장서야 할 때다.

#가짜뉴스 #민주주의위기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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