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판사' 출신이라, 법관들의 이해관계에 치우친 입장을 취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맞다. 나는 이제 자랑스러움이 아닌 부끄러움과 질타의 언어가 된 '판사 출신' 교수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판사 아닌 그 어떤 사람보다, 법원의 집단적 이해관계를 벗어나, 국민을 위한 공정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게 보이는 충실한 재판을 중심으로 나의 사고를 형성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해왔다.
오해를 풀고 싶다. 특정재판부 사무분담을 다루는 입법, 제왕적 대법원장 체재 개혁을 위한 사법행정회의, 재판소원, 법왜곡죄 도입 자체가 위헌이라는 법원행정처 등의 논리에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동시에 그것이 반대하는 측의 소신에 기반한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법관들 전체가 사법행정에 관한 경험과 공부에 극히 태만해 온 현실, 아니 태만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소수 상근법관 중심의 밀실 사법행정으로 인한 피해자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법원 사법행정을 공부해 보려 해도 단 1권의 교과서조차 없지 않은가. 같이 공부해가면서 토론해가면 그 위헌성에 대한 오해는 풀려갈 수 있다.
사안별로 내 입장을 적어본다.
첫째,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개혁하는 사법행정회의안(사법농단 사태를 계기로 열린 2017년 제1회 전국법관대표회의 제도개선특별위 위원이었던 나는 사법행정회의의 원형을 제안하는 보고서 작성을 맡았다)을 밀어붙이는 민주당 지도부의 용기에도 감사를 표한다. 정치적으로 표를 일부 잃는 일일 수도 있지만, 이는 과거 해야 했던 일을 정파적 이익 등으로 처리하지 않은 당시 여야 국회의원과 정당들의 실수를 바로잡는 일이다. 사법행정의 틀은 잡는 것은 국회 입법의 영역이다. 사법권에 사법행정권도 전속된다는 이상한 법 논리는 사법농단 당시 이미 충분히 논파된, 공부가 덜 된 견해일 뿐이다.
다만 다른 선진국과 달리, 법관 본인 동의 없이 승진이나 전보되지 않는다는 '법관 부동성 원칙'이 입법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3000명 판사의 전보인사를 다루는 사법행정은 외부의 관여를 없애고 법관들만의 위원회로 해야 위헌성 시비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재판소원을 입법화시키기 위한 노력도 감사하다. 선진국 판사보다 2~4배 많은 사건을 더 빨리 처리하라는 불가능한 요구가 원인이기는 하지만, 위헌위법한 재판절차(구술집중변론, 변론갱신, 신속재판 위한 재판기간 제한 규정 등을 형해화하고, 3인 합의부가 2인 합의를 하는 등등)로 국민의 재판청구권 침해가 일상화된 재판을 바로잡으려면, 재판청구권을 침해한 재판도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대상으로 추가해야 한다. 역시 입법사항일 뿐이다. 재판소원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이후 멈춰버린 재판의 투명성, 신뢰도, 충실성을 위한 재판절차 혁신 노력의 불씨를 되살려 줄 거의 유일한, 강력한 외부적 자극이 될 수 있다. 재판청구권 침해를 이유로 한 재판소원은 제발 통과시켜 달라. 그것이 일부 민주당의 표를 갉아 먹더라도 국민의 사법서비스 접근권 확보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다만 디테일도 중요하다. 헌재의 재판 절차 지연을 막기 위해 헌재 재판연구관을 대폭 늘리고, 재판소원 전담 수리소원부를 설치하고, 하급심 판결은 원칙적으로 제외하되 소액 사건의 경우 상고 제한이 잘못 적용된 일부 사례만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 독일에서 재판소원의 순기능을 확보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기 위하여 발전된 제도와 법리를 연구해, 재판소원 인정 대상 범위를 정교하게 설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동시에 재판절차를 다 지키는 충실한 합헌·합법의 재판이 가능하도록 법관 3천명을 3~4배 늘려 1만명으로 늘려가야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나의 판사 3~4배 증원 주장에 대해, 판사의 희소성 감소로 인한 사회적 지위 약화의 속내로 반대한 법관들이 적지 않았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지만, 민주당은 그런 반대를 뚫고 나아가기 바란다.
또한 변호사 접근성을 대폭 높이기 위해, 로스쿨 정원을 2천명에서 5천명으로 3배 정도 늘리고, 변호사 시험 정원제한을 철폐해 변시를 자격시험화해야 한다. 나도 잠재적 전관 변호사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저명한 미국의 법경제학자인 포스너 판사가 김호 자유기업원장의 <신동아> 2008년 4월 7일자 인터뷰에서 말했듯, 완전 경쟁시장화는 국민에게는 높은 접근성 확보를 의미하지만, 전관 변호사인 나는 생계유지를 위협받을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로스쿨 정원철폐와 변시 자격시험화를 주장하는 지금도 나의 잠재적 전관변호사 정체성이 마음속에서 딴지를 건다. 이는 시험에 안 나온다는 이유로, 이번 비상계엄 내란죄 판단에 핵심이 되는 5.18 내란죄 대법원 판결문은 공부도 안 시키는 학원화된 로스쿨 교육을 바로잡는 일이기도 하다.
셋째, 법왜곡죄 도입에도 찬성하지만 아쉽다. 큰 효과 없는 상징적 입법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징적 입법도 재판절차의 투명성, 외관의 공정성 확보, 책임성 확보에 때로는 필요할 수 있다. 법관임용 후 주변의 전화변론, 몰래변론, 관선변론(현직 판검사, 직원, 경찰이 담당자에게 전화해 한 마디하는 변론)에 대한 자성의 부재, 개혁 노력의 부족을 본 나는, 이 문제를 오래 연구했다. 독일 법왜곡죄 논문과 독일 주석서를 뒤지고, 미국의 사법방해죄를 연구했지만, 내 결론은 한국 사법절차의 독특한 현실은 추가적 구성요건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부정청탁방지법의 부정청탁 개념을, 수사, 재판 절차의 문제 상황에 적용할 수있는 형태로 수정하여 처벌하는 맞춤형 입법은 이미 내 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담겨 있으니 참고 바란다.
넷째, 전관예우 문제라는 훨씬 더 큰 문제에 대해서도 나는 잠재적 전관변호사로서의 이익에 충실하려는 본능을 거스르려고 열심히 노력해왔다. 법관들, 검사들,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경찰들(로스쿨에 전직은 물론 현직 포함 경찰 제자들이 늘고, 김앤장 등 대형로펌의 경찰 출신 입도선매 현상도 늘고 있다)의 집단적 이해관계로, 국민의 사법서비스 접근권은 물론, 수사, 재판의 신뢰가 뒤흔들린지 오래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민주당도 대법관, 헌법재판관 출신 변호사 개업금지(필요하면 헌법을 바꿔라)와 당근으로서 퇴임 후 공적 직업 마련(원로법관, 중재업무, 기타 공공성이 강한 직위, 사법연수원 석좌교수 등), 연금제도 개선(개업 포기하고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들에게 주어지는 연금까지 정지해 박탈할 필요가 있나. 부분적 공무원에 대한 공무원연금 지급정지 규정을 개별 사례별로 합리적 예외를 설정하는 입법이 시급함) 입법을 내주길 요청한다.
'판사' 출신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주장의 내용을 국민의 관점에서 분석해 주길 바란다.
1심 내란 재판의 결과, 지켜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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